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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3월 16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15 조회수85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5년  3월  16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영적독서

 

 
오리게네스 사제의 레위기에 대한 강론에서  

 

 

(Hom. 9,5.10: PG 12,515.523)
 

우리의 대사제이시요 속죄의 제물이신 그리스도

 

대사제는 일년에 한 번씩 백성들을 떠나 지성소에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분향 제단이 있고 계약의 궤가 있는데 궤 위에는 케루빔 천신 상이 있습니다. 이 지성소에는 대사제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합니다.

이제 참된 대사제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 돌아가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은 육신으로 계실 때 연중 내내 당신 백성들과 함께 계셨고, 바로 그 해에 대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은총의 해와 죄 사함의 날을 전하라고 나를 보내셨다." 주님은 그 해 속죄의 날에 단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셨습니다. 즉 당신의 과업을 성취하신 후 천상에 들어가시어 인류를 위한 속죄가 되시려고 아버지의 옥좌 앞에 서 계시고, 당신을 믿는 이들을 대신하여 아버지께 간구하십니다.

사람들을 아버지와 화해시키는 이 그리스도라는 속죄의 제물에 대해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 "자녀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여러분에게 이 말을 합니다. 그러나 혹시 누가 죄를 짓더라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를 변호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바울로도 그리스도에 대해 말할 때 이 속죄의 제물을 지적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에게는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를 제물로 내어 주셔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속죄의 날은 이 세상이 마칠 때까지 우리에게 계속될 것입니다.

성서는 말합니다. "주님 앞 제단에서 숯불을 향로에 피워 증거 궤 위에 있는 속죄 판을 가리워야 g나다. 그래야 죽지 아니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 황소의 피를 얼마쯤 가져다가 손가락에 찍어 속죄 판 동쪽 위에 뿌려야 한다."

이 예식이 인간을 위해 하느님께 바치는 화해의 제사가 옛적에 어떻게 거행되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그러나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자비를 얻어 주시고 여러분을 하느님과 화해시킨 대사제이신 그리스도에게로 돌아온 여러분은 이제 동물의 피를 더 생각할 필요가 없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피를 생각하며 주님 친히 하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이것은 내 피이다. 너희의 죄 사함을 위하여 흘릴 피이다."

피를 뿌릴 때 동편을 향 해 뿌렸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여러분의 화해는 동편에서 왔습니다. 동편에서부터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중재자이시고 동방이라는 이름을 지니신 그분께서 오셨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을 위해 정의의 태양이 뜨고 또 빛이 언제나 밝아 오는 동쪽을 계속 바라보기를 초대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여러분이 결코 어둠 속을 거닐지 않고 마지막 날이 여러분이 잠자고 있을 때 오지 않으며 또 밤이 여러분에게 몰래 기어 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언제나 지혜의 광채 속에서 거닐고 언제나 믿음의 대낮을 지니며, 또 언제나 사랑과 평화의 빛을 얻을 것입니다.

 

2015년 3월 16일 사순 제4주간 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264-266)
 

 

 

[그리스도교 철학자] 오리게네스


허석훈


오리게네스의 삶에 대해 전해지는 내용은 그의 가르침에 매료된 교회사가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263/4-339/40년)가 전하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것 역시 상세하지 않고, 유년기와 순교에 대한 내용 등 오류가 있다고 전해집니다.

그의 이름조차 정확하지 않은데 오리게네스 아다만티우스라고 추정됩니다. 이집트 신 가운데 하나인 호로스에서 이름이 유래하는 것으로 미루어 이집트 출신임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삶과 죽음

오리게네스는 185년경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독실한 그리스도인 부모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에게 신앙이 당연시되었던 것은 순교하신 그의 아버지 레오니다스에게서 엿볼 수 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아버지의 순교로 넉넉하지 않은 살림이었으나 영지주의에 심취한 어떤 귀부인의 도움으로 다양한 철학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이것이 오리게네스를 영지주의자로 의심하는 빌미가 되기도 합니다.

오리게네스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제자였다는 학설도 있지만, 정확히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플라톤주의자로서 신플라톤주의의 창시자라 불리며, 플로티누스의 스승으로 알려진 암모니우스 사카스에게 사사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오리게네스의 철학은 지극히 신플라톤주의적이며, 이는 자신의 신학적 탐구에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플로티누스보다 스무 해 정도 먼저 태어난 오리게네스가 플로티누스의 학파에 몸 담았다기보다는 그 역시 플로티누스와 더불어 스승인 암모니우스와 함께 신플라톤주의를 열어간 철학자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데메트리우스가 후원하던 알렉산드리아의 교리학교에서 203년부터 교수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중 그는 230년에 데메트리우스 주교의 허락 없이 팔레스티나에서 사제품을 받습니다. 이런 이유로 노년에는 알렉산드리아가 아닌, 팔레스티나의 카이사리아로 가서 학교를 설립하고 가르치다가, 데키우스 황제(249-251년)의 박해 때 수감되어 수난을 당하고, 253/4년경에 박해로 허약해진 몸으로 티로에서 순교하게 됩니다.

철학자이자 신학자

고대 그리스도교의 천재적 사상가였던 오리게네스는 이러한 그리스 문화 아래서 플라톤주의와 스토아학파를 수용하고, 당대의 영지주의를 분석하면서 철학적 방법으로 그리스도교의 신앙에 대하여 사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모든 가르침을 성경과 연관시키고자 노력한 철학자이자 신학자였습니다.

