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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2월 25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24 조회수801 추천수3 반대(0) 신고

 

 

2015년 2월 25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영적독서

 

기를란다요, <첫 제자들을 부르심>, 1481-82, 프레스코화, 349x570cm,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아프라테스 주교의 논증에서
 
(Dem. 11, De circumcisione, 11-12: PS 1,498-5O3) 
 

마음의 할례
 

율법과 계약은 완전한 변모를 거쳤습니다. 우선 하느님께서는 아담과 맺으신 계약을 변경하시고 노아와 다른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 후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으시고 또 모세와 새 계약을 맺으시려고 그것을 변경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맺은 계약이 지켜지지 않자, 이 마지막 때에 또다시 계약을 맺으셨는데 이것은 다시는 변경되지 않을 계약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에게 생명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주셨고 노아의 경우에는 구름에 무지개가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그의 믿음 때문에 간택된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후손들에게 표시가 되는 할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는 백성을 위한 희생 제물로 파스카의 어린 양이 있었습니다.

이 계약들은 각자 서로 달랐습니다. 그런데 이 계약을 맺어 주신 분이 인정하는 참된 할례는 예레미야가 말하고 있는 할례입니다. "너희 마음의 할례를 하라." 그래서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계약이 견고한 것이었던 것처럼 이것도 견고하고 변할 수 없는 것이며, 율법 아래에 사는 사람들이나 율법 밖에 사는 사람들이 이 외에 다른 법을 제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계명과 여러 가지 조항들로 된 율법을 주셨습니다. 유다인들이 그것을 지키지 못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이 율법과 계명들을 폐하시고 새 계약을 맺어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계약을 맺어 주시는 분은 항상 같은 분이시지만 이 새 계약은 그전 계약과는 다른 계약이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맺어 주시기로 약속한 계약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 가운데 가장 미소한자로부터 가장 높은 자까지 모두 나를 알게 되리라." 이제 이 새 계약에는 선택된 백성의 표시가 되는 육신의 할례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인간 역사의 여러 세대에 따라 여러 가지 법들을 만드시어 당신이 원하시는 동안만 유효하게 하시고 마침내 다음 말씀대로 그 효력을 상실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각 세대에 여러 가지 형태로 존재했다." 우리 하느님께서는 진실하시고 그분의 계명들은 견고합니다. 그분이 맺으신 계약들은 어떤 것이든 그 시대에 꼭 지켜야 하고 유익했던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마음의 할례를 받은 이들은 참된 요르단강에서 받은 새 할례 즉 죄 사함의 세례를 통하여 생명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요르단강을 자기 백성과 함께 통과할 때 백성들에게 돌칼로 두 번째 할례를 주었습니다. 우리 구세주 예수께서도 역시 당신을 믿고 세례로 씻음을 받은 이들에게 "어떤 쌍날칼보다 더 예리한 말씀의 칼로써" 두 번째 할례인 마음의 할례를 베푸셨습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고 이 두 번째 할례로써 물로 다시 태어나는 이들은 복됩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들의 충실한 지도자요 아버지였던 아브라함의 유산의 한몫을 차지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이 그의 신앙 때문에 의화되었음을 인정하셨습니다.

2015년 2월 25일 사순 제1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10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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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있는 그림] “나를 따라오너라.”

기를란다요, <첫 제자들을 부르심>, 1481-82, 프레스코화,

 349x570cm,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기를란다요(Ghirlandaio, 본명: Domenico di Tommaso Bigordi, 1449-94)는 피렌체의 예술가 집안에서 성장한 화가로 사실적이고 세밀한 프레스코화와 초상화로 유명하다. 기를란다요(‘화관’이라는 단어에서 옴)라는 이름은 금세공사였던 그의 아버지가 꽃장식을 잘 만들었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기를란다요는 1481년에 교황청으로부터 시스티나 성당 벽면 장식의 요청을 받고 로마로 향했다. 교황 식스토 4세는 기를란다요를 비롯해 보티첼리, 로셀리, 페루지노, 시뇨렐리, 핀투리키오, 립피, 디 코시모 등에게 시스티나 벽면에 구약과 신약 시대를 구분하는데 척도가 되는 모세와 그리스도의 생애를 프레스코화로 제작하도록 요청하였다.

기를란다요가 제작한 <첫 제자들을 부르심>은 예수님께서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장면이다.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초기부터 당신과 함께하면서 사명을 이어갈 제자들을 선별하셨다. 예수님이 어부 네 사람을 부르신 이야기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 부분은 그물을 던지고 있는 베드로와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이야기이다. 그림 왼쪽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오른손을 들어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시고 계신다. 이에 두 사람은 그물을 잡고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다. 두 번째 장면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제자로 부르심을 받는 이야기이다. 그림 오른쪽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던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부르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 중앙 배 안에 있는 두 사람은 이미 일손을 놓고 두 손을 합장한 채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렸음을 알 수 있다. 그들 아버지 역시 아들과 같은 동작을 취하고 있다. 이는 비록 제베대오 자신은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지 못했지만, 아들들의 부르심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는 삶의 현장에서 부르심에 걸맞은 삶을 다짐하는 듯하다.

전경에는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예수님께서 “나를 따라오너라.”(마르 1,17)라고 하신 말씀에 응답하는 모습이다. 노란색 망토의 베드로는 무릎을 꿇고 두 팔을 교차하여 가슴에 모은 자세를 취하고 있고, 녹색 망토의 안드레아도 무릎을 꿇고 두 손을 합장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두 사람은 예수님을 향하고 있다. 이들의 동작은 전적으로 예수님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두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직접적인 증인들로 세상에 복음을 선포할 할 준비가 되어 있는 모습이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양옆으로는 피렌체의 주요 인사들이 묘사되어 있다. 이것은 정치적인 의미를 담고 있긴 하지만, 피렌체 사람들은 이 사건에 대한 증인으로 등장한다. 네 어부 제자는 군소리 없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예수님께 자신들을 온전히 맡기면서 그분을 따라나섰다. 나머지 사람들은(우리들은) 직접 부르심을 받지 않았지만, 자신의 자리에서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으로 실천하는 것이 각자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모습일 것이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마태 10,28)

[2015년 1월 25일 연중 제3주일(해외 원조 주일)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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