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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누구인지 알면...끝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21 조회수1,441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사순 제1주일


< 예수님께서는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복음: 마르코 1,12-15






묵주의 성모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7), 빈 미술사 박물관



     < 내가 누구인지 알면...끝 >

 

  

작년에 제임스 대시너라는 작가의 소설 원작을 영화화 한 메이즈 러너SF 영화가 개봉했었습니다. 이 영화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탈출시키는 이야기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이야기를 그대로 그려놓은 듯합니다.

설정은 이렇습니다. 태양이 너무 뜨거워져 세상은 황폐해지고 많은 이가 죽습니다. 그리고 뇌를 갉아먹는 플레어란 바이러스에 사람들이 감염되어갑니다. 감정이 사라져 좀비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 이하의 아이들 중에 그 바이러스에 감염되지 않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어떠한 이유로 감정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지 알아내서 백신을 만들려고 WICKED(World In Catastrophe : Killzone Experiment Department의 약자)란 단체가 생겨납니다. 그런 아이들의 특징을 찾아내서 그런 믿음과 행동양식 등의 패턴을 일반 사람들에게 적용시켜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커다른 실험 세트를 만들어놓고 아이들의 기억을 지운 다음 매달 한 명씩 그 세트 안으로 아이들을 집어넣습니다. 그들은 커다란 미로로 격리된 공간 안에서 나름대로 규칙을 정하고 안정된 사회를 만들었습니다. 미로는 낮에만 문이 열리는데 밤까지 돌아오지 못하면 그 미로 안에 있는 괴물들에게 잡아먹히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아이들이 탈출할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3년이 흐른 뒤 조금은 특별한 한 아이가 올라옵니다. 그 아이는 끊임없이 자신들이 왜 여기 갇혀있어야 하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미로의 지도를 만들기 위해 낮에 그 안을 뛰어다니는 메이즈 러너(미로를 달리는 사람)’들 외에는 미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이상한 것은 이 아이가 올라온 이후로 미로에만 있어야 하는 괴물 그루버가 낮에도 사람들을 습격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토마스라는 마지막 아이는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안정된 사회에 불안과 공포를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그의 호기심과 용기는 규칙을 깨고 미로에 뛰어들게 했으며, 마침내 그루버와 싸워 한 마리를 죽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몸속에서 이상한 장치를 발견하게 되고 그 장치가 어떤 문을 여는 열쇠임을 알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규칙을 어겼다는 이유를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그때 트리사라고 하는 한 여자아이가 올라오는데 그녀에겐 이상한 약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기억을 되살리는 약입니다. 토마스는 그 약을 투입하고 기억을 되찾습니다. 자신이 이 미로를 만드는데 협력했던 사람인데 그 미로 안에 갇혀있는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자원했던 것을 기억해 냅니다. 이 세상은 하나의 실험에 불과하고 이 실험을 통과 해야만 진정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 실험실 안에서만 사느니 차라리 탈출하려다 죽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탈출을 포기하고 미로 안에서만 살기를 원했던 아이들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혼자만 기억을 되찾아 자신이 어떤 목적으로 그 세상으로 오게 되었는지를 아는 토마스를 믿고 목숨을 걸고 미로를 통과하려고 시도해 볼 것인가, 아니면 미로 안에 머물며 이대로 살아갈 것인가? 남을 사람들은 남고, 토마스의 말을 믿는 아이들은 미로 속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는 그루버와 싸우며 결국 처음 죽였던 그루버의 몸에서 빼낸 열쇠로 지하 문을 열고 살아남은 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오게 된다는 결말입니다.

 

인간 역시 이 세상에 던져졌습니다. 태어나기 이전의 기억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합니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세상은 그냥 이 세상에 적응하며 규칙 안에서 살아가라 말합니다.

