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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3 화/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말씀이 살아 꿈틀거리는 몸짓으로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2 조회수736 추천수6 반대(0) 신고
    

사순 2주 화 마태 23,1-12(15.3.3)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마태 23,3)


 

 

 

                        

 말씀이 살아 꿈틀거리는 몸짓으로  

 

알맹이 없는 소리와 말뿐인 공염불(空念佛)이 무성한 오늘이다. 이는 영성생활에서도 다르지 않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까지 들었던 좋은 강의나 강론의 백만분의 일만 실행했다 해도 이미 수십번 성인, 성녀가 되고도 남았을지 모른다. 이사야 예언자는 야훼 하느님의 위대하심과 거룩하심을 강조하면서 하느님을 신뢰하고 신앙에 바탕을 둔 바른 정치를 펴라고 지도층에 권고한다. 그러나 귀족들과 부자들은 도적과 짝하고 뇌물에 취하고 사례금을 강요하며 가난한 자들을 학대하면서 종교의식에는 열심이었다. 이사야는 오늘의 대목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정화시킬 수 있는 수단은 희생제물이나 문화적 행사가 아니라 정의의 실천과 항상 용서할 준비가 되어있는 하느님의 자비심임을 힘주어 말한다. 이사야 예언자는 나약하고 악에 물들기 쉬운 인간의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회개하는 인간을 용서해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야말로 이러한 현실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힘임을 확신하였다.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도자들과의 긴장이 더욱 고조되어가는 가운데 수난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질책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무겁고 힘겨운 짐을 지우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며, 자기를 과시하려고 잔칫집 윗자리와 회당 높은 자리를 좋아하며, 사람들에게 스승이라고 불리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23,3-7 참조).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대목에서 일곱 번이나 그들을 꾸짖으신다. “불행하여라, 너희 위선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아!”(23,13-29 참조) 위선은 불행을 불러모을 뿐이다.

우리도 실천은 하지 않고 말만을 위하여 모세의 자리에 머무는 때가 얼마나 많은가! 어쩌면 우리는 고요와 침묵 가운데 하느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새기기보다는 ‘미친 듯 소리를 좇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삶을 살고 있지는 않는가? 참으로 영적으로 자극을 주고 도움이 되는 많은 것을 접하면서도 마음과 혼에 새기지 못하고, 귀에서 곧바로 입으로 쏟아버리는 그 끝은 얼마나 공허할지. 행동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신앙은 위선이다. 이제 제 분수를 알고 좀 더 진실해져보자! 나를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대로 어떤 죄와 어둠 상황에서도 용서해주시고 정의를 이루시는 하느님의 그 힘에 기대어 내 안에서 그분이 일하시도록 내 뜻을 내려놓고 힘을 빼고 바보가 되어보자.

내 말과 행동이 일치하면 덕 있고 좋은 사람일 수 있으나 제멋대로 행동할 수도 있는 것이다. 신앙인에게 언행이 일치한다는 것은 단지 덕행이 뛰어남을 말하는 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내 뜻을 내려놓고 나의 움직임 안에 말씀이 작용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내 몸짓와 마음과 영혼의 작용을 통해 말씀이 살아 움직일 때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곧 하느님이 되고 하늘나라를 선포하는 것이다. 언행일치는 곧 영을 따라가는 향기로운 몸짓이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23,12)라고 가르치신다. 이어 하느님 앞에 한없이 낮추고, ‘모두가 형제이므로’(23,8) 동료 인간 누구에게도 ‘스승’이나 ‘선생’이라 불리거나 이 세상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 동료 인간 사이에 수직의 지배 관계나 종속 관계를 형성하는 바로 그때 하느님은 변두리로 밀려나시게 되고 우리는 위선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빠져버리고, 잊혀지고, 소외되고,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바로 거기에 ‘주인이요 왕’이 되어버린 위선적인 자신이 흉물처럼 드러나는 것이다. 따라서 위선에서 벗어나 언행이 일치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려면 하느님을 내 존재의 첫 자리에 모셔야 하며, 나의 생각과 행동의 동기도 목적도 오직 그분이어야 한다. 우리가 주님을 내 심장(心)의 버금(亞) 자리로 밀어낼 때 악(惡)이 발생하고 육(肉)의 노예가 되어 어둠 속을 헤맬 것이다. 내 삶의 가장 귀한 보석은 무엇인가?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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