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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7 토/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제정신차려 주님께 되돌아가는 길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6 조회수862 추천수4 반대(0) 신고
    

사순 2주 토 루카 15,1-3.11-32(15.3.7)


주님은 기꺼이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시다.”(미카 7,18)


 

 

The Parable of the Lost Son

 

                        

 제정신차려 주님께 되돌아가는 길  

 

인간은 무엇인가를 찾아 어딘가로 떠났다가 되돌아가는 '길 위의 존재'이다. 그런데 많은 순간 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원하는 것을 찾고 자기뜻을 이루려고 앞만 보고 달려갈 때가 많다.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가난한 사람들의 예언자 미카는 가난한 이들을 희생시키는 상류 계층의 불의에 대해 심판하고 있다. 그는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이 썩었음을 고발하면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밝히시리라 예언한다. 그렇지만 그는 하느님께 용서를 빌면서, 그들의 죄를 눈감아 주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야훼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다((7,18-19). 하느님께서는 유배지에서 돌아온 백성들에게 요르단 강 건너편의 비옥한 땅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자비심을 드러내시고 유배지에서의 기적을 되풀이하셨다. 이 기도속의 믿음은 죄를 기꺼이 용서하시는 주님의 한없는 자애에 기초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비록 백성들이 불충실하다 해도 구원계획을 포함한 당신의 모든 약속들을 파기하지 않으신다.

주님은 “허물을 용서해주시고, 죄를 못 본 체해 주시며,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애를 품으시는”(미카 7,18-19) 분이시다. 하느님의 자애로 인하여 죄로 점철된 인간의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애에 대한 응답과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로서 끊임없이 회개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의 용서는 진정한 구원이며, 해방이며 혁신이며 아울러 새로운 창조이다. 하느님께서는 그저 고분고분하고 어정쩡한 부성애로써 우리의 허물을 모르는 채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새로운 책임을 맡기시고 선으로써 악을 이길 수 있는 확신을 주신다. 이렇듯 그분은 죄인에게도 살아가는 기쁨을 다시 내려주신다.

잃었던 아들을 되찾고 기뻐하는 아버지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세관원들과 죄인들과 자주 어울려 식사하는 것을 심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리사이들과 율사들에게 하신 비유 말씀이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하는 죄인들(작은 아들)을 반기시기에 바리사이들과 율사들(큰아들)도 하느님의 이 기쁨에 동참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자기 몫을 챙겨 아버지 집을 떠났던 작은아들은 제정신이 들자 뉘우치며 아버지에게 품팔이꾼으로라도 삼아주시길 바랐다(15,18-19). 아버지는 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15,20) 아버지는 원망도 질책도 하지 않고 그의 회개를 기뻐하며 오히려 잔치를 벌이고 아들로서의 자리를 회복시켜 주었다. 큰아들은 아버지의 자비를 이해하기는 했지만 동생에게 주어진 용서의 선물을 함께 기뻐하고 공유할 줄을 몰랐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큰아들도 잔치에 참가하여 함께 즐기기를 원하셨다.

생각해보자! 하느님과 함께 있고 그분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한 행복이 어디 있는가. 그런데 우리는 육(肉)의 영에 사로잡혀 아버지의 집, 곧 그분의 한없는 자애와 생명을 주시는 숨결을 거부한 채 자신을 찾아 방황한다. 거짓 허상을 찾아 떠돌며, 공허한 말잔치와 조화(造花)와 같은 어색한 아름다움에 속아 넘어가며 자기만족과 착각의 늪을 헤매고 있음도 알아채지 못한 채! 이제라도 하느님의 자애(慈愛)를 잊고 자애(自愛)에 몰주하여 자꾸만 주님으로부터 멀어져가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고 ‘제정신을 차려’(15,17) 아버지께 되돌아가자. 한없이 자애로우신 그분의 사랑으로 매순간을 이어가면서도 대죄 중에 죽는다면 얼마나 무책임하며 비참한 일인가! 매순간은 그렇게 도전이다. 죽음과 죄와 육의 영에 사로잡히는 그 순간이 바로 아버지께로 되돌아가는 반환점임을 기억하자. 주님께서는 내가 돌아가기로 작정하기만 하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부터 달려오셔서 안아주실 것이다. 지금이 바로 되돌아가야 할 때이다! 그 길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다.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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