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믿음의 승리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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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명준 | 작성일2015-02-12 | 조회수1,318 | 추천수13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2015.2.12. 연중 제2주간 목요일(성모영보수녀원 피정8일째), 창세2,18-25 마르7,24-30
믿음의 승리 믿음의 승리, 사랑의 승리, 인간의 승리입니다. 간절한 믿음의 승리, 자기와의 싸움에서의 승리, 결국은 하느님의 승리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위대한 삶, 위대한 만남, 위대한 작품이 나옵니다. 그러니 저절로 눈길은 삶이나 만남, 작품의 배경으로 향하게 됩니다. 아름다운 꽃들 이면의 사계절의 변화, 뿌리와 잎들을 보게 되는 이치와 흡사합니다. 내외적 시련(試鍊)과 고난(苦難), 아픔을 겪어내며 성숙의 결과가 위대한 삶, 만남, 작품임을 깨닫습니다. 언젠가 읽다가 메모해둔 구절이 생각납니다. - <내 청춘의 감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구속 당시 구치소에서 읽고 웃은 책이라고, 감옥 이야기가 이렇게 유쾌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많다고 하던데요. 그 다음 문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사실 그 유쾌한 글자들을 둘러싼 모든 여백은 아픔과 고통이라고 봐야 한다". 주제문이 아닐까요? 대부분 성공에는 보이지 않는 실패가 많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바로 다음 대목을 주목해야 합니다. '유쾌한 글자들을 둘러싼 모든 여백은 아픔과 고통이라고 봐야한다.' 꽃만 보지 말고 뿌리의 배경도 봐야한다는 것입니다. 어둠이 깊으면 별은 더욱 영롱하게 빛나듯 숱한 아픔과 고통을 이겨냈기에 삶이나 만남, 작품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베토벤의 불후의 명작이 귀머리가 된 후에 나왔다는 사실도 이를 입증합니다. -신부님의 강론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기쁘게 사는 모습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아픔이 있어요.- "그럴겁니다. 때로 이런저런 내외적 시련과 아픔을 견뎌내며 하루하루 무너지지 않고 살아내기위한 나와의 싸움인 삶이었고 그런 면이 강론에 은연중 스며들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느 지인과의 주고 받은 대화입니다. 참 역설적인 것이 삶이 간절할수록, 삶이 어렵고 아픔이 클수록, 강론은 아름답고 영롱했다는 사실입니다. 이 또한 감사해야할 주님의 은총입니다. 어제 소개한 민경숙 루치아 교장님의 그림에서도 바로 직감한 이런 면입니다. 그대로 믿음의 승리, 사랑의 승리, 자기와의 싸움에서의 승리를 표현하는 아름다운 그림이었습니다. 아름다운 그림을 출산(出産)한 이면의 그 엄청난 내적 시련과 아픔을 감지합니다. 하여 그림이 아름답고 많은 이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위로와 힘을 줍니다, 개인전 도록을 청하여 카톡으로 받아 본 후 보낸 나의 소감을 두서 없이 소개합니다. "아, 좋습니다. 그림이 밝고 힘이 있습니다. 생명과 희망이 샘솟고 약동하는 분위기입니다. 또 맑고 깊습니다. 언뜻 스친 소감입니다. 감사합니다.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위로와 힘이 될 것입니다. 그림을 통한 복음 선포입니다. 자매님의 고통과 아픔, 열망을 그림으로 승화시켰습니다. 그림을 통한 구원입니다. 그대로 하느님 찬미기도 같은 그림입니다. 시편을 노래한 그림입니다. 그림이 그대로 기도입니다.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되어 감동을 줍니다. 하느님 향한 열렬한 사랑의 고백같은 그림입니다. 모든 그림이 그렇습니다. '절망은 없다' 메시지가 전달되며 강인한 생명력을 느낍니다. 모든 그림이 그렇고 신선한 충격입니다. 지나쳐 버리기 쉬운 작은 것들에 대한 사랑, 이들이 중심소재가 되어 빛을 발합니다. 그림을 통한 영적독서, 감사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위로와 평화를 빕니다." 이렇게 그림에 감동하여 아낌없이 찬사를 드리긴 처음입니다. 주님은 그림을 통해 자매님을, 주님은 강론 말씀을 통해 저를 구원하였습니다. 비교하면 자매님은 '색으로 그린 강론 같은 그림'이라면, 내 경우는 '글자로 그린 그림 같은 강론'입니다. 공통점은 '아름다운 하느님의 열렬한 추구'라는 점입니다. 간절한 믿음, 간절한 사랑 있을 때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입니다. 주님을 만나 위로와 치유도 받습니다. 산티아고 순례후 저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산티아고 간다하면 말리지는 않겠다. 그러나 권할 마음은 없다. 권해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리 체력이 좋고 정신력이 좋아도 간절한 원의가 없으면 힘들다. 간절함이 우선적 조건이다“ 말하며 간절함을 강조합니다. 산티아고 순례뿐 아니라 평생인생순례여정이 그렇습니다. '하루하루' 간절한 마음으로 살아야 주님을 만나 위로와 치유의 구원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도 파트너간의 만남이 감동적입니다. 창세기 독서에서 사람과 그 아내의 만남입니다. -주 하느님께서 사람에게서 빼낸 갈빗대로 여자를 지으시고, 그를 사람에게 데려오시자, 사람이 이렇게 부르짖었다.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 얼마나 심오하고 아름답고 간절한 부부일치의 예화인지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과 시리아 페니키아 이교도 출신 부인과의 만남도 극적입니다. 이교도 부인은 간절하고 겸손한 믿음이 있어 주님을 만났고 마침내 주님의 항복(降服)을 받아 내니 말그대로 믿음의 승리입니다. "주님, 그러나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네가 그렇게 말하니, 가 보아라. 마귀가 이미 네 딸에게서 나갔다. 참으로 감동적인 장면입니다. 부인의 간절한 믿음에 감동하신 주님의 즉각적인 치유의 응답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갈망함은 주님은 우리의 영원한 반쪽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하나될 때 온전한 인간, 거룩한 인간으로서의 참 나의 실현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아담이 하와가 만나, 이교도 부인이 주님과 만나 하나되듯이, 우리 역시 주님과 만나 하나되는 구원의 시간입니다.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시편130,7).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는 모든 사람(시편128,1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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