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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16 조회수1,045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2월 16일 연중 제6주간 월요일
 
Why does this generation seek a sign?
Amen, I say to you,
no sign will be given to this generation.
(Mk.8,12)
 
 
제1독서 창세 4,1-15.25
복음 마르 8,11-13

어떤 자매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한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이야기가 그리 좋지 않은 내용이었지요. 그 신부님의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제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그 신부님과 그리 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이야기한 것 같은데, 이 분의 생각과 달리 저와 신학생 때부터 신부가 되어서까지 너무나도 친한 신부님이었습니다. 20년 넘게 보았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며 그분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몇 번 보지 않았으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는데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누구를 더 믿을까요?

그 신부님이 얼마나 좋은 분인지를 이 자매님께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고 제가 신부이기 때문에 신부 편을 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분이 아닌지에 대한 증거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자신은 도저히 제가 변호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요.

오랜 친분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십시오. 어떤 상황이 다가와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모습이 보여도 그럴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하면서 어떻게든 이해하려 합니다.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런 친분 관계가 없다면 그리고 믿을 수 없다면 작은 틈만 생겨도 공격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 특히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합니다. 사람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 하느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라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했던 그 모든 표징들을 왜 이들은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 일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기쁜 소식 등등, 계속된 표징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합니다. 아마 마술사와 같은 사람들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낮게 판단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들이 요구하는 것은 마른하늘에 갑자기 벼락이 떨어지고, 해를 멈추고 시간을 멈추는 등의 인간으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것들을 요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표징을 보여주어도 사람들은 믿지 못할 것입니다. 이미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믿음 없음에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십니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어떤 친분을 맺고 있을까요? 잠시 동안의 기도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불공평한 행동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서 쉽게 말을 뱉어 버리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께 대한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표징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편안하게 잠잘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도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과연 주님께서 계속해서 주시는 표징을 받고 있나요?

사랑은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것이다. 그 끝은 존재하지 않는다(캐서린 앤 포터).


2015년 인천교구 사제 서품식 중에서...

 

수상 거부

군축이나 평화 증진에 현저히 기여한 개인이나 단체에 주는 아주 권위 있는 상이 있습니다. 바로 노벨 평화상입니다. 많은 분야의 노벨상 중에서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이 노벨 평화상입니다. 그런데 이 노벨 평화상을 거부한 사람이 한 분 계십니다. 바로 베트남 전쟁 종결 당시 총리였던 레둑토입니다. 그는 “조국 베트남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면서 상을 거부했습니다.

자신이 지향했던 평화는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조국 베트남을 위한 것이었기에 수상 거부를 한 것이지요(혹시 다른 이유 때문이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표면적으로는 이렇게 보이니 저의 생각을 적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어쩌면 진정으로 상을 받기에 충분한 자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아닌 남을 위한 마음, 이기적인 마음이 아닌 사랑이 가득한 이타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누구를 존경할까요? 자기를 위한 마음보다는 남을 위한 마음을 갖춘 사람을 존경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각자도 이런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마음, 즉 나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많아질수록 주님께서 약속하셨던 하느님 나라는 더욱 더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올 것입니다.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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