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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09 조회수1,064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3월 9일 사순 제3주간 월요일
  
No prophet is accepted
in his own native place.
(lk.4,24)
 

제1독서 1열왕 3,1-15ㄷ
복음 루카 4,24ㄴ-30
 

한 형제님이 책을 읽다가 이런 내용을 보게 되었습니다.

“100미터 밖에서 아내를 불렀는데 대답 없으면 아내가 조금 늙은 거고, 50미터 밖에서 아내를 불렀는데 대답 없으면 아내가 많이 늙은 거고, 10미터 밖에서 아내를 불렀는데 대답 없으면 아내가 심각한 상태이다.”

이 글을 본 형제님은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늙었는지가 궁금해서 퇴근하면서 100미터 쯤에서 아내를 향해 힘차게 물었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없는 것입니다. 형제님은 ‘아~ 마누라가 늙긴 늙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50미터 쯤 거리에서 다시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라고 물었습니다. 역시 대답이 없습니다. 형제님은 ‘아~~ 내 마누라가 이렇게 늙었단 말인가?’라는 서글픈 생각을 안고, 다시 10미터 거리에서 아내를 불렀습니다.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대답이 또 없습니다. ‘아!! 내 마누라가 완전히 맛이 갔구나!’라고 탄식을 하며 집에 들어섰는데, 주방에서 음식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아내의 뒷모습이 애처롭게 보였습니다. 측은한 마음에 뒤에서 아내 어깨를 살포시 감싸 안으며 나지막히 물었지요.

“여보~~ 오늘 저녁 메뉴가 뭐야?”

아내가 화를 내며 말합니다.

“당신 귀먹었어요? 내가 수제비라고 도대체 몇 번을 말했는데 알아듣지를 못해요?”

누구한테 문제가 있는 것일까요? 아내가 아닌 남편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자기 귀가 들리지 않는 것은 생각도 하지 않고 아내가 문제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모습을 간직할 때가 참으로 많았던 것 같습니다. 나의 문제는 보지 않고 남의 문제만 꼬집어 내고 있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과거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이 거룩한 예언자나 아주 비범한 인물에게서 이루어지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성경의 말씀을 인용해서 그들의 그릇된 확신을 깨뜨리지요. 즉, 엘리야가 사렙타 과부에게만 갔고, 엘리사가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고쳐 주었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화가 난 유대인들은 주님을 산 위 벼랑으로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까지 합니다.

잘못된 생각을 인정하지 않고, 예수님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모습이지요. 즉, 자신의 생각과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생각, 그래서 메시아의 모습까지도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지 않고 남의 탓, 남의 문제만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 순간 우리 역시 주님을 산 위 벼랑으로 끌고 가는 유대인의 모습을 따르게 됩니다.

산을 움직이려 하는 이는 작은 돌을 들어내는 일로 시작하느니라.(공자)


주님 십자가의 모범을 항상 잊지 말아요.

 

미워하는 사람을 대처하는 방법

혹시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말 한 마디 건네고 싶지 않고, 연락도 하기 싫고 생각조차 하기 싫은 사람 말이지요. 만약 이런 사람이 있다면 우연히 만나는 것도 싫어서 그 사람이 다니는 길을 피해서 움직이기도 하고, 다른 누군가가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 괜히 기분이 좋아지지 않고 화도 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한두 번쯤은 체험해 보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 속에서 지금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시겠지요. 그렇다면 그 순간에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으셨습니까?

많은 이들이 당연히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심리학자가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실험을 했습니다. 이런 질문을 던졌지요.

“여러분 책상에 마법의 단추가 있습니다. 이 단추만 누르면 어떤 수고도 없이 이 사람과 다정하고 멋진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과연 단추를 누르겠습니까?”

이 분들 모두가 이 상황을 극복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단추를 누른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하네요. 왜 그랬을까요?

누군가가 관계가 불편해지는 이유는 그저 그 사람과 가까워지고 싶지 않아서이기 때문이지요. 내 마음 자체가 사랑의 마음을 간직하고 있지를 못하니, 손쉽게 멋진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변하기를 원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고 저절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청해서도 안 됩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생각할 때, 그리고 내 마음을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의 마음으로 채워나갈 때, 미움의 감정은 분명히 내 안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우리가 탈출해야 할 비상구는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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