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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마음의 성전을 가꾸어라 /반영억라파엘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8 조회수1,518 추천수17 반대(0) 신고




사순 제3주일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3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5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 요한 2,13-25





마음의 성전을 가꾸어라

 


찬미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과 평화를 만든 한 주간을 감사하며 또 새로운 한 주간을 살아갈 힘을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은 성전정화를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으로 성전이라고 하면 하느님을 찬미하고 기도드리기 위해서 건축한 외적인 건물을 생각하고 또 말합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성전이고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1코린3,16.17) 하고 말합니다. 단순히 눈으로 보이는 기도의 집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이 곧 성전인 것입니다. 더욱이 성체성사로 오시는 예수님을 모시고 있기에 성전입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은 예수님 자신이 성전임을 가르쳐 줍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요한2,19-21). 당신 몸을 성전으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사흘 안에 세우겠다.는 말씀은 죽음에서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시록에서는 새 예루살렘의 도성을 얘기하면서 “나는 그곳에서 성전을 보지 못했습니다. 전능하신 주 하느님과 어린양이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도성은 해도 달도 비출 필요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그곳에 빛이 되어 주시고 어린양이 그곳의 등불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묵시21,22-23)하고 말합니다.

 


성전이란 특정건물만도, 내세에서 영적으로 성별된 장소만도 아닙니다. 성전이란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는 곳, 거룩한 곳입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성체이십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참된 성전이요, 주님이신 성체를 제대로 모셔야 하고 그 주님을 모신 내가 거룩함을 지녀야 하며 그러한 준비된 마음으로 기도의 집에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찬미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끈으로 채찍을 만들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시고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습니다"(요한2,14-15).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서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셨을까요? 평소에 온순하던 사람이 화를 내면 무섭지요. 정신이 번쩍 들 정도로 긴장하게 되는데 바로 그 모습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성전의 상점은 올리브산 언덕에 있는 산헤드린의 상점과 경쟁하기 위해 대제관 가야파가 연 것이라고 합니다. 자기네 이익과 특권을 유지하고 증진시킬 목적으로 종교를 이용한 것입니다. 그야말로 돈이 되니까 장사를 하였습니다. 성전에 예물을 바치러 온 사람들을 잘 도와줘야 하는데 그들을 이용하여 폭리를 취하고 부담을 주었습니다. 하느님께 대한 정성과 거룩한 마음이 모아져야 할 성전에서 정성껏 준비한 제물은 무시되고 부정과 부패, 착취가 난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단호하게 꾸짖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결국 심판 날에 ‘손과 발이 묶여서 바깥 어두운 곳에 버려질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쫓겨난 것은 그들 마음 안에 하느님은 없고, 물질과 개인적인 이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기적인 욕망에 가득 차 있으니 혼이 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각 성당에도 성물방이 있고, 쉼터가 있습니다. 그것은 순례자들이나 신자들이 기도를 잘 할 수 있고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그 이상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장사하는 집이 되고 맙니다.

 


사실 우리가 성당에 앉아 있으면서도 물질적인 이익을 계산하고 있잖습니까? 개인적인 이득을 추구하며 이웃을 돌려놓기도 하고, 마음으로 미워하며 시기 질투하고 ‘너 어디 잘되나 보자’ 하고 괘씸하게 생각도 하고….. 남의 허물에는 ‘너 정말 그럴 수 있나?’ 하면서, 자기의 허물에 대해서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합리화 합니다.

 


