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2015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15 조회수61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영적독서

 

Christ Embracing St Bernard-RIBALTA, Francisco
Oil on canvas, 158 x 133 cm.Museo del Prado, Madrid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의 강론에서
(Sermo de diversis 15: PL 183,577-579)

 

지혜의 추구

 

썩지 않는 양식을 위해 일하고 우리 구원을 위해 일합시다. 매일의 품삯을 받을 수 있도록 주님의 포도원에서 일합시다. “내 뜻 안에서 일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으리라.”고 말하고 있는 지혜의 빛으로 일합시다. 진리 자체이신 분께서 “세상은 밭”이라고 말씀하시니 그 밭을 파서 감추어져 있는 보화를 캐냅시다. 이 밭에 감추어져 있는 것은 지혜입니다. 우리 모두 지혜를 갈망하고 또 지혜를 원하고 있습니다.

지혜는 말합니다. “찾고 싶거든 되돌아와서 찾아 보아라.” 당신은 어디에서 되돌아와야 하느냐고 묻습니까? 그는 대답합니다. “당신 욕망과 의지에서 되돌아오라.” 그러나 당신은 또 질문합니다. “내 욕망과 의지에서 지혜를 찾을 수 없다면 어디서 찾을 수 있겠습니까? 내 영혼은 그것을 열렬히 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어떻게 찾아낸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다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담을’ 때까지는 다만 찾아내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못합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지혜를 찾아내는 사람은 행복하고 슬기를 얻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러므로 그를 찾을만한 때에 찾고, 가까이 있을 때 청하십시오.

그 지혜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까? “그는 바로 당신 곁에 있고 당신 입에 있고 당신 마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올바른 마음으로 찾을 때만 그러합니다. 당신의 마음 안에 지혜를 찾아내면 입술은 지혜로 충만할 것입니다. 그것을 밖으로 자아내어 잃어버리지 않도록 내부로 흘러 들어가게 하십시오.

지혜를 찾아냈다면 참으로 꿀을 찾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이 먹어 부대끼어 토하지 않도록 지나치게 먹지 말고 언제나 배고플 수 있게 취하십시오. 지혜는 말합니다. “나를 먹는 사람은 더 먹고 싶어지고 나를 마시는 사람은 더 마시고 싶어진다.” 당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벌써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토하지 않도록 탐식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탐구하는 일을 너무 빨리 포기함으로써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잃어버릴지 모릅니다. 지혜가 가까이 있고 그것을 찾을 수 있을 때 탐구해야 합니다. 청하는 것을 중단하면 안됩니다. 솔로몬의 말에 의하면 “꿀도 많이 먹는 것은 좋지 않은” 것처럼 “엄위를 너무 찾는 사람은 그 영광에 눌리고 맙니다.”

“지혜를 찾아내는 사람은 복된 사람”인 것처럼 지혜를 잃지 않고 간직하는 “사람”은 더욱더 “복된” 사람입니다. 이 말은 그 사람이 지혜를 많이 얻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다음 세 가지 경우에 당신 입에서 확실히 지혜나 슬기가 흘러 나옵니다. 즉, 죄를 고백할 때, 감사와 찬미의 노래를 부를 때, 그리고 격려의 말이 흘러 나올 때입니다. 참으로 “마음으로 믿어서 의화되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또 성서 말씀에 의하면 “의로운 사람은 이야기하기 시작할 때 먼저 자신을 나무랍니다.” 그리고 이야기 중간에 하느님을 찬미하고 또 이렇게 함으로써 그 입에서 지혜가 흘러 나온다면 세 번째로 자기 이웃을 격려합니다.


2015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3권 200-201)

 

  

 

성 베르나르도 아빠스 주교 학자 (축일 8월 20일)

 

테셸랭 소렐(Tescelin Sorrel)과 몽바르드 영주의 딸 알레(Aleth)의 아들인 성 베르나르두스(Bernardus, 또는 베르나르도)는 부르고뉴(Bourgogne) 디종(Dijon) 근교의 가족 성(城)인 퐁텐(Fontaine)에서 일곱 아들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그는 샤티용(Chatillon)에 가서 공부하면서 청운의 꿈을 펼치고 있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으로 많은 충격을 받고서 수도생활을 추구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원래 시토회의 설립자 3명 가운데 한 명은 아니었지만 흔히들 그를 시토회의 설립자로 부른다. 그가 새로운 수도회인 시토회에 입회한 해는 1112년 4월인데, 그 때 그는 자기 형제 4명을 비롯하여 모두 30명의 친척, 친구들과 함께 베네딕토회 규칙의 엄격한 해석을 따르기 위하여 1098년에 설립된 시토회에 들어갔다. 그들은 원장이던 성 스테파누스 하딩(Stephanus Harding, 4월 17일)으로부터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1115년에 성 베르나르두스는 성 스테파누스 하딩의 지시에 따라 12명의 수도자와 함께 부르고뉴와 샹파뉴(Champagne)의 경계지역에 있는 클레르보라는 고립된 계곡에 수도원을 세우기 위해 파견되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엄격한 규율 때문에 약간의 어려움에 봉착하였으나, 그의 높은 성덕으로 수많은 제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이때 그 수도원의 이름을 발레 답신트에서 클레르보로 바꾸었고, 당시 68개의 시토회 수도원의 모원으로 만들었다.

그 후 성 베르나르두스는 자신의 학덕과 지덕을 활용하여 수도원의 외부 일을 처리하게 되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유럽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중의 하나가 되어 통치자와 교황의 자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립교황인 아나클레투스 2세의 요구에 대항하여 1130년의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Innocentius II) 선출의 합법성을 지지하였다. 또한 그는 로테르 2세를 황제로 인정하도록 롬바르디아(Lombardia)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였다. 1140년부터 그는 공적으로 설교하는 일을 시작하여 놀라운 명성을 얻었다.

1145년에는 전에 클레르보 수도원의 수도자였던 에우게니우스 3세(Eugenius III)가 교황으로 선출되자, 그는 교황직의 의무에 대한 글을 교황 앞으로 보내어 로마(Roma) 교황청의 남용을 자제하고, 교황이 항상 목전에 두어야 할 종교적 신비에 대하여 자세히 설명하였다. 교황 에우게니우스는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랑그도크(Languedoc)에 파견하여 알비파(Albigenses) 이단을 대항하여 설교토록 하였고, 프랑스와 독일에 제2차 십자군 원정의 열기를 북돋우는 특사로 임명하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활동과 심각한 건강 문제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왕성한 저술가로도 유명하다. 그의 서한과 "아마(Armagh)의 성 말라키아의 생애" 그리고 "신애론"이 영어로 번역되었고, 자신의 수도자들에게 행한 강론은 "아가"로 묶었다. 그는 자신의 저술과 설교에서 성서를 광범위하게 인용하는 이유를 "말씀을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이 박아 주기 위함"이라고 하였다. 이 때문에 그의 저서와 신심은 오늘의 신자들에게도 깊은 감명을 주고 있다. 그는 다양한 기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칭송을 받았으며, '꿀처럼 단 박사'(Doctor Mellifluus)란 칭호를 얻었다. 1153년 8월 20일 클레르보에서 선종한 그는 1170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교황 비오 8세(Pius VIII)는 1830년에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는 스콜라 학파 이전의 신학자이며, 때로는 '마지막 교부'로 불리기도 한다. 그의 문장은 꿀벌통이고 양봉업(자)의 수호성인이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