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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는 생명과 평화의 목소리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끌레멘스신부님 사순 제1주간 금요일 (2015년 02월28일)
작성자이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27 조회수802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1독서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18,21-28

복음

<먼저 형제를 찾아가 화해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0ㄴ-26

 

사순 제1주간 금요일(2015년 02월 28일) 정의와 공정을 부르짖는 생명과 평화의 목소리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

 

“악인도 자기가 저지른 모든 죄를 버리고 돌아서서, 나의 모든 규정을 준수하고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면, 죽지 않고 반드시 살 것이다. 그가 저지른 모든 죄악은 더 이상 기억되지 않고, 자기가 실천한 정의 때문에 살 것이다. 내가 정말 기뻐하는 것이 악인의 죽음이겠느냐? 주 하느님의 말이다. 악인이 자기가 걸어온 길을 버리고 돌아서서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에제 18,21-23).

 

오늘 미사 제1독서에서 예언자 에제키엘은 선포합니다. 하느님은 생명을 기뻐하신다고 선언합니다. 악인이든 선인이든 모두 살릴려는 것이 하느님의 선하진 의지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자신들이 정의와 공정의 길을 걸을 때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은 사랑의 다른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사랑한다면 정의와 공정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에 와 있습니다. ‘스타케미칼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미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공장 45미터 높이 저 굴뚝 위에서는 정의와 공정을 요구하는 해고 노동자 한분이 계십니다. 차광호 형제님이십니다. 벌써 277일째 홀로 추운 칼바람을 견디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정의와 공정이 사라진 우리 대한민국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현장입니다.

 

작년 여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우리 한국을 방문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교황님은 한국을 떠나면서 당신이 ‘고통 앞에서 도저저히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노숙자가 얼어 죽은 것은 그냥 지나가고 주가지수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화되는 것이 말이 되냐고(53항) 물으면서 우리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보게 하십니다. 우리의 관심사는 돈으로 대표되는 물질주의에 매몰되어 있지 않습니까? 돈 벌기에 혈안입니다. 대규모 해고 사태와 4대 강 사업에서 드러났듯이, 사람과 자연환경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습니다. 이윤의 극대화라는 허울 아래 탐욕적 자본주의 경제 논리가 사회 곳곳에사 독버섯처럼 퍼져있습니다. 구미 스타케미칼 공장은 돈과 탐욕이 삶의 중심이 된 우리 사회의 축소판인 것입니다. 이 안에는 ‘나만 잘살면 된다’는 극단적 탐욕적 이기주의가 숨어 있습니다. 여기서 소외와 배척과 불통이라는 죽음의 문화가 생겨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또 말씀하셨습니다.“평화가 가난한 이들을 침묵시키거나 구슬리는 사회 구조를 정당화하려는 구실로 쓰인다면 이는 거짓 평화입니다. 이러한 사회 구조에서, 기득권을 누리는 이들은 그들의 생활 방식을 거리낌 없이 고수할 수 있는 반면에, 다른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애써야 합니다”(218항). 생존의 위협을 받는 사람들은 우리의 관심 대상이 아닙니다. 방송매체에서도 이들의 호소를 듣지도 않고 진실을 뒤틀어 내보냅니다. 거짓 평화가 제공하는 달콤함에 마비된 우리는, 사랑과 정의의 부르짖음에도 나눔과 생명의 호소에도 냉소의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무관심과 방관과 불신의 무거운 침묵만이 지배할 뿐입니다.

 

주님은 오늘 복음에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의로움이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의로움은 공정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소외된 이들과 연대할 때 하느님의 의로움이 우리를 통해서 실현됩니다. 연대는 무엇보다도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관심과 사랑으로 함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아무도 듣지 않는 외침을 우리가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대는 기도로 완성됩니다. 아픔을 함께 느끼면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으로 함께 하는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의 위대한 힘을 저는 분명 믿습니다. 일전에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쌍용 자동차 해직 노동자들이 실의와 절망에 빠져 수없이 목숨을 끊었는데, 서울 대한문 앞에서 사제와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거행한 후에는 단 한 사람의 노동자도 목숨을 끊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생명의 기적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깨어 기도할 때 소외된 사람들은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깨어 기도할 때 소외된 사람들은 악을 악으로, 무력을 무력으로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힘인 선과 평화의 무기를 듣고 싸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 함께 신명나게 사는 세상을 위해 기도 안에서 연대합시다.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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