이런 마음이 장사꾼의 소굴이죠. 주님께서는 이런 속마음을 아시고 엎어 버리시는 겁니다. 그 마음을 바꾸지 않으면 성전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허물을 벗어야 합니다. 이기적인 허물을 벗고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은 사람답게 새롭게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무엇이 하느님의 뜻인지,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그분 마음에 들며 무엇이 완전한 것인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수확 때에 가라지는 걷어내고 알곡은 곳간에 모아들입니다. 우리의 곳간은 천상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알곡으로 만들지 않는 한 곳간은 있으나 마나입니다. 따라서 알곡이 되기 위한 수고와 땀은 우리의 몫입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우리의 할 일은 알곡을 만드는 일입니다. 영혼의 정화를 통해 알곡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가끔 ‘손에 땀난다.’,‘손 떨린다’고 말합니다. 왜 손에 땀이 나고 손이 떨릴까? 분명 이유 없이 땀나거나 까닭 없이 떨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이유는 마음이 긴장하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손이 떨리고 땀나는 현상만을 보지 말고 그 원인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근원을 치료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화장을 하고 옷을 잘 입어 겉모습을 잘 꾸미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성전, 영혼의 상태를 잘 보고 가꿀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혹 마음의 성전에 흠이 간 것이 있으면 그 흠을 고쳤으면 좋겠습니다. 고치는 방법 아시죠? 예, 맞아요. 고해성사입니다. 성사를 자주 보고 새 삶을 시작하시기 바라며 보속을 꼭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사는 집에 물이 새거나 낡아서 파손 된 곳이 있다면 놀랄만한 열성으로 빨리 복구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느님의 성전이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거처하신다면 우리 마음이 그처럼 고귀한 손님께 부당한 거처가 되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신다면 청소를 하고 집안정돈 하는 것은 그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요? 고해성사를 통한 영혼의 정화는 하느님의 성전인 우리 영혼에 존귀하신 그분을 합당하게 모실 수 있도록 더러운 곳을 깨끗이 하고 파손된 부분을 복구하는 것입니다.

 


할머니 한 분이 고해성사를 보고 나와 제대 앞에 나와 두 손을 합장하고 짧게 기도하였습니다. 이를 본 신부님이 ‘할머니 무슨 기도를 하셨나요?’그랬더니 할머니께서 ‘삼종기도를 했지요.’하였습니다. 신부님께서 다시‘할머니, 삼종기도 하실 줄 아세요?’했더니 할머니께서 ‘그럼요, 땡, 땡,땡’아닌가요?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집인 성전은 그 안에 거룩함을 잃지 않으려 기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결정 됩니다. 초라한 마구간이 빛난 것은 예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웅장하지도 값진 예술품 하나 없어도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 기도하는 사람,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집은 아름다운 성전입니다. 그러나 많은 돈을 들여 지은 건물에 갖가지 값진 예술품으로 장식을 해 놓았다 하더라도 기도하는 사람이 없다면,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없다면 그 집은 그저 건물일 뿐입니다. 결코 성전은 아닌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성당이 참으로 아름다운 성전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모든 분들이 성당을 은총이 충만한 성당이라고 고백하고 성당을 다녀오면 구원을 얻고 평화를 회복한다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드나드는 성당이 기도하는 사람, 거룩한 사람으로 가득차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아름다운 성전이기를 기도합니다.

 


오래전에 멕시코 성지순례를 하였습니다. 과달루페성모님이 모셔진 성당을 비롯 300년 이상 된 성당을 위주로 여러 성당을 방문하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당 규모나 조각, 그림 등으로 보면 놀라움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성전을 가득 메워서 주님을 경배하고 찬미하던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관광지로써 순례객을 맞이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가? 성전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역사가 오래된 건물로써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 가슴 아팠습니다. 이 성전을 누가 다시 아름답게 빛나게 할 것입니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따라서 이번 한 주간 일상 안에서 성전이신 주님을 잘 모시고 우리 자신의 성전도 거룩하게 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거룩함으로 기도의 집을 자주 찾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2,19).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생각을 바꾸라는 가르침입니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어렵지만 이곳을 찾아와서 소와 양, 비둘기를 제물로 바치며 제사를 지내고 예배를 하였습니다. 지나치게 공간 개념에만 얽매여 성전의 참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약의 성전입니다. 당신의 몸을 십자가상 제물로 바치시고 부활하심으로 짐승을 잡아 바치는 구약의 제사를 바꾸셨습니다. 그래서 미사 안에서 성체를 축성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형식적인 제사와 의식만을 강조하는 예배는 사라지고 언제어디서나 예수님을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구원을 체험하는 새로운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리고 영성체를 통해서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게 됩니다. 예수님을 모시는 우리의 몸은 분명 성전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시기 질투, 미움, 분노, 증오, 탐욕으로 차 있다면, 악습에 젖어 있다면, 사랑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은총이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자기 손이 못생겼다고 고민하는 아가씨가 있었습니다.

어 느 날 그는 의사를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 손이 너무너무 보기 싫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그러자 의사가 즉시 말했습니다. “딱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아가씨의 손을 떼어 내든지 아니면 아가씨의 눈을 떼어내든지” 하는 것입니다.

**** 미운 사람이 옆에 있어요, 어떻게 할까요? 눈을 떼어내든지, 아니면 사랑하든지. 아무튼 성전을 잘 가꾸시길 바랍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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