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에 따른 전례] 「로마 예식서」(Ordines Romani, 7-10세기) 개별 전례 봉사자들의 단순한 창의성에 맡길 수 없는 전례 거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려면 주례자에게 기도문을, 독서자에게 독서 본문을, 성가대에게 성가집을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에 교회는 역사적 흐름 속에서 서로 다른 전례 봉사자들이 질서 있게 전례를 전개하도록 안내하는 전례 예식 지침을 마련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요청에 따라 당시의 예식 순서를 정확하게 제공하는 책이 ‘예식서’(Ordines)다. 이런 의미에서 예식서는 전례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시대와 장소에 대한 적응 이해를 위한 매우 중요한 매개체로서, 전례 역사에서 중요한 기준을 제공하고 종종 우리가 특정 시대의 신학적 전망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예컨대 로마의 순회 미사에는, 전에 바쳤던 미사 때 축성된 빵 조각을 입당 행렬 때 함께 모시고 들어가 성찬 전례 때 그것을 성작에 넣는 예식이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시기에 거행된 두 미사 사이의 연관성을 명확히 드러내고자 함이었다. 이렇듯 로마 예식서는 지금은 행하지 않는 예식이 과거에 어떤 신학적 의미를 지녔는지를 파악하는 데 크게 기여한다. 예식서 7세기부터 ‘Ordo’ 또는 ‘Ordinarium’이라는 이름으로 책들이 작성되기 시작하는데, 한국어로는 ‘예식서’라 통칭한다. 특정 교구나 성당, 수도원의 특별한 전례 관습을 나타낼 때 사용한다. 수도원의 경우 ‘수도원 관례에 따른’이라는 구체적인 용어가 덧붙여진다. 주로 교구의 행정적-법적 규범을 모아놓은 규범집(Capitularia)에 적용하던 것을 이제는 전례적 규범에도 적용했다. 「로마 예식서」의 초기 형태는 그레고리오 교황(590-604년 재위) 시대에 편집되었다고도 하고,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에 작성되었다고도 한다. 이 예식서는 전례가 어떻게 거행되어야 하는지에 관한 지침들이 적힌 소책자(libelli)에서 유래한다. 이 예식서들은 반복적으로 복제되었는데, 특히 로마 밖의 지역에서 그러했다. 결과적으로 그만큼 자주 원문이 수정되었다. 그 지역이나 지방의 고유성이 고려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사본의 필사 전통이 다양했기에 「로마 예식서」의 본디 형태를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다. 「로마 예식서」 비평본 「로마 예식서」는 여러 편집자가 출판했는데, 시대순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카산데르가 1558-1561년, 히토르프는 1568년, 마비용-제르망이 1687-1689년, 그리고 마르텐은 1700-1702년, 그전에 나온 모든 사본을 모아 하나의 시리즈로 출판했다. 1889년에는 뒤셴이 새로운 총서를, 1931-1961년에 걸쳐 앙드리외가 그때까지 알려진 모든 「로마 예식서」의 비평본을 펴냈다. 마비용은 총 15개의 예식서를 선보였다. 반면 앙드리외는 예식서를 50편으로 구분하여 출판하였고, 수많은 필사본을 연구하며 이를 두 범주로 분류했다. 하나는 순수 로마 전례를, 다른 하나는 프랑코-게르만화된 로마 전례를 표현했다. 「로마 예식서」 관련 연구에서 앙드리외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구분을 하고 새로운 번호를 지정했는데, 각 부분의 주제와 작성 시기에 대한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 결과라 하겠다. 