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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08 조회수591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영적독서

 


성 보나벤뚜라 주교의 담화에서 
(Prologus: Opera omnia 5,201-202)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써
성서를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성서의 기원은 인간의 탐구에 있지 않고 신적 계시에 있습니다. 그것은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의 근원이신 빛의 아버지"에게서 흘러 나옵니다. 성령은 아버지에게서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흘러내리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에 따라 각 개인에게 은혜를 분배해 주시는 이 성령을 통해서 우리가 신앙을 얻으며 "신앙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마음 안에 거처하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입니다. 이 지식으로부터 모든 성서에 담겨 있는 진리의 확실성과 이해가 샘물처럼 흘러나옵니다. 모든 성서 말씀의 문이고 기초이며 등불인, 우리 마음에 부어진 그리스도의 신앙을 먼저 가지지 않고서는 누구라 할지라도 성서의 말씀 안에 들어가 그것을 이해하기란 불가능합니다.

신앙은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순례하는 동안 모든 초자연적인 조명의 굳건한 기초이고 우리가 가는 길을 인도해 주는 등불이며 하늘에 들어가게 해주는 문입니다. 아무도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고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정도에 따라 분수에 맞는 생각을 하도록" 하느님께서는 우리 믿음의 정도에 따라 당신의 지혜를 내려 주십니다.

성서의 목적과 열매는 다른 것이 아니라 영원한 행복의 충만을 얻는 것입니다. 성서는 우리가 그것을 믿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마련된 것이므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쓰여진 책입니다. 그 영원한 생명 안에서 우리는 모든 것을 보고 사랑하며 또 우리의 온갖 갈망이 충족될 것입니다.

그때에만 우리가 "모든 지식을 초월하는 사랑을" 알게 되고 "하느님의 온갖 충만함으로" 채워질 것입니다. 사도가 앞에서 우리에게 말해준 대로 성서는 우리를 이 충만함에 들어가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목적과 지향으로 성서를 연구하고 듣고 또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성서의 올바른 길을 따라 진보함으로써 이 열매와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시초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즉 단순한 신앙으로 빛의 아버지께 접근하여 성부께서 성자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과 더불어 사랑을 베풀어 주시도록 무릎을 꿇고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그분을 알고 사랑함으로써, 즉 사랑에 뿌리를 박고 사랑을 기초로 하여 살아감으로써 성서의 신비가 "얼마나 넓고 길고 높고 깊은지" 를 깨달아 알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성도들의 갈망이 향하고 온갖 진리와 선의 완성이신 지극히 복되신 삼위 일체께 대한 충만한 지식과 넘치는 사랑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2015년 2월 9일 연중 제5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3권 167-169)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축일 7월 15일)

 

조반니 디 피단차(Giovanni di Fidanza)라는 이름의 성 보나벤투라(Bonaventura)는 아버지 조반니 디 피단차와 어머니 마리아 디 리텔로(리텔라)의 아들로 바뇨레조에서 태어났다. 불확실한 전설이긴 하지만 보나벤투라는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로부터 받은 이름이라 한다. 그 자신의 설명에 의하면 그가 어렸을 때 중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을 때 어머니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에게 중재 기도를 바쳐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그는 1238년에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되어 영국의 유명한 헤일스의 알렉산데르 문하에서 공부하려고 파리(Paris)로 갔으며, 그로부터 총애를 받는 제자가 되었다. 그는 1248-1255년까지 파리 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쳤는데, 그의 강의는 새로운 탁발 수도자를 반대하던 교수들 때문에 중단되고 말았다. 그래서 그는 생 아무르의 빌리암을 비롯한 반대자들의 공격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 논쟁에 뛰어들어서,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가난에 관하여”라는 저서를 남겼다. 마침내 1256년에 교황 알렉산데르 4세가 생-아무르를 단죄하고 탁발 수도회에 대한 공격을 중단시켰다. 탁발 수도회가 파리에서 다시 부흥될 때 그는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와 함께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와 비슷한 초창기에 성 보나벤투라는 작은 형제회의 총장으로 피선되었고, 수도회의 내부 분쟁자들을 화해시키는 일을 하였으며, 온건한 정책을 추구함으로써 극단주의 그룹을 단죄하였다. 1260년 나르본(Narbonne)에서 열린 수도회의 총회에서 그는 오랫동안 수도회에 깊은 영향을 주게 되는 회칙에 대한 회헌을 선포하였다. 그는 1265년 요크의 대주교좌를 거절하였고, 1271년에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0세(Gregorius X)의 선출을 적극 지지하였다. 1273년 그는 알바노(Albano)의 교구장 추기경이 되었으며, 다음 해에 그레고리우스 교황은 로마(Roma)와 동방 교회의 일치를 토의하려는 리옹(Lyon) 공의회의 의사일정을 짜도록 그를 위촉하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회기 중인 7월 15일에 리옹에서 운명하고 말았다.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의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상가 중의 한 분이다. ‘세라핌 박사’로 알려진 그는 수많은 글을 썼고 또 남겼는데, “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대한 주석”,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의 전기”,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 생활” 등의 영성 서적을 비롯하여 성서 주석, 약 5백 편의 설교 등이 유명하다. 그는 1482년 4월 14일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시성되었고, 1588년 교황 식스투스 5세(Sixtus V)로부터 교회학자로 선포되었다. 성체와 성합 그리고 추기경 모자가 그의 상징이다.<마리아 사랑넷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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