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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3 조회수884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3월 13일 사순 제3주간 금요일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 and with all your strength.'
The second is this: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There is no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Mk.12,30-31)
 
 
제1독서 호세 14,2-10
복음 마르 12,28ㄴ-34
 

묵상 글을 쓰면서 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일상 삶 안에서 느낀 것, 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렇게 15년째 글을 쓰고 있는 저를 두고 참 신기하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그런 특별한 일과 특별한 만남을 자주 가질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자신은 매일의 삶이 똑같다고 하면서요.

삶을 유심히 바라보면 똑같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음을 깨닫습니다. 하고 있는 일이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날씨를 비롯한 각종 환경도 다르고, 일의 순서도 바뀌기도 합니다. 만나는 사람의 옷차림 역시 달라집니다. 어쩌면 관심을 두지 않고 살기 때문에 내 곁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일과 만남을 모르는 것이 아닐까요?

여행을 하다보면 관심이 있어야 많은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그 관심은 어떻게 생길까요? 알아야 관심도 생기는 법입니다. 여행 전에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은 뒤에 가면, 볼 것이 아주 풍성해집니다. 하지만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가면 어떨까요? “아~~ 좋다.”는 하루 이틀이면 끝납니다. 아마 여행기간이 너무 길다며 투덜거릴 것입니다. ‘집 떠나면 고생이야’를 외치면서 말이지요.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 관심이 특별한 일과 특별한 만남을 갖게 하며, 이것이 곧 사랑으로 이어지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이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이야기하시지요. 사실 이 둘은 분리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온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 뜻에 따라 살 것이며, 하느님의 뜻은 이웃 사랑으로 향해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 이웃을 모른 체 하겠습니까? 이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베드로에게 “너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세 번이나 물으신 뒤에, 질문 끝에 “내 양들을 돌보아라.”라고 말씀하시지요.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행동으로 이웃을 사랑함으로 인해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관심을 통해 특별한 만남들이 이어지게 되고, 이로써 사랑으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관심은 과연 주님께 또 이웃을 향하고 있을까요? 돈, 명예, 힘, 권력 등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에만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어제 저녁에도 묵주기도를 하러 집 밖으로 나가면서 참 많은 사람을 보았고, 인상 깊은 장면들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많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할 수 있는 많은 대상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바칩니다.

내 꿈이 아무리 커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한 걸음, 한 걸음이다. 마법은 작은 걸음 속에 숨어 있다(김택진).


관심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Give & Take”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마태 7,12)

황금률이라고 하지요. 그리고 이 말씀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종종 삶 안에서 깨닫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황금률을 뛰어넘으시지요. 자신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주신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모조건 베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 우리처럼 어떤 조건을 내거셨을까요? 아닙니다. 그냥 무조건 주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인간관계를 논할 때 종종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Give & Take”

이 말을 보면 take보다 give가 먼저 나옵니다. 즉, 받기 보다는 주는 것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받으려 하기 이전에 먼저 주고, 먼저 베풀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대접을 받고 싶어 하면서도 상대에게 잘 베풀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주거니 받거니 해야 한다는 상호관계성을 이야기합니다. ‘나는 나고, 너는 너다’라는 식의 생각은 인간관계를 원활하게 만들 수가 없지요. 그래서 남의 일에도 내 일처럼 흔쾌히 발 벗고 나서서 도와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적군을 생포해 정보를 얻어야 하는 특수 임무를 맡은 한 독일 병사가 적진의 참호를 습격해서 홀로 있던 적군 병사와 맞부딪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그 병사는 식사 중이었기에 손에 총이 아닌 한 조각 빵이 들려 있었지요. 무방비 상태로 습격당한 병사는 겁에 질린 나머지 엉겁결에 손에 들려 있던 빵을 독일 병사에게 건넸고, 독일 병사도 무의식적으로 이 빵을 받아 쥔 것입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예기치 않은 선물인 빵을 받은 독일 병사는 자기 임무 수행을 포기하고 그 병사를 풀어 주었다고 합니다. 빵 한 조각을 줌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지요.

“Give & Take”가 이해되는 이야기가 아닐까요? 손해 본다는 생각보다는 무조건 베풀어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을 닮은 우리를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분명히 커다란 선물이 하늘에 쌓여질 것입니다.


“Give & T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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