철학적인 방법을 썼지만 오리게네스는 신학자였습니다. 어쩌면 처음으로 조직신학을 철학의 도움으로 전개시킨 신학자라고 소개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 덕분에 그리스도교는 학문적 신학의 형태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것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리스도교 사상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여기에그리스도교 철학자로서의 오리게네스의 위대함과 의의가 있다고 보겠습니다.

저작들과 논쟁거리

2,000편에 달하는 오리게네스의 수많은 저서 가운데 지금 남겨진 것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의 역작 가운데 구약성경 전체에 대한 비평서인, 「헥사플라(Hexapla)」 역시, 고작 일부분만 전해질 뿐입니다. 철학적 작품으로 「원리론(Peri archon)」 4권과 「첼수스 논박(Kata Kelsom)」 8권이 있습니다. 이것들도 원본은 모두 사라지고 400년경에 라틴어로 번역된 「원리론」의 번역본이 전해질 뿐입니다.

오리게네스의 탐구분야는 주로 ‘세계 안에서 악의 문제’에 천착하여, 이를 하느님의 섭리와 조화하려는 ‘변신론(辯神論)’만이 아니라, ‘물질과 정신의 조화문제’ 또는 ‘자유와 운명의 문제’를 통하여 세계의 다양성이 발생하는 과정에 대한 ‘창조론’과 피조물이 다시 하느님께로 귀환하는 ‘구원론’에 집중됩니다. 특히 「원리론」(제1권은 하느님과 영적 세계에 대한 논제를, 제2권은 물질적 세계와 타락 및 구원에 대한 주제를, 제3권은 자유문제를, 그리고 제4권은 인식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에서 종교적이며 영적인 문제를 다루며 그리스도교 사상에 입각한 우주론적이며, 존재론적인 자신의 철학을 개괄하고 있습니다.

오리게네스의 ‘창조론’은 앞서 제시한 다양한 문제와 그에 따르는 사유를 모두 담아내려 했기에 매우 어려우면서도 훗날 큰 논쟁거리가 됩니다. 하느님은 영원으로부터 ‘유한한 지성적 존재자’들을 질적인 차이 없이 본질적으로 같게 창조하셨는데 이 존재자들은 하느님을 거역할 수 있는 자유를 지닙니다. 곧 피조물의 자유로부터 하느님을 배반할 가능성은 ‘신적 로고스와의 일치로부터 얼마나 멀어져 있는가?’에 따라 ‘유한한 지성적 존재자’의 다양성을 가능하게 합니다.

여기에서 그는 ‘인간 영혼의 선재’를 하느님과 구체적 세계 사이에 받아들입니다. 이는 세상 안에 있기 전에 하느님께 순명하거나 거역하는 근원적인 결정을 자유롭게 하고, 이로 말미암아 특별한 존재방식과 더불어 전체 창조에 자신들의 자리를 스스로 결정한 창조된 정신의 영원한 실존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곧 정신적 피조물들의 다양성을 하느님의 자유가 아닌 자신들의 자유에 의거하게 하여, 자유의지에 대한 부정적 개념이 도입됩니다.

그러나 오리게네스는 악의 원리를 신에 반하는 자유에 놓음으로써 물질에 대한 플라톤이나 플로티누스적인 부정적인 요소를 제거하고, 그저 하느님으로부터 멀리 있는 아주 낮은 존재원리로 이해합니다. 곧 물질과의 결합 역시 마지막으로 정신적 존재를 보존하려는 하나의 방편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여기서 구원은 다시 물질로부터의 해방을 통한 정신적 존재의 ‘하느님께로 귀환’에서만 가능하며, 이는 지극히 그리스철학의 사유를 그리스도교적 신앙에 연결하여 사유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오리게네스의 사유 안에서는 육체의 부활에 대한 교리를 설명할 수 없는 난점이 드러나기도 합니다.

교부들의 신학에 기초를 제공

지금까지 살펴본 오리게네스의 사유에는 물론 플로티누스적인 사상적 색채(여러 면에서 그렇지만 특히 플로티누스에게서 ‘완전한 타자에 대한 동경심’이 그의 형이상학적 원리이듯이, 마찬가지로 오리게네스에게 ‘하느님과의 일치’가 그렇게 작용한다.)가 강하게 드러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플로티누스적인 존재론적 이원론(영혼과 육체를 이원화하여 나누고, 모든 선과 미의 근원을 형상인 영혼에만 둔다.)과 달리, 악의 기원을 자유의지로부터 이해하며, 모든 존재자들의 ‘하느님께 회귀’를 통한 구원을 구상하고 있다는 것이 독특합니다. 하지만 오리게네스의 사상 중에 ‘영혼의 선재성’ 문제나 ‘육체에 대한 사유’는 훗날 심각한 논쟁거리가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오리게네스의 이러한 철학을 통한 신학적 사유는 교부들의 신학에 위대한 기초를 제공했으며, 중세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허석훈 루카 - 서울대교구 신부. 1999년 사제품을 받고, 독일 뮌헨 예수회철학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교구통합사목연구소 상임연구원을 지내고 지금 가톨릭대학교 교수로 있다.

[경향잡지, 2013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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