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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2월 28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27 조회수778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년 2월 28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영적독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문헌 「현대 세계의 사목 헌장」에서
 
(Nn. 9-10)
 

인간의 중대한 문제들에 대하여
 

 

현대 세계는 강하면서도 약하고 최대의 선을 다할 수도 있고 최대의 악을 저지를 수도 있으며, 자유와 예속, 진보와 퇴보, 사랑과 증오의 문이 동시에 열려 있다. 그러나 인간이 발굴한 힘들이 인간을 괴롭힐 수도 있고 인간에게 봉사할 수도 있으므로 이런 힘들을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은 인간 자신의 책임임을 스스로 자각하게 된다. 여기서 인간은 자문하게 된다.

사실 현대 세계가 고민하는 불균형은 인간 마음속에 뿌리 박힌 더욱 근본적인 불균형에 직결되어 있다. 과연 인간 내부에서 여러 가지 요소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인간은 한편으로는 피조물로서 여러 가지 한계성을 체험하면서도 다른 편으로는 제 욕망에 있어서 제한을 받지 않을 뿐더러 더욱 고차적인 생명에로 불리었음을 느낀다.

인간은 또한 여러 가지 유혹 속에서 언제나 취사 선택을 강요당한다. 더구나 인간은 약하고 또 죄인이므로 원치 않는 일을 행하고 원하는 일을 행치 않는 수도 드물지 않다. 요컨대 인간은 자신 안에서 이미 분열을 겪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회의 많은 불화도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나 실천적 물질주의에 젖은 생활을 하는 많은 사람들은 이같이 극적인 상황을 똑똑히 이해하기를 외면하고 또 불행에 짓눌린 사람들은 이런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겨를도 없다.

많은 사람들은 사물의 가지가지 해석 가운데서 마음의 안식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또 어떤 이는 인간의 노력으로써만 참되고 완전한 인류 해방을 기대하며 미래에 지상에 건설될 인간 왕국이 자기 마음의 온갖 소망을 채워 줄 수 있으리라고 확신을 가진다. 또 인생의 의의에 대해서 실망한 나머지 인생의 실존 자체는 고유한 의의라곤 도무지 없지만 인간의 재능만으로써 인생에 전가치를 부여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용감성을 찬미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렇지만 현대 세계의 발전을 직시하며, 인간이란 무엇인가? 위대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존재하는 고통과 불행과 죽음의 뜻은 과연 무엇인가? 막대한 대가를 치르고 획득한 승리는 또 무슨 소용이냐? 인간은 사회에 무엇을 줄 수 있으며 또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 이 지상 생활이 끝나면 무엇이 따를 것인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거나 새삼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들의 수도 날로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랑을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성령을 통하여 사람에게 빛과 힘을 주시어 사람으로 하여금 지극히 높으신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게 하셨음을 교회는 믿는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이름 외에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은 천하에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음을 믿는다. 동시에 교회는 인류 역사 전체의 열쇠와 중심과 목적이 스승이신 주님 안에서 발견됨을 믿는다.

교회는 또한 이 모든 변천 속에도 불변의 것이 많다는 사실을 주장하며 그 불변의 것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뿌리 박혀 있다는 사실과 그리스도는 어제도 오늘도 또 영원히 존재하실 것을 믿는다.


2015년 2월 28일 사순 제1주간 토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128-129)

 

 

제2차 바티칸 공의회



(1) 공의회의 의미


공의회라는 종교회의는 교회를 사목할 책임을 받은 주교들이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문제와 사목문제를 협의 결정하는 공식 회의로서, 세계 공의회와 지역 공의회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공의회는 주교단 교도권의 단체적 표현으로서 세계 공의회를 뜻한다.


공의회 즉 Concilium(꼰칠리움)은 "불러 모은다"는 의미를 지니면서, 소집된 모임을 나타내기도 한다. 그런데 교회 용어로는 교회의 제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 소집된 몇 개의 교회, 혹은 얼마의 주교들의 모임을 일컫는다. 그런데 이러한 공의회가 성립되기 위한 절차나 조건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지만, 주교단이 교황과 일치하여 결정한다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러므로 현행 교회법에서는 교황에 의해 소집되어 주제되고 승인된 전 교회 주교단의 회의만이 세계 공의회라고 한다. 그런데 만일 공의회가 진행 도중 교황이 서거하면 자동적으로 그 공의회는 중단된다. 그러나 후임 교황이 공의회를 재개하면 속개되지만 그렇지 않으면 자동 유회된다.


이것은 교회 분열과 더불어 교황보다 공의회가 우월하다고 하는 사조가 대두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회의가 중단되도록 규정하고 있다(교회법 229조). 공의회에 참가할 수 있는 사람은 교회 주교들과 초청받은 신자들의 대표 그리고 국가원수, 학자, 타종교의 지도자, 수도회 장상 등이다. 그러나 결정권은 주교에게만 국한되어 있다.

