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식과의 거리
매일 아침 받아보는 인터넷 이메일 편지에 종교학자 정진홍 교수님의 글이 있었습니다.
“자식은 끓는 국을 갖다 주면 꼭 먹기 좋게 식을 만한 거리를 두고 살아야 한다고요.
이것이 비단 지리적인 거리만이겠습니까?
끓던 마음이 식어 따뜻해질 수 있는 그런 마음의 거리이기도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더 현명하게 ‘거리’를 헤아리며 살아야 잘 늙는 사람이 될 것 같습니다.”
자식은 그저 ‘품안의 자식’이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나 봅니다.
자식은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다 컸다고 부모 마음을 그토록 몰라줍니다.
따라서 자식 된 마땅한 도리로 무언가를 물질적으로 잘 해드리기보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벌어진 거리를 좁히는 것이겠지요.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큰아들에게 우리 자신을 비춰봅니다.
큰아들은 항상 아버지 곁에 있었기에 동생처럼 아버지 곁을 떠나 먼 거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으로는 너무 먼 거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알기를 똥 친 막대기 취급을 하며 화를 내는 큰아들을 아버지는 달래십니다.
부모와 자식은 모든 거리를 초월합니다.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멀어진 거리를 좁히고자 나지막이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 박기석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