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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5 조회수1,316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3월 5일 사순 제2주간 목요일
 
If they will not listen to Moses and the prophets,
neither will they be persuaded
if someone should rise from the dead.
(Lk.16,31)
 
 
제1독서 예레 17,5-10
복음 루카 16,19-31
 

마루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그의 ‘명상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마음의 고통은 화를 내게 된 원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화를 냈을 때 얻게 되는 결과다.’

당장에는 그 상황, 그 사람 때문에 기분이 상하고 마음을 다친 것 같아도 사실은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자체가 마음을 가장 힘들게 한다는 것이지요. 사실 인간이 과장하기 가장 쉬운 것 중의 하나가 자신의 고통이 아닐까요?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하고 가장 힘든 사람은 자기 자신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고통의 원인이 아니라 고통 중에 있을 때 어떤 선택과 결단을 내렸으며 그에 따라 어떻게 행동했는가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복음을 바라봅니다.

오늘 복음의 부자와 라자로 이야기는 흥미진지하게 진행이 되는데, ‘인생 역전’이라는 단어가 생각나는 구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생전에 라자로에게 물 한 방울, 빵 한 조각 주지 않은 부자가 죽어서는 오히려 물 한 방울만 달라고 애원합니다. 물 한 방울, 참으로 별 것 아니지요. 그런데도 이 물 한 방울 조차 얻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실 부자가 나쁜 사람이라는 증거는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탐욕을 부린 것도 아니고, 남의 재물을 빼앗지도 않았습니다. 간음도 저질렀다는 이야기가 없으며, 그 외의 어떤 잘못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형제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하는 것을 볼 때, 형제애가 강한 착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죽어서 고통을 받는 이유는 단 한 가지, 자신의 자리에서 충분히 베풀 수 있었던 자비를 외면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또 한 명의 주인공인 라자로를 바라보십시오. 그 역시 어떤 사람이었는지, 특히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증거 역시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선행을 베풀었다는 사실도, 의로운 행동을 한 것도 없습니다. 단지 모든 고통과 시련 속에서 힘들어 했다는 것만을 전해줍니다. 그런데도 하늘 나라의 영광을 얻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그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어떤 불평불만을 남기지 않습니다. 가장 비참한 상황을 순수하게 받아들였고, 하느님의 역사하심에 자기 자신을 봉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이 복음에서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너무나도 비참했던 이 가난한 남자의 이름을 ‘라자로’라고 밝히신 반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마음껏 누린 부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름이란 특별한 의미가 담겨 있지요. 그만큼 하느님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이고, 그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인생역전이라는 말은 텔레비전의 광고 문구만은 아닙니다. 실제로 우리의 마지막 날에 이루어질 수 있는 축복의 말이 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상황에서 어떤 선택과 결단을 내리고 있느냐는 것이지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는 이 사순시기, 나의 죽음에 앞서 세상 안에 어떤 자비를 실천하고 있었으며 동시에 주님의 뜻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살고 있었는지를 생각해야 할 시기입니다.

영원히 살 것처럼 꿈꾸고 오늘 죽을 것처럼 살아라(제임스 딘).


무엇이 진정한 인생역전일까요?

 

경청과 공감(데이비드 스터트, ‘적응력이 실력이다’ 중에서)

보험 회사에서 일하는 롭은 입사 면접 중에 한 여성 지원자에게 자신의 강점을 말해 보라고 했다. 그녀는 “고객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언제라도 제가 그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고객에게 신뢰를 줘 상담이 더 잘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뒤 롭은 팀원들과 어떻게 하면 고객들이 좀 더 마음의 평정을 찾을 수 있을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전화 응대 시 첫 인사말을 “저는 웬디입니다.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라는 의문문에서 “저는 웬디입니다.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라는 평서문으로 바꿔 보기로 결정했다. 이 작은 차이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들은 상담자가 일을 제대로 처리해 줄 거라는 신뢰감을 가졌다.

어느 날, 지사의 부사장인 켄이 고객에게 “안녕하세요, 저는 켄입니다. 시작하기 전에 여쭤 볼게요. 다친 분은 없습니까?”라는 인사말을 추가하자고 제안했다. 막 사고를 당해 우울한 마음으로 보험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고 상상해보라. 보험 회사 직원이 사고 규모나 보상 금액 등의 사무적인 일에만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 더욱 우울해질 것이다. 그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주민등록 번호 대신 “다친 분은 없습니까?”라고 걱정스럽게 묻는다면 어떨까? 고객의 안녕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말로 상담을 시작하면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 상대방의 선의를 신뢰하는 대화로 이끌 수 있었다.

변화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미처리 청구 건수가 평균 1만 건에서 4,000건으로 줄었고 고객 만족도는 올라갔다. 회사를 나가는 직원도 줄었고, 남아 있는 직원들의 충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경청과 공감의 말을 하는 오늘이 되셨으면 합니다.


평생 경청과 공감을 실천하신 성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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