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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매일 미사 묵상 : "돌 같은 마음"(3월12일 목)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4 조회수752 추천수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Santa Marta 매일 미사 묵상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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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 2015년 3월 12일 목요일 (사순 제3주간 목요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 제1독서:예레미아서 7,23-28 / 복음:루카복음 11,14- 23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427&gomonth=201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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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nta Marta 미사 : 돌 같은 마음

http://www.news.va/en/news/mass-at-santa-marta-hearts-of-stone

 

2015-03-12  오쎄르바또레 로마노 (L’Osservatore Romano)

 

타협은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하느님 자비”의 사랑을 받게 할 수도 있고, 우리 마음을 더 무디게 하여 “위선의 길”을 선택해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아벨의 시대부터 이어져 온 하느님과 사람의 관계의 역사 입니다. 3월 12일 목요일 Santa Marta 미사에서 전해진 프란치스코 교황의 강론입니다.

 

교황은 화답송―”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에서 강론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 대답을 찾기 위해 교황은 제1독서 예레미아서(7,23-28)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 제1독서 말씀은 “하느님의 역사”를 어느 정도 요약해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하느님의 역사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느님은 영원하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이런 말이 가능할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대화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그분이 역사에 들어오신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신 하느님의 역사는 “슬픈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주셨는데” 그 응답으로 “그분은 오로지 싫은 것들만 받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내 말을 들어라. 나는 너희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명령하는 길만 온전히 걸어라. 그러면 너희가 잘될 것이다.” 그것은 행복을 향한 “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순종하지도 귀를 기울이지도 않고” 말았습니다. 그대신 그들은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걸었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려 했습니다.

 

교황은 그 선택이 하느님 민족의 전체 역사를 특징지어 왔다고 설명했습니다. “살인, 아벨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악한 질투의 마음, 그의 형에게 죽임을 당한 아벨의 죽음.” 그 백성들이 주님께 끊임없이 “등을 돌렸지만” 그분은 “결코 지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은 “끊임없이” 예언자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사람들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들은 “오히려 목을 뻣뻣이 세우고 자기네 조상들보다 더 고약하게 굴었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이 처한 상황은 여러 세대에 걸쳐 더 나빠지기만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예레미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그들에게 이 모든 말씀을 전하더라도 그들은 네 말을 듣지 않을 것이고, 그들을 부르더라도 응답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 민족은 주 그들의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훈계를 받아들이지 않은 민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하기를 하느님께서는 그리고 나서 “가혹한” 말씀 ― “진실이 사라지고”, 즉 “너희들은 진실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덧붙여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하느님께서는 울고 계신 것 같습니다.”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그토록 깊이 사랑했는데, 내가 너희에게 그토록 많은 것을 주었는데…” 그런데 너희는 “모두 나를 거스르는  일들만” 해왔구나. 이 울음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고” 우시는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하기를 결국 “진실이 사라졌던 그 모든 역사는 예수님의 마음 안에 있었습니다.” “진실하지 않은 역사는 우리 개개인의 역사”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뜻대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삶의 여정에서 우리는 마음이 무뎌지는 길을 따라 걷습니다. 마음은 무뎌지고 마음은 돌같이 변해버립니다. 주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합니다. 주님의 백성들이 점점 줄어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 사순절에 우리가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면 뭐든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라고, 교황은 지적합니다.

 

시편의 충고― “너희 마음을 무디게 하지 마라” ―는 “사람들이 진실하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 성경에 매우 빈번히 나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사람들이 진실하지 않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부정한 여자의 모습”이 자주 언급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 예로 에제키엘서 16장을 떠올렸습니다. “너희들의 역사는 오랜 부정의 역사이다. 너희 민족은 나에게 진실하지 않았구나, 너희는 부정한 민족이었구나.” 또한 여러 번 예수님께서는 “그 무딘 마음 때문에 제자들을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만난 제자들에게도 “아, 어리석고 꿈든 자야!”하고 말씀하십니다.

 

교황은 “우리 모두 조금씩은 갖고 있는 악한 마음이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을 이해하게 두지 않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우리는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사랑의 자유가 아니라 그 대신 오히려 결국에는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버리는 자유로 자유롭기를 원합니다.

 

교황은 이러한 일은 체제 내에서도 일어난다고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한 사람을 치유합니다. 하지만 율법학자들과 성직자들의 마음은 너무나 무뎌서 그들은 언제나 구실을 찾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말합니다. “당신은 마귀의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 당신은 악령의 마법사다.” 율법학자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만든 율법에 의해서만 신앙의 삶이 규제된다고 믿습는다.” 예수님은 그들을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죄와 위선으로 가득 차 있는 위선자, 회칠한 무덤”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행하게도 이와 같은 일이 “교회의 역사 안에서”도 일어났다고 말했습니다. “가여운 잔 다르크. 오늘날 그녀는 성인입니다! 가여운 소녀. 당시 율법학자들이 잔다르크가 이단자라고 하면서 그녀를 산채로 태워 죽였음”을 생각합시다. 또는 더 최근의 일로는 “복자 로스미니(Blessed Rosmini)가 있습니다. 그의 모든 책은 색인 목록에 있었습니다. 당신은 그의 책들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그의 책을 읽는 것은 죄였습니다. 오늘날 그는 시복 받았습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신의 백성과 함께 하신 하느님의 역사 안에서 그들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시려고 예언자들을 보내셨던 것처럼, 마찬가지로 주님은 교회 안에서 성인, 성녀들을 보냅니다.” “교회의 생명을 앞으로 이끄시는” 분들이 바로 성인, 성녀입니다. 그들이 바로 성인, 성녀이십니다. 권세는 없지만 위선자는 아닙니다.” “거룩한 남성, 거룩한 여성, 아이, 거룩한 청년, 거룩한 사제, 거룩한 수녀, 거룩한 주교…” 다시 말해서, “그들의 마음은 무디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랑이신 주님의 말씀에 열려 있습니다. 스스로 하느님의 자비에 안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너무나 많은 비참함, 인간적인 고통을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던 남성, 여성가 바로 그들입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진실함을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이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물어 볼지도 모릅니다. “타협하는 방법은 없을까요? 여기 에도 잠깐 있고 저기에도 잠깐 있는?” 없습니다. 교황은 말했습니다. “당신은 사랑의 행로에 있을 수도 있고 위선의 행로에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자신을 하느님의 자비로 사랑 받게 할 수도 있고 또는 점점 더 무뎌지는 자기 마음을 따라 삶의 행로에서 매번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도 있습니다. “제3의 길, 타협의 길은 없습니다. 당신은 거룩해지거나 아니면 그것과는 다른 행로에 있게 됩니다. 주님과 “함께 모아 들이지 않는” 모든 사람은 그저 (믿음을) 포기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빠집니다. 흩어버리고 파괴합니다. 그 또는 그녀는 타락한 사람들입니다. 부패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진실하지 않기 때문에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두고 우셨습니다. 우리들 한사람 한사람을 두고 우셨습니다.” 교황은 마태오 복음 23장을 떠올립니다. 거기에는 “무딘 마음을 갖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무디게 하려는 지도자들”에 대한 신랄한 저주가 쓰여져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의인 아벨의 피부터 시작된 무죄한 피의 값이 모두 그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그들의 사악함과 위선, 타락, 그들의 무뎌지고 마비된 마음이 흘리게 한 무고한 피에 대해 그들은 책임을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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