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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15 주일/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생명의 통교를 이루는 가엾은 마음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14 조회수933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6주일 마르 1,40-45(15.2.15)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마르 1,41)

 


 

The Cleansing of a Leper

 

  

                      

 

생명의 통교를 이루는 가엾은 마음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가 무엇일까? 사람이 도구화 하고 사람의 아픔과 소외에 무관심하고 무감각한 것이 아닐까? 바오로 사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고,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말라.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라.”(1코린 10,31-33)고 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바로 우리의 증오와 무관심과 편견 덩어리를 품는 사랑의 길을 보여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로 묶어주는 힘은 하느님과 맺는 계약에서 비롯되었다. 따라서 야훼의 신앙에서 떨어져나가는 것은 곧 이스라엘 민족으로부터의 이탈을 뜻하였다. 구약성서가 끊임없이 우상숭배와 투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더구나 다윗과 솔로몬 시대를 중심으로 하는 짧은 기간을 빼고는 이스라엘은 늘 주위의 강한 이민족들의 압박을 받아왔다. 따라서 한 민족의 힘과 그 민족이 섬기는 신의 힘을 결부시켜 받아들이던 당시의 이스라엘은 계약공동체를 굳건히 지키기 위하여 하느님께 속한 것과 이방적인 것을 엄밀히 구별하려고 하였다. 또한 일상적인 것들도 가능한 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였다. 정(淨), 부정(不淨)에 관한 세밀한 규정들은 이렇게 생겨났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하느님께서 악성 피부병자들을 벌하셨으며 그들이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저주를 받았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위생상의 동기에 종교적 동기가 더해지면서 악성 피부병자들의 처지는 더 비참해졌다. 악성 피부병자들은 사회와 격리되었으며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고 윗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치고 다니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아야 했다. 또한 그들은 진영 밖에서 혼자 살아야 했다(13,46). 유대인들에게 이런 병은 ‘죽음의 첫 사자’(욥기 18,13 참조)요, 가장 고통스럽고 혐오감을 주는 병으로 받아들였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이들은 ‘살아 있으나 죽은 사람’(민수 12,12)으로 취급되었다.


예수님 시대에도 악성 피부병인 나병은 단지 돌이킬 수 없는 신체적 파멸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죽음, 예배로부터의 제외, 하느님께서 죄인들을 치시는 매우 큰 상처이기도 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정(淨), 부정(不淨)의 구별, 성(聖)과 속(俗)의 엄격한 이분법적 구별을 뛰어넘어 ‘온전함’이신 하느님의 본성을 보여 주시며 하느님의 사랑을 만나게 해주신다.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능력과 권위를 지닌 대단한 분이시라는 데 초점이 있지 않다. 오늘 복음의 치유 이야기는 그분을 통하여 하느님의 관심과 배려, 정의와 평화, 행복이 인간의 역사 안으로 들어오는 표징이다. 구약성서에서 치료법이 없고 격리의 대상이었던 악성 피부병을 예수님께서는 고쳐주심으로써 죽음의 상황에 생명을 불어넣어주셨다.


예수님으로부터 치유와 해방의 힘을 이끌어낸 것은 나환자의 신심 깊은 태도에 있었다. 나환자는 예수님을 ‘찾아와’ ‘무릎을 꿇고’ ‘스승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으십니다.’ 하고 청하였다. 치료받고 싶은 간절함이 있었음에도 그는 치유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맡겨드렸다. 여기서 “스승님께서 하고자 하시면”이란 조건문은 단지 예수님께서 준비되어 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송장’과 같은 존재를 살리시는 신적 능력을 지니셨음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드러내는 말이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를 치유해주신다. ‘가엾은 마음’은 본디 여성의 자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에서 온 것으로 ‘생명이 생겨나는 근원적인 자리’, ‘생명이 사는 곳’을 뜻한다. 곧 가엾은 마음이란 생명을 살리고 생명으로 되돌리는 마음을 말한다. 이 '가엾은 마음'이 바로 편견과 증오의 덩어리를 깨부수고 소외를 회복시켜주는 결정적인 힘이었다. 연민은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거룩함을 속되고 부정한 것과 철저히 구별했던 것과는 다른 ‘포용’의 힘이었다. 예수님께서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소외되었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 그를 품어 하나가 되도록 해주셨고 형제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갈 길을 열어주셨다. 소외와 격리를 부르는 미움과 증오, 편견의 울타리를 허물 때 진정한 생명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악성 피부병을 치유하는 일은 예언자들의 몫이고, 사제는 치유를 확인하고 선언하는 역할을 할 뿐이었다. 악성 피부병은 소외를 부르는 증오와 편견의 덩어리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늘날 ‘살아 있으나 죽은 것과 마찬가지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권력과 부와 명예를 지닌 기득권자들로부터 소외된 빈곤층, 노동자, 이주민, 죄수들, 동성애자, 고독병에 걸린 이들 등 소외계층이 그들이다. 소외와 격리를 없애는 사랑의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힘 있는 기득권자나 사제가 아니라 삶의 예언자들이 필요하다.


오늘의 교회는 이런 예언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 교회, 나의 관심사는 어디에 가 있는가? 과연 나에게 소외와 격리를 무너뜨리고 모두를 포용하여 생명 공동체와 통교를 이루게 하는 ‘가엾은 마음’이 있는가? 프란치스코 교종의 다음 말씀을 깊이 되새기자.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할지를, 어떻게 연민을 경험해야 할지를 잊었습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서 슬퍼하는 능력을 제거해버렸습니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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