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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2월 27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26 조회수805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년 2월 27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영적독서

 

카르파초, <그리스도와 수난의 도구>, 1496, 캔버스에 유채, 162x163cm,

역사와 미술 시립박물관, 우디네


 

복자 앨레두스 아빠스의 「사랑의 거울」에서
 
(Lib. 3,5: PL 195,582)
 

그리스도의 모범에 따라
형제적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원수들을 사랑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랑의 완성입니다. 이 사랑을 고무시키려면, "사람들 가운데 제일 아름다운 사람"이면서 당신의 아름다운 얼굴을 포악한 자들이 침 뱉도록 내맡기시고 눈을 멀게 하도록 내맡기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분의 그 놀라운 인내심을 묵상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그분은 당신 어깨를 채찍질에 내맡기시고 군주들과 세력가들에게는 공포가 되었던 그 머리는 가시관의 고통으로 숙여졌습니다. 그분은 모욕과 모독을 참으시고 온유와 인내와 양순함을 간직하시면서, 십자가와 쇠못과 창과 쓸개와 신 포도주를 평온히 견디심으로 인내의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마디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가만히 서서 털을 깎이는 어미 양처럼 결코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온유와 사랑으로 충만되어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그 놀라운 음성을 들을 때, 누가 즉시 사랑에 넘쳐 자기 원수들을 포옹하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이 말씀보다 더 온유하고 더 사랑에 넘친 말이 또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분은 무언가 덧붙이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위해 간구만 하시지 않고 그들을 위해 변호하셨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죄인들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나를 십자가에 못박지만 자신들이 못박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만일 그들이 깨달았더라면 영광의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나를 율법을 거스르는 자로, 거짓으로 자기 자신을 하느님이라고 주장하는 자로, 그리고 백성들을 선동하는 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는 내 얼굴을 그들에게서 감추었고 그들은 내 위엄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올바로 사랑하려면 육신의 정욕으로 부패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육신의 정욕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하여 그는 자신의 모든 사랑을 우리 주님의 거룩한 인간성으로 향해야 합니다. 자기 형제들에 대한 사랑의 기쁨을 더 완전히 누리기 위하여 그는 팔을 펼쳐 원수들마저 참된 사랑으로 포옹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가해지는 모욕으로 인해 이러한 사랑의 불이 식지 않도록 그는 마음속에서 사랑하올 주님과 구세주의 그 온유한 인내심을 끊임없이 바라보아야 합니다.


2015년 2월 27일 사순 제1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120-122)

 

 

 

[말씀이 있는 그림] 생명의 몸과 피

카르파초, <그리스도와 수난의 도구>, 1496, 캔버스에 유채,

162x163cm, 역사와 미술 시립박물관, 우디네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 1460경~1525/26, 베네치아 화파)는 작품에서 풍부하고 조화로운 색채와 빛 처리, 안정된 공간으로 고전적인 화면을 구성한다. 화가는 그림 중앙에 서 계신 예수님의 형상을 중심으로 그림의 주제(성체성사)를 전개한다. 이 작품은 이탈리아 우디네에 산 피에트로 마르티레 성당을 위한 것으로 예수님의 발아래 단위에 그려진 작은 종이에 화가의 서명(Victorjs Charpatjo/ Venetj.opus)과 제작 연도(1496)가 기재돼 있다.

중앙의 두 천사는 하늘에서 커다란 붉은 장막을 잡고 있고, 그것을 배경으로 예수님이 서 계신다. 장막은 예수님의 육화(肉化)를 의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한 1,14)는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장막에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예수님은 왼쪽 팔에 순교의 상징인 십자가를 안고 있으며, 오른쪽 팔은 발아래 성작을 가리키고 계신다. 예수님의 양손과 가슴에서 한 줄기씩 흘러내리는 피는 바닥에 놓인 성작으로 모이고 성체 모양으로 변한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상징한다. 예수님의 손발과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는 인류에게 흐르는 사랑의 표징이다. 마치 땅에서 안개가 솟아올라 땅거죽을 모두 적셨던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듯이(창세 2,6-7),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와(요한 19,34) 세상 모든 사람을 다시 살아나게 하실 것이다. 성령의 표징과도 같은 예수님의 피와 물은 우리에게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내어주는 것이다.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 이는 당신을 믿는 이들이 받게 될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다.”(요한 7,38-39)

예수님 양옆에 대칭적으로 자리한 네 명의 천사는 망연자실과 슬픈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다. 이들 각자의 손에는 예수님의 수난도구들을 들고 있다. 그림 왼쪽부터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찔렀다는 창, 예수님의 손과 발에 박은 못들, 고문할 때 사용한 채찍, 그리고 예수님께서 숨을 거두시기 전 갈대에 신포도주를 적셔 마시게 한 해면이 있다. 또한 십자가 위에는 ‘유다인들의 임금(INRI)’이라는 죄명 패와 가시관이 걸려있다. 결국, 이러한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상징 도구는 우리 모두를 구원하기 위한 사랑(희생)의 도구가 된다. 화가는 이러한 예수님의 희생을 그림 중간 오른쪽에 표범이 사슴을 찢어 피가 흐르는 모습으로도 가시화시키고 있다.

장막을 뒤로 멀리 집들과 성당, 성과 성벽이 보인다. 왼쪽에는 산 피에트로 마르티레 성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우디네 도시의 언덕위에 성이 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힘과 죽음의 세상을 암시하는 성과 잔혹한 표범이, 왼쪽에는 평화로운 세상을 암시하는 성당과 자유롭게 뛰어다니는 사슴이 배치되어 있다.

성체성사의 신비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사도 바오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1코린 11,29)라는 경고의 말을 상기시킨다. 거룩한 성체성사를 모시기 위해서는 서로 사랑과 일치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1코린 10,17)

[2014년 6월 22일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인천주보 3면, 윤인복 소화 데레사 교수(인천가톨릭대학교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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