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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할 수 있습니다 / 반영억라파엘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4 조회수1,158 추천수16 반대(0) 신고




사순 제2주간 수요일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것이다.>




17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길을 가시면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18 “보다시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사람의 아들은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사람의 아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9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채찍질하고 나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은 사흗날에 되살아날 것이다.”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 마태오  20,17-28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으뜸으로 인정받고 그에 상응하는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충분한 대접을 받는 사람은 흔하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하더라도 진정한 존경과 사랑으로 인정을 받는 사람이 많지 않음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세속 안에 있으면서도 세속을 떠나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가 진정 존경을 받을 사람입니다. 세상은 높아지라고 하지만 오히려 섬기는 사람, 세상은 첫째만을 기억하지만 오히려 종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께로부터 인정을 받는 사람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는 자기 두 아들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 앉기를 소망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을 어찌 탓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아무 정성과 노력이 없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욕심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욕심을 지니게 되면 반드시 적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는 낌새를 알아챈 다른 열 제자가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생각한 것에서도 바로 그러한 마음을 대변해 줍니다.




예수님께서는“무엇을 원하느냐?”물으셨습니다. 물론 우리는 영광을 원합니다. 그러나 영광은 고통 없이 주어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과 죽음을 통하여 부활의 영광에로 나아가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수난을 예고하시지만 제자들은 딴청을 부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태20,22)하고 물으시자 “할 수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지만 사실 그들은 의미도 모르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 잔은 모욕과 천대, 고통과 십자가의 죽음을 뜻했습니다. 종이 되어 남을 섬기는 낮아지는 삶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덥석 대답해 놓고는 딴전을 피우는 그들의 모습이 우리에게도 여전합니다. 분명 예수님의 길은 장차 어떤 '자리'에 앉기 위해서 가는 길이 아니라 다만 그것이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이루고 완성하는 길이기에 그리로 갈 따름입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기에 행할 수 있는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기도합니다.


 


제가 어느 본당에 있었을 때의 일입니다. 정초가 되면 평협회장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점 보러 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철학관에 찾아가서 일 년 운수를 보는 일은 미신행위다'라는 것을 환기시켜 주십시오." 점 보러 가서는 사람이 많으면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기다린답니다. 양다리 걸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례성사를 받으면서 마귀를 끊어버리겠다고 선언해 놓고서는 어려운 일이나 우환이 닥치면 하느님 보다는‘어디 용한 사람이 없나?’살피게 됩니다. 허례허식을 버리겠다고 맹세하고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잘 보이려는 행동을 합니다. 남이 나를 섬겨주기를 바라는 허영의 마음이 가득할 때도 있습니다. 오로지 주님을 믿으며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하고서는 미사참례를 소홀히 할 때도 있습니다. 모처럼 손님이 오면 함께 미사 참례하자고 권유하면 좋으련만 그를 배려한다는 빌미로 주일미사까지 궐합니다. 약속된 영생에 대한 희망을 말하면서도 눈앞에 것에 흔들리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오늘도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아직도 아무 수고와 땀도 없이 영광을 바라느냐? 고 물으십니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기꺼이 “할 수 있습니다.” 대답하는 오늘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 대답에 항구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군림해서 힘으로 내리누르는 삶이 아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는 삶을 살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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