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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2 조회수715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영적독서

 

성 대 그레고리오 1세 교황 학자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의 「욥기 주해」에서 

 
(Lib. 13,21-23: PL 75,1028-1029) 

우리 새 생명의 신비
 

성교회의 예표인 복된 욥은 때로는 지체들을 대신하여 때로는 머리를 대신하여 말합니다. 그는 지체들에 대해 말하다가 높여져 머리이신 분의 말씀을 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이렇게 덧붙여 말합니다. "나는 죄가 없어도 이런 고통들을 당했고 하느님께 바치는 나의 기도는 순수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죄가 없었으나 그분은 고통 당하셨고, 그 입술에는 기만이 없었으나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통을 참아 내셨습니다. 모든 사람들 중에 주님 홀로 하느님께 순수한 기도를 바치셨습니다. 주님은 수난의 고통을 겪는 바로 그 순간에도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이 고통을 당할 때 자기에게 고통을 주는 사랑들이 자비를 얻도록 바치는 그 기도 보다 더 순수한 기도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박해자들이 증오심에 차 우리 구속자의 피를 흘리게 하였지만 결국 회개하여 그 피를 구원의 약으로 영하게 되었고 그분이 하느님의 아들이시라고 선포하기 시작했습니다.

욥의 다음 말씀은 이 피에 대해 적절히 말해 줍니다. "땅이여, 나의 피를 덮지 말라. 나의 부르짖는 소리가 네 안에 숨겨지지 않게 하라." 인간이 죄를 범했을 때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흙으로 돌아가리라."

그러나 흙은 우리 구속자의 피를 숨기지 않습니다. 모든 죄인은 구속의 대가를 받아들여 저마다 그 피를 고백하고 찬미하여 모든 이웃에게 그 가치를 알립니다.

교회는 세계 방방 곡곡에서 구속의 신비를 선포하여 왔으므로 흙이 그분의 피를 덮어 버리지 못했습니다.

다음 말씀에도 주목합시다. "땅이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가 네 안에 숨겨지지 않게 하라." 우리가 영하는 구속의 피자체가 우리 구속자의 부르짖음입니다. 이 때문에 바울로는 "아벨의 피보다도 더 큰 힘을 발휘하는 속죄의 피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아벨의 피에 대해 주께서는 "네 아우 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는 아벨의 피보다 더 힘있게 말하고 있습니다. 아벨의 피는 그를 죽인 형의 죽음을 부르고 있지만 주님의 피는 박해자들의 생명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의 신비가 우리에게 무익한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영하는 것을 본받고 경배하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믿게 된 것을 혀가 말하지 않고 침묵을 지킨다면 그분의 부르짖음은 우리 안에 숨겨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분의 부르짖음이 우리 안에 숨겨지지 않기 위해 우리 각자는 그 능력에 따라 자가가 얻게 된 새 생명의 신비를 이웃에게 전해야 합니다.


2015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237-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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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 (축일 09월 03일)

 

부유한 귀족 고르디아누스(Gordianus)의 아들로 태어난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또는 그레고리오)는 로마(Roma)에서 교육을 받았고, 랑고바르드족(Langobard)의 이탈리아 침략이 로마를 위협하고 있을 당시에는 로마의 장관이었다. 수도생활을 오랫동안 꿈꾸어 왔기 때문에 그는 574년경에 로마와 시칠리아(Sicilia)에 수도원을 세우고 35세경에 수도자가 되었다. 579년부터 585년까지 그는 콘스탄티노플의 교황 대사로 활약하다가, 5년 후에 자기 수도원으로 돌아온 뒤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수도자가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교회법령을 정비하고 무능한 성직자들을 해임시켰으며, 막대한 경비를 들여 자선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지혜롭게 교황청 재산을 관리했고, 랑고바르드족(Langobard)으로부터 포로들을 석방시켰으며, 부당한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기근의 희생자들을 구호하였다. 593년 그는 랑고바르드족 침략군을 설득하여 로마를 평정시켰으므로 랑고바르드족의 왕과 함께 평화의 수호자로 존경을 받았다. 그는 위대한 주교이자 정치인이었다.

또한 그의 학덕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레굴라 파스토랄리스’(Regula Pastoralis, 주교의 직책과 의무), ‘모랄리아’(Moralia, 욥기 주해), ‘대화집’을 비롯하여 800여 통의 서한들 속에 담긴 그의 사상은 서방교회의 공식 예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유럽의 역사에도 큰 발자국을 남겼다. 그는 잉글랜드(England)의 개종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고, 교황권이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립하였으며, 교황을 일컫는 칭호인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으로 사용하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위대한 설교가였고, 로마 전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결과, 그는 '그레고리안 성가'의 편집자로 추앙받는다. 또한 베네딕토 수도회를 면속시켜 교황의 권위 하에 두었다. 그는 라틴 교부의 일원으로 공경을 받으며 중세 교황직의 아버지로 추앙받는다. 그는 604년 3월 12일 로마에서 선종하여 성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고, 사후 즉시 시성되었다. 축일은 그가 로마의 주교로 축성된 9월 3일에 기념한다.<굿뉴스 오늘의 성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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