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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14 조회수1,040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My heart is moved with pity for the crowd,
because they have been with me now for three days
and have nothing to eat.
(Mk.8,2)
 
 
제1독서 창세 3,9-24
복음 마르 8,1-10
 

여러 차례 단식을 해 본 적이 있습니다. 짧게는 삼일, 길게는 보름까지 단식을 한 적이 있었지요. 그런데 보름 동안의 단식이 삼일 동안의 단식보다 훨씬 힘들 것 같지만, 제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거의 비슷합니다. 왜냐하면 단식 삼일 째가 가장 배고프고 많이 지쳐 힘들기 때문입니다. 이 날만 잘 넘기면 일주일, 보름까지도 단식이 가능하더군요.

단식을 하게 되면 후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평소에는 냄새를 못 맡던 것인데, 단식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냄새들이 우리 곁에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심지어 사람에게서 풍기는 냄새도 참 다양하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쉽게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크게 와 닿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단식을 하게 되면 음식을 먹는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평소에 쳐다보지도 않던 음식들도 얼마나 먹고 싶던 지요. 그동안 많은 것들을 누리고 있었기에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모든 것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부족했을 때 감사함을 느낄 수 있으며, 부족했을 때 지금까지의 내 삶 안에 주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었는지 비로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족함의 상태가 어쩌면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긴 과거 교부들은 일부러 단식을 했고, 고행을 당연히 해야 할 것으로 생각했지요. 그 이유는 바로 부족함 안에서 주님을 더욱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가 잘 아는 사천 명을 먹이신 기적에 관한 내용입니다. 일곱 개의 빵과 작은 물고기 몇 마리를 가지고서 사천 명 가량의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도 남은 조각이 일곱 바구니나 되었다는 기적이지요. 그런데 이 기적의 시작은 바로 사흘 동안이나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주님 곁에 머물렀을 때라고 전해줍니다. 광야에서 허기지셨던 적 있는 육화하신 주님께서 이제는 생명의 빵으로 인간을 먹이시는 장면을 보여주지요. 이 모습은 교회가 받을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지요. 거룩한 주님의 말씀을 열심히 나누어 먹는 사람은 영적 허기를 느낄 일이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채우려고만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당연히 주님의 은총도 충만하게 받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특히 주님의 거룩한 말씀 안에서 희망을 간직하고, 그 말씀을 열심히 나누어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이 부족함을 채워주는 것이 아닌, 주님 안에서만이 부족함을 채울 수 있음을 기억할 때 나의 삶은 보다 더 풍요로울 수 있습니다.

잠이 오지 않으면 누워서 걱정하지 말고 일어나서 무언가를 하라. 당신을 괴롭히는 것은 잠을 못 자는 것이 아니라 걱정이다(데일 카네기).


15년 전 보좌신부로 있을 때의 고등학생이 결혼식 주례를 서달라고 어제 왔네요. 시간의 빠름을 다시 느낍니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최천호, 좋은 글 중에서)

아주 옛날 산골에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 아이가 하나 있었다. 아이는 배가 고파 온 종일 우는 게 일이었다. 아기의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회초리로 울음을 멎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매를 맞았다.

그날도 부모는 우는 아이에게 매질을 하고 있었다. 그때 집 앞을 지나던 노스님이 그 광경을 보고 집으로 들어와서 매를 맞고 있는 아이에게 넙죽 큰절을 올렸다. 그것을 보고 있던 부모는 의아해서 스님께 물어보았다.

“스님은 어찌하여 하찮은 아이에게 큰절을 하는 것입니까.”

이에 스님은 “예 이 아이는 나중에 만인지상 일인지하인 정승이 되실 분입니다. 그러니 곱고 귀하게 키우셔야 합니다.”하며 자리를 떠났고, 아이의 부모는 그 후로 매를 들지 않고 공을 들여 아이를 키웠다.

훗날 아이는 정말로 영의정이 되었다. 부모님은 큰 스님 안목이 신기하기만 했다. 그래서 ‘스님을 찾아서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스님을 찾기로 하였다. 우여곡절 끝에 큰스님을 찾았고. 스님에게 궁금함을 여쭈어 보았다.

“스님 우리 아이가 스님의 말씀처럼 영의정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어찌 그리도 용하신지요.”

스님은 웃으시며 차를 한 잔씩 권하며 말문을 여셨다.

“이 돌중이 어찌 미래를 볼 수 있겠습니까 마는 세상의 이치는 하나이지요. 모든 사물을 귀하게 보면 한없이 귀하지만 하찮게 보면 아무짝에 쓸모가 없는 법이지요. 아이를 정승같이 귀하게 키우면 정승이 되고. 머슴처럼 키우면 머슴이 되지요. 이것이 세상의 이치이지요. 세상을 잘 살고 못사는 것은 마음가짐에 있지요.”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런 마음을 통해서만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발렌타인데이죠. 단순히 초콜릿의 나눔을 생각할 것이 아닌, 사랑의 나눔을 생각하는 날이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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