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사순 제2주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1 조회수877 추천수12 반대(0)

3월의 첫날입니다. 학생들은 새로운 학년을 시작합니다. 새로운 반, 새로운 선생님, 새로운 친구들, 새로운 교과서와 함께 할 것입니다. 예전에는 학생들이 새로운 학년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녀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주일학교를 담당하는 보좌신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학생들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제가 일하고 있는 성소국은 예비 신학생들을 도와주고,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부서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관심분야에 따라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면서 좋은 음악을 떠올릴 것입니다. 미술을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면서 한 폭의 그림을 생각할 것입니다. 금융을 하는 사람은 세상을 보면서 경제적인 이익과 손실을 따질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은 봄이 오면 무엇을 심을까를 생각할 것입니다.

 

원망과 분노가 가득한 사람에게 세상은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세상은 아름답지도 않고, 세상은 악취가 풍기는 더러운 곳으로 보일 것입니다.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사람에게 세상은 불안하고, 허무하게 보일 것입니다. 교만한 사람, 욕심이 가득한 사람에게 세상은 누군가를 밟고 올라가야 하는 양육강식의 전쟁터처럼 보일 것입니다.

 

보는 것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의 이야기입니다. 이성계는 무학대사를 놀릴 생각으로 무학대사의 드러난 겉모습을 꼬집어서 그대는 돼지처럼 보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무학대사는 이성계를 바라보면서 왕께서는 부처님처럼 보입니다.’라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성계는 나는 그대를 놀리려고 돼지라고 하였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나를 부처님이라고 합니까?’라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무학대사는 뼈있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돼지의 눈에는 세상이 돼지처럼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세상이 부처님처럼 보이는 법입니다.’ 이 말에 태조 이성계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신앙인들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슬픔과 고통을 넘어서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둠이 깊으면 밝은 빛이 드러나는 새벽이 가까이 옴을 알아야 합니다. 사랑하면 사랑할 일들이 생기고, 감사하면 감사할 일들이 생기며, 세상 모든 것들에 드러나는 하느님의 사랑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제1독서는 한편의 그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들을 데리고 묵묵히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산에 오르는 아들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하느님께 바치려하고, 아들은 아직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드디어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치려할 때, 천사가 아브라함을 말리며, 제물로 쓸 을 줍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줍니다.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려는 믿음을 보여 주었으니,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축복을 주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성서 말씀에서 아들까지 제물로 바치려하는 아브라함이 비정하다고 하는 생각, 죽을지도 모르고 아버지를 따라가는 아들 이사악이 불쌍하다고 하는 생각은 올바른 생각은 아닐 것입니다. 물론 생각이야 할 수 있지만 오늘 성서가 이런 말씀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것은 아버지의 비정함, 아들의 불쌍함은 아닐 것입니다. 삶의 기준이 하느님의 영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결정적인 순간에는 하느님의 영광을 따르기 보다는 나의 욕심을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혀가자 뿔뿔이 도망을 갔던 제자들,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죽겠다고 했던 베드로는 3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재물 앞에서, 명예 앞에서, 권력 앞에서 우리들의 신앙은 너무나 약해지곤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더욱 멋진 그림 같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제자 3명을 데리고 산에 오르셨습니다. 산에 오르자 분위기는 바뀌고 예수님의 모습은 거룩하게 변하였습니다. 제자들은 깜짝 놀라서 예수님을 바라보는데 더욱 놀라운 일들이 눈앞에 펼쳐집니다. 선조들 중에 가장 위대한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을 드립니다. 주님 여기에 초막 3개를 지어서 살고 싶습니다. 하나는 예수님, 다른 둘은 모세와 엘리야께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이 복음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 환하게 변하셨을 때 입었던 옷의 재질은 무엇인지, 제품은 어디 것인지를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산위에 지을 초막의 가격은 얼마일지, 앞으로 가격이 오를지, 내릴지를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며칠 전에 읽은 글이 생각납니다. ‘잔잔한 파도는 훌륭한 뱃사공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 산이 깊어야 계곡의 물도 마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우리를 편안하게 하고, 풍요롭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친 파도를 헤치면서 사공은 배를 운전하는 법을 배우듯이, 우리들은 세상의 시련과 갈등을 두려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면 이 시련과 갈등은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 시키는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편이신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당신의 친 아드님마저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어 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드님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바오로 사도는 오늘 우리에게도 똑 같은 말을 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누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어둠도, 칼도, 굶주림도, 헐벗음도, 죽음도우리를 하느님의 사랑으로부터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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