이번 설 명절 때 저희 형이 조카가 공부를 잘 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불어보았습니다. 저는 아이에게 그 방법이 아닌 에 대해 가르쳐야 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공부 열심히 한다고 성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테러리스트들 중에 공부 잘하는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자신이 누구인지부터 알아야 공부를 하고 일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가 먼저가 아니라 내가 누구인지부터 명확하게 알려줘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안다면 목숨을 잃는 것까지도 아까워하지 않고 신념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영화에서는 토마스란 아이가 많은 아이들을 설득하여 데리고 미로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을 설득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에겐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그들을 구원해야 하는 소명을 지니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기억해 낸 것입니다.

예수님 또한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잡혀 죽음의 위협에 처하게 되었음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시작하십니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신 이유, 즉 당신이 왜 이 세상에 오게 되셨는지를 알게 된 계기는 바로 당신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와의 만남을 통해서였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반드시 내가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려줄 어떤 누군가를 만나야만 합니다.

 

영화 국제시장에서 이산가족을 찾는 장면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배에 올라탈 때 오빠는 동생의 옷소매만 지니고 있고, 동생은 옷소매가 없는 오래된 옷만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입양되어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그런 삶이 행복할 수 있었을까요? 그 동생은 오빠를 만남으로써 자신의 어머니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그저 미국에서의 삶에 만족했다면 어머니를 찾을 수 있었을까요?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가게를 팔지 않는 이유는 동생을 잃었을 그 때 함께 잃었던 아버지와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렇게 교회를 통해 우리를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강이 두려움의 강입니다. 두려움의 강은 믿음으로서만 건널 수 있습니다. 결국 모든 관계는 믿음입니다. 믿음만이 내가 누구인지 알게 해 줍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이시고 왜 세상에 오셨는지 명확히 아시는 분이셨습니다. 특히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아버지의 음성을 직접 들으셨습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이시니 그의 목소리를 듣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우리도 두려움의 강을 넘어 믿음으로 이 세상을 탈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목숨을 거실 줄 아셨기에, 우리 또한 그분 믿음에 동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목숨을 걸 수 없다면 믿음이 아닙니다. 내가 목숨을 걸지 않는 것엔 어떤 누구도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당신 죽음으로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을 이기신 것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방법이 곧 세상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40일 간의 광야생활은 당신 스스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당신이 세상을 이겼으니 우리보고 믿고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확신이 있는 이는 모두가 그리스도를 잇는 구원자가 됩니다.

 

2013년 톰 크루즈가 출연한 오블리비언이란 영화가 있었습니다. 오블리비언은 ‘(기억의) 망각이란 뜻입니다. 블레이즈 러너와 같이 기억의 망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기에서 잭 하퍼란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합니다. 지구에 남아있는 외계인들을 없애는 일입니다. 외계인들에게 잡혀 정보를 빼앗기면 안 되기에 그 사람의 기억을 일부러 지워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자신의 아내를 만나게 되어 기억을 되찾습니다. 아내는 잭 하퍼가 외계인들에게 잡혀가서 기억이 지워져 그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결국 그가 죽이고 있었던 것인 지구상에 남아있는 자신과 같은 인간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구인지 알고 살아가야 합니다. 내가 누구인지 확신을 가지기 전엔 어떤 일도 하지 마십시오. 빈 라덴을 위해 일하고 있는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누구신지 명확히 아셨기 때문에, 40일 간의 세상의 유혹을 견뎌내셨고, 그 길을 우리 또한 믿고 따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지금도 물 위를 걸으시며 우리보고 함께 걷자고 말씀하십니다. 그분을 따르는 길은 이렇게 물 위를 걷는 믿음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두렵다면, 그래서 아직도 세상과 세상이 주는 것들을 버리기를 두려워한다면 이 세상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영원한 심연으로 가라앉고 말 것입니다. 이 세상은 대 탕녀 바빌론이기 때문입니다.

사순은 단순이 극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내가 잃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을 없애는 것입니다. 굶는 것이 두렵지 않고, 입지 못하는 것이 두렵지 않고, 세상에서 멸시받는 것이 두렵지 않고, 가진 모든 것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다면 사순절은 다시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믿음으로 두려움을 밟고 물 위를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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