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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용서 받아 용서하고, 용서 하여 용서 받는-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1 조회수982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너희가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오늘 말씀은 여러 가지로 생각을 하게 합니다.
          마음으로부터 용서해야 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일까,
          우리가 이웃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느님도 우리를 용서치 않으시겠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우선 마음으로부터 하는 용서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마음으로부터의 용서가 아닌 것은 
          어떤 용서인지 생각해보니
          즉시 떠오르는 것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용서가 아니라
          머리나 의지가 해야겠다고 해서 하는 용서가 그것이었습니다.
          
          마음은 아직 용서해줄 마음이 없고 
          오히려 앙심을 품고 있는데
          복음의 주님께서 용서해야 한다고 하시니
          용서해야 용서받는다는 것을 알고 
          용서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억지로 용서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는 억지로 되지 않습니다.
          내가 용서해야 한다는 것을 아무리 머리로 알아도
          용서하려는 의지가 아무리 강해도 
          용서할 마음이 없으면 안 됩니다.
          다시 말해서 내 마음에 앙심이 있으면 용서는 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만큼 
          용서는 불완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독서 말씀과 연관 지으니 
          이렇게 연관이 됩니다.
          곧, 용서할 마음은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에서 나오는 겁니다.
          
          오늘 다니엘서는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으며, 자비를 청할 성전도 없는
          그래서 “부서진 영혼과 겸손해진 정신”에 대해서 얘기한 다음
          “저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렵니다.”고 합니다.
          
          자존심이니 앙심이니 하는 것은 다 
          자기Ego가 살아있기 때문에 있는 것이고
          그러기에 자기가 부서지고 낮추어졌을 때 
          자존심이나 앙심은 사라지며
          그때 오직 하느님께 
          자비를 구하는 마음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사람에게로 향했던 앙심이 바뀌어 하느님께로 향하고,
          하느님께로부터 자비를 구하여 받으니 
          앙심이 자비심으로 바뀌는 겁니다.
          그러므로 오늘 복음에서 종이 
          동료의 빚을 탕감하는 데 실패한 것은 
          동료의 빚만 보고 자기 빚을 탕감해준 
          주인의 자비는 못 보기 때문입니다.
          
          용서란 그가 나에게 한 잘못만 보이면 할 수 없고,
          내가 한 잘못과 내가 받은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봐야만 할 수 있습니다.
          또 용서란 앙심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는 불가능하고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가 가득한 마음일 때만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웃을 용서할 때 
          우리를 용서하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은
          이웃에 대한 앙심으로 가득할 때 
          우리는 하느님의 용서를 바라지도 않고
          이웃을 용서할 수 있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도 
          받지 못한다는 뜻일 겁니다.
          
          나는 이웃을 용서해줄 자격조차 없는 
          하느님 앞의 죄인입니다.
          나는 용서해주기에 앞서 용서를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나는 용서를 받은 다음에야 
          용서해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용서를 해줌으로써 용서를 받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논의 물은 들어와야 차지만
          가득 찬 논의 물은 빠져야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용서 받아 용서 하고
          용서 하여 용서 받는,
          그런 내가 되고 그런 오늘이 되기를 같이 기도합시다.
          
                - 김찬선(레오나르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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