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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개, 과거로부터 지속되온 고집을 꺾음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4 조회수780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예수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을 따라 하지 마라.”

           

          오늘 같은 말씀은 사제인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기도 한데  듣기에 거북하지요.

          그래서 나에게가 아니고

          다른 사제들에게 해당되는 말씀이라고 강변하거나

          2천 년 전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에게만 하

          신 말씀이라고 회피하곤 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내게 하시는 말씀을

          회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

          나를 나무라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나무라는 말씀은 내가 미워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하거나

          적어도 사랑으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겠습니까?

          사랑으로 하는 말은 우리가 듣기 싫어하지 않지요.

          그런데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사랑이 아닐 리 없고

          미워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 리는 더더욱 없겠지요.

           

          그럼에도 나무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사탕을 줘야만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유아성 때문이거나

          주님을 지극히 인간처럼 생각하는 잘못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나무라심을

          사랑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

          우리는 편식적이고 유아적인

          사랑의 미각을 바꿔야 하고

          인간에 대한 부정적 체험을

          하느님께 투사하지 말아야 합니다.

           

          전에도 한 번 얘기한 적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비판과 비난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비난은 사람을 공격하고

          비판은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은 파괴적이고

          비판은 건설적이고,


          비난은 미움의 발산이고

          비판은 사랑의 고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나무라시는

          주님의 말씀을 싫어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을 비난이나 일삼는

          사람들의 말과 동일시하는 거지요.

           

          그런데 나무라시는 주님의 말씀

          회피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잘못을

          그저 나무라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잘못을 반드시 고치라는 말씀인데

          그 잘못을 고치기 싫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잘못이라면 고쳐야 하고,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 고쳐야 되는 것 아닙니까?

          하지만 잘못이라는 것도 알고,

          고쳐야 된다는 것을 알아도 안 됩니다.

           

          제가 요즘 농담 삼아

          죄 중에 있는 형제라고 놀리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담뱃값도 오르고 사순절이 되었는데도

          끊지 못해 괴로워하는 형제들입니다.

          게다가 저희 선배 형제님 중의 한 분이 병원 사목을 하시는데

          병원의 금연 클리닉을 소개하며

          연일 압박을 하시는 것입니다.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지 못하는 자신이 밉고 우울하기까지 한데

          상처를 건드리듯 그것을 자꾸 건드리니 듣기 싫어합니다.

          이때 그들이 하는 말은 아는데도 안 되고,

          노력했는데도 안 된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형제들이 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지난주

          신문에 난 신간 소개에서 저는 이런 문구를 보았습니다.

          시야가 좁아지면 자신이 하는 노력만 볼 수 있을 뿐

          과거로부터 지속해온 고집은 보이지 않는다.

          그럴 때 나오는 말이 아는데 안 돼요.’.”

           

          사순절의 회개란 과거로부터 지속해온

          이 고집을 꺾는 것이 아닐까요?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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