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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28 조회수908 추천수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3월 28일 사순 제5주간 토요일
 
“You know nothing,
nor do you consider that it is better for you
that one man should die instead of the people,
so that the whole nation may not perish."
(Jn.11,49-50)
 
 
제1독서 에제 37,21ㄴ-28
복음 요한 11,45-56
 

어느 유명한 수필 작가가 자신의 아버지 이야기를 적은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우연히 아버지의 일기장을 보게 되었는데, 그때 아버지에게서 너무 많은 남자와 여자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표현합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힘세고 대범하시며, 어떠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으로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만능으로 아주 강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이 일기장에서 말하는 아버지의 모습은 외적으로 보이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너무나 나약한 마음,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에 소극적이 되고 마는 마음, 어려운 상황에 대한 걱정거리로 어떻게 할 줄을 모르는 힘들어 함이 가득 차 있는 일기였습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내면의 차이가 있음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겉으로 보이는 것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사실 내 자신 역시 비춰지는 모습과 실제 내 안의 내가 많이 다르지 않습니까? 물론 이 간격을 좁히고자 노력하지만 평생가도 완전히 똑같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내면의 자아가 남들에게 비춰지는 것을 벌거벗은 몸이 되는 것처럼 부끄러워하기 때문입니다.

내 자신이 이렇다면 다른 이들은 안 그렇겠습니까? 다른 이들 역시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내면이 분명 다르고, 세상의 사람들이 이 다름을 인정해주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둘 모두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온전히 그 사람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예수님의 숨겨진 모습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모든 것을 다 드러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이 보고 싶어 하는 겉모습이 전부라면서 나머지는 다 부정하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옳음을 드러내기 위해서 한 사람이 희생되어도 상관없다는 이상한 논리까지도 펼칩니다.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여러분에게 더 낫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헤아리지 못하고 있소.”

내가 만나는 모든 이의 외면보다는 내면을 바라보도록 노력한다면 어떨까요? 쉽게 판단내리는 것이 아닌, 좀 더 오래 바라보고 그 사람 존재 자체를 그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러한 노력과 실천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 곁에 조용히 다가오시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2천 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이 땅에 오시지 않을까요? 가장 좋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주님이기에, 이제는 내 이웃의 내면을 통해서 더 쉽게 당신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우리는 주님이 우리 편인가라는 질문을 종종 던집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대로 해주시지 않는 주님을 원망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그러한 질문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편에 서 있는가가 더 중요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질문은 아닐까요?

이성과 판단력은 천천히 걸어오지만, 편견은 무리 지어 달려온다(장 자크 루소).


예수님을 제거하려는 종교지도자들....

 

버릴 수 있는 힘(‘좋은 생각’ 중에서)

플린트는 위렌 버핏의 전용기 조종사로 10년 넘게 일했다.

어느 날 플린트는 자신의 경력과 목표에 대해 버핏과 이야기를 나눴다. 버핏이 말했다. “자네는 목표가 무엇인가? 현재 가장 중요한 목표 스물다섯 가지를 적어 보게.” 플린트는 몇 분에 걸쳐 목록을 완성했다.

“스물다섯 가지를 다 적었으면,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에 동그라미를 쳐 보게.” 플린트는 이내 다섯 가지 목표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런 뒤 이렇게 말했다. “아! 이제 제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뭔지 알겠습니다.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럼 동그라미 치지 않은 나머지 목표들을 어떻게 할 건가?” “동그라미 친 다섯 가지야말로 제가 집중해야 할 목표입니다. 다섯 가지 목표에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고 나머지 스무 가지도 놓칠 수 없으니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노력해 이루어야죠.”

이에 버핏이 말했다. “그게 아니야! 자네는 지금 실수하는 거야. 동그라미 친 다섯 가지 외의 목표는 어떻게든 버려야 할 것이지. 자네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다섯 가지 목표를 전부 달성하기 전까지는 나머지 스무 가지 목표에 관심도 기울여선 안 되네.”

때론 ‘무엇을 할 것인가’ 보다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에렌버핏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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