열 개의 주제로 나뉘는 「로마 예식서」 「로마 예식서」를 주제별로 나누면 다음과 같다. 1) 1-10번은 로마 주교가 거행하는 미사, 2) 11번은 세례 예식, 3) 12-14번은 시간 전례에서 바치는 성가와 독서에 대한 규정, 4) 15-19번은 수도원 전례에 대한 규정, 5) 20-33번은 전례주년의 특정 세부 사항들, 6) 34-40번은 주교와 성직자의 서품, 그리고 사계의 날 시기 전례(계절마다 3일씩, 단식하고 금육하며 속죄하는 마음으로 특별히 기도하던 시기-필자 주), 7) 41-45번은 로마에 있는 성당들의 봉헌과 유해 안치에 관련된 관행 설명, 8) 46-48번은 황제의 대관에 관한 규정, 9) 49번은 장례 예식, 10) 50번은 950년 무렵 이후 마인츠의 성 알바노 성당에 있던 규정이다. 여기서 50번은 같은 시기에 생겨난 「로마-게르만 주교 예식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다룬다. 951년에서 972년 사이에 오토 1세 황제는 게르만족 주교들을 수행원으로 하여 이탈리아를 여러 차례 방문하였는데, 그때 이 「로마-게르만 주교 예식서」를 가져갔다. 로마 순회 미사의 입당 예식 순회 미사가 열리는 날이면 교황은 아침 일찍 라테라노 주교관에서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말을 탄 채 성당까지 행차한다. 그 성당은 교황 미사가 거행될 장소로서 전날 미사에서 공지된 곳이다. 한편에서는 고위직 관리들이, 다른 한편에서는 전례 직무를 맡은 부제와 차부제, 시종들이 교황을 수행한다. 그들은 손에 라테라노 궁의 제구실에서 가져온 전례서와 제구, 제대포, 그 밖의 전례 용품을 든다. 순회 미사 지정 성당에 도착하면, 교황은 양쪽에서 의전을 돕는 부제 두 명의 도움을 받아 대성전 앞 제의실로 간다. 아마포 장백의는 입고 허리에 띠를 두른 다음, 목이나 어깨에 개두포를 걸친다. 그 위에 두 벌의 달마티가를 입고 나서 제의를 입는다. 마지막으로 두 개의 표지가 교황에게 건네진다. 제의 위 목에 헐렁하게 둘러 핀으로 고정하는 팔리움과 오른손에 드는 예식용 작은 수건인 마풀라다. 교황이 신호를 보내면 일곱 촛대 위의 촛불이 밝혀지고, 담당 차부제는 향로에 향을 넣으며 성가대는 전령의 지시로 입당송을 시작한다. 맨 앞에 향로를 든 차부제가 걸어가고 그 뒤로 일곱 명의 초 봉사자가 따르며, 마지막으로 부제들과 차부제들이 간다. 그들이 제대를 향하는 중에 차부제 한 명과 시종 두 명은 덮개가 열린 성체함을 교황에게 가져온다. 성체함에는 가장 최근의 교황 집전 미사에서 축성된 빵 조각이 담겨 있다. 이 빵 조각은 성찬 전례의 성작에 옮겨질 것이다. 또한 시종은 교황이 축성한 빵의 일부를 영성체 전에 로마 곳곳의 명의 성당들(tituli)로 가져간다. 그곳에서 사목하는 신부들이 성찬 전례를 거행하면서 성작에 빵 조각을 넣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렇듯 성체 조각을 통해 시간적 지속성과 공간적 연대성을 드러내려 노력했다. 「로마 예식서」는 많은 이유에서 값지다. 어떤 경우에는 로마 관습과 프랑크-게르만 관습을 분명히 구별해 주고, 기도와 독서 그리고 성가의 점진적인 성문화 과정을 보여 주기도 한다.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지침들과 그 시기 다양한 전례 거행 방법을 제공한다. 끝으로 8세기와 9세기 로마와 알프스 북부 교회의 전례 관습과 생활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 윤종식 티모테오 - 의정부교구 신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위원이며,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전례학 교수이다. 교황청립 성안셀모대학에서 전례학을 전공하였다. 저서로 「꼭 알아야 할 새 미사통상문 안내서」가 있다. [경향잡지, 2021년 8월호, 윤종식 티모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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