(2) 공의회의 기원


교회사에서 최초의 공식회의라고 볼 수 있는 회의는 기원 후 49-50년에 예루살렘에서 개최된 사도회의였다.


이 회의는 유다교에서 개종한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율법을 그대로 준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가르쳤다. 그래서 바울로와 바르나바가 그들과 논쟁을 하였으나 해결되지 않으므로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원로들에게로 사람을 보냈다. 예루살렘에서 이 문제를 가지고 사도들과 원로들이 모여 숙고한 후에,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약의 교리는 받아들이지만 율법의 규정은 부과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 그래서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회의의 결과를 안티오키아 교회에 보냈다. 안티오키아의 교회에서는 사도들과 원로들의 결정을 기쁘게 받아들였으며, 예루살렘 교회 회의는 그 후에 잇따른 모든 교회 회의의 모범이 되었다.


이 회의 이후 1차 니케아 공의회가 열리기 전까지 수많은 교회 회의가 열렸는데, 이런 회의는 지역적으로 열린 지역 공의회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1세기에는 예루살렘 종교회의가 열린 후에 다른 회의가 열렸다는 문헌은 거의 없었고, 2-3세기의 박해시대에는 지역 공의회가 열렸다는 근거는 조금 있다. 즉 175년경에 여러 번의 집회가 있었고, 3세기 즉, 250년경에는 박해 때 신앙을 버린 이들이 교회에 되돌아오는 것을 다루었다.


이렇게 세계 교회가 열리지 못한 이유는 로마 제국의 각지에서 사나운 위세로 계속된 박해와 전쟁, 혹은 교통의 곤란으로 교회의 여러가지 난 문제를 토의하기 위해 전 세계의 주교를 소집하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로마 제국 내의 평화가 회복되고, 완전한 자유를 향유한 후에 열린 제 1차 니체아 공의회의 개최가 가능하기까지, 교회 회의는 각 지방 혹은 각 지역에서 수차례 열렸다.

(3) 공의회의 결정문이 지니는 의미


세계 공의회의 결정은 신앙과 도덕적인 결정에 있어 아무 오류가 없다는 무류권의 권위를 갖는다. 이러한 교의상 결정의 의미는 그 결정의 의도를 이해함으로써 충분히 밝혀지는데, 이를 위해 우리는 결정문의 정립 과정에 대해 알 필요가 있고, 그 결정을 내린 회의가 처해 있던 전후 관계를 알 필요가 있다.


특히 모든 공의회는 교회사이고, 하느님의 말씀이 충만된 구세사적 전개이기 때문에, 그 결정의 의미는 구세사 전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또 회의의 결정 안에는 불멸의 신앙 유산이 선명하게 들어나 있는가 하면 역사적 상황 안에서 적용될 사목상의 지침도 타당성의 범위에 대해 여러 가지 뉘앙스가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사목 행정에 관한 사항들은 다수결로 결정할 수 있지만, 신앙과 도덕의 중요사항을 결정할 때에는 다수결로 할 수 없고, 만장일치적인 합의를 볼 때 까지 결의안을 수정해 가면서 몇 번이고 의사표시를 거듭한다. 이러한 것으로 미루어 공의회의 결정문은 신앙의 유산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해석이요, 교도권의 최고 표현이며, 세계 주교단의 가장 완벽한 표현이다. 그러므로 이때 나온 세계 공의회의 결정문은 전세계의 정치에도 직접 간접으로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4)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제2차 바티칸 공의회(제21회 공의회)는 교황 요한네스(요한) 23세(재위 1958~1963)에 의해 소집되었는데, 회의 도중 그가 죽자 바오로 6세(1963~1968)에 의해 계승되었다. 이 회의는 1959년 1월 교황 요한네스 23세의 가톨릭교회의 쇄신(현대화)과 교회(신?구교) 일치를 표방한 담화 발표로부터 비롯되어, 이 목적 실현의 추진을 위하여 1962년 10월 11일에 개회되었다. 회원 3,043명 중 2,540명과 이례적으로 프로테스탄트 교파들에서 옵서버 60여 명이 참석하는 등 사상 최대규모의 공의회로서, 공의회 사상 유례없는 열기를 보였다.


제1차 바티칸공의회가 근대적 사상과의 대결을 강력히 제시한 데 반하여, 이 회의는 ‘시대에의 적응’을 내세워 교회의 보수적인 면을 완전 탈피, 과감한 교회제도, 전례의식, 교육, 계시 등에 관한 재해석과 개혁의 자세를 드러내 보여 교회에 새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더군다나 1965년 12월 8일의 폐회 전날, 1054년에 있었던 동방교회(東方敎會)에 대한 파문(破門)을 피차간에 취소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근 10세기 가깝게 등져 온 동?서 교회 간에 화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성과를 보았다.


이 회의는 교회, 전례, 사목(司牧), 계시 등에 관한 4개의 헌장과, 교회일치, 매스미디어 등에 관한 9개의 교령(敎令), 그리스도교적 교육 등에 관한 3개의 선언을 채택함으로써 획기적인 교회개혁의 성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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