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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3월 4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3 조회수611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년 3월 4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영적독서

 


성 이레네오 주교의 저서 「이단자를 거슬러」에서
 
(Llb. 4,14,2-3; 15,1: SCh 100,542.548) 

미래를 예시한 사건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섬기는 데 항구해야 함을 깨달았다. 

 

태초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관대하심으로 인간을 지어내셨습니다. 그 다음 성조들을 구원으로 부르시고 당신을 모르는 이들에게 당신을 따르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한 백성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영을 지니고 하느님과 친교를 누리는 것을 배우도록 예언자들을 세우셨습니다.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그분은 당신을 필요로 하는 이들이 당신과의 친교를 누리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건축가처럼 구원의 계획을 설정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이 에집트에서 당신을 모르던 사람들에게 양식을 주셨고 사막에서 헤매던 이들에게 적합한 율법을 주셨으며 약속의 비옥한 땅에 들어간 이들에게 합당한 유산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성부께로 돌아온 이들에게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가장 좋은 옷을 해 입히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인류를 구원의 대합창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요한은 묵시록에서 "그의 음성은 거대한 물소리 같았다."고 말했습니다. 성부께서는 부요하시고 위대하시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의 불 참으로 거대합니다. 그리 고 하느님의 말씀께서는 이 거대한 물을 통과하심으로 당신께 종속된 이들에게 모든 민족에 잘 맞는 적합한 율법을 거저 주셨고 그들을 성실히 도와주셨습니다. 이 율법으로 하느님은 어떻게 장막을 만들고 성전을 짓고, 어떻게 레위인들을 뽑고 희생 제물과 봉헌물을 바치며, 또 어떻게 정결 예식을 거행하고 여러 가지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규정하셨습니다.

그분 자신에게는 이런 것들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분은 영원으로부터 온갖 좋은 것으로 충만 되어 계셨고 모세 이전만 해도 모든 향기와 감미로운 향료를 지니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항상 우상으로 향하는 사람들을 가르쳐 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덜 중요한 것을 통해서 가장 중요한 것에로, 그림자를 통해서 실재에로, 일시적인 것을 통해서 영원한 것에로, 육체적인 것을 통해서 영적인 것에로, 지상적인 것을 통해서 천상적인 것에로 부르시고, 여러 가지의 개입을 통해서 사람들이 하느님을 섬기는 데 항구토록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산 위에서 너에게 보여 준 모양대로 만들어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십 일 동안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과 천상의 모형들 그리고 영적인 모상 및 앞으로 다가올 것들의 예시를 외우는 것을 배웠습니다. 바울로 사도 역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그들은 동반자인 영적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습니다. 그 바위는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에 기록되어 있는 것들을 나열하면서 이렇게 결론 지었습니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당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되었으며 그것이 기록에 남아서 이제 세상의 종말을 눈앞에 둔 우리에게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미래를 예시한 사건들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섬기는 데 항구해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율법은 생활의 교훈이기도 하고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예언이기도 하였습니다.
 

2015년 3월 4일 사순 제2주간 수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162-164)


 

 

 

성 이레네오 주교 순교자 (축일 06월 28일)

 

성 이레네우스(또는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Smyrn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Izmir) 출신으로 스승인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2월 23일) 주교를 통해 사도적 정통성을 이어받았다. 그의 출생 연도에 대해 논란이 많지만 130-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로마(Roma)에 와서 오랫동안 머물렀으며, 이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가 세운 교리 학교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언제 무슨 이유로 프랑스의 리옹으로 가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에 의하면 성 폴리카르푸스가 그를 프랑스 지방의 선교사로 파견하였다고 한다. 그는 177년 리옹 교회의 특사로 교황 성 엘레우테루스(Eleutherus, 5월 26일)를 방문하여 몬타누스주의 문제에 대해 상의하고 리옹 지방의 순교자들에 대해 보고하였다. 그가 로마에 체류하는 동안 리옹의 주교 포티누스(Photinus, 6월 2일)가 순교하였으며, 리옹에 돌아온 즉시 그는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리옹 지역의 복음 선포에 열정적이었고, 프랑스 지방의 영지주의자와 피나는 싸움을 전개하였다. 이때 그가 쓴 저서가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이단 사상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면서 동시에 초기 교회의 정통 신앙을 확립하였다. 성 이레네우스는 ‘가톨릭 교회의 수호자’라고 불릴 정도로 2세기 신학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났으며, 특히 영지주의 계통의 이단들에 대항하여 정통 교리를 수호한 대표적인 교부이다. 그의 저서에는 사도들의 전승이 그대로 담겨 있으며 또 교황 수위권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다. 투르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에 의하면 그는 202년경에 순교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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