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제물과 나귀와 겉옷과 혼인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28 조회수1,120 추천수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제자들은 그 어린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겉옷을 얹어 놓았다. >


복음: 마르 11,1-10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제물과 나귀와 겉옷과 혼인 >

  

실화를 바탕으로 한 라이언 일병 구하기란 영화입니다. 미국과 영국군은 프랑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시행합니다. 작전은 성공했지만 많은 군인이 죽었습니다. 이 때 군입대한 라이언 4형제 중 3형제가 전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결국 오늘이면 아들 셋의 전사 통보를 받을 어머니를 위해 막내아들 라이언을 귀환시키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전투 베테랑인 밀러대위는 상부로부터 얼굴도 모르는 라이언을 찾으라는 명령을 받습니다. 그리고 경험 많은 동료들과 라이언이란 군인을 찾아 나서고, 그 찾기까지도 계속 매복해 있는 독일군들에게 형제와 같은 동료를 잃어갑니다.

결국 천신만고 끝에 라이언을 만납니다. 그러나 전투 끝에 밀러대위와 함께 왔던 모든 사람이 죽고 결국 밀러대위도 다리를 폭파하려다 총탄을 맞고 죽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결정 때문에 함께 왔다가 죽어간 전우들의 처참한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라이언에게 이 한 마디를 합니다.

라이언 잘 살아야 돼!”

밀러대위는 다가오는 탱크를 막기 위해 권총을 꺼내 힘없이 쏩니다. 예닐곱 발 째 쏘는데 탱크가 터집니다. 아군비행기의 P-51의 폭격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아군의 모습이 보입니다. 아군의 지원 병력이 온 것입니다. 독일군은 후퇴하고, 라이언은 살게 됩니다.

수십 년 후 백발노인이 된 라이언 그는 가족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왔습니다. 그는 밀러대위의 묘 앞에서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묻습니다.

여보 나 잘살고 있지?”

그럼요.”

 

오늘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사람들이 깔아주는 겉옷을 밟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예루살렘을 구원하라고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었습니다. 나귀는 결국 죽음으로 새 생명을 구하게 될 희생제물을 나르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나귀가 의미 있게 등장하는 첫 구절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바치기 위해 모리야 산으로 가는 장면입니다. 모리야 산이란 예루살렘의 시온산을 의미하고 나 중에 그 위에 성전이 세워집니다. 이때 희생제물과 나무를 운반하는 역할을 나귀가 합니다. 오늘 예루살렘 입성과 같은 장면인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사악 대신 숫양 한 마리를 마련하여 희생제물이 바쳐지게 됩니다. 나귀는 겸손의 상징이고 겸손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무릎을 꿇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처럼, 그분은 당신의 피로 먼저 우리 성전을 정화시켜 주셔야만 했던 것입니다. 나귀는 겸손 되게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죽임을 당할 하느님의 어린양을 나르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귀에 탄 그 제물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판관기에 나옵니다. 한 레위인에 베들레헴 여자와 혼인하였다가 그 여자를 데리고 베냐민 지파가 속한 기브아를 지날 때였습니다. 하룻밤을 그 동네에서 묵었는데 불량배들이 그 베들레헴 여자를 능욕하여 결국 죽고 맙니다. 그 죽은 여인을 나귀에 태우고 돌아와서는 열두 조각으로 시신을 나누어 각 지파에게 보내어 결국 베냐민 지파와 나머지 지파 간에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자만하고 있던 베냐민 지파는 나머지 지파들에게 거의 멸살을 당하게 됩니다.

마치 아벨의 피가 뿌려진 땅에서 더 이상 그 피를 흘리게 했던 카인의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었던 것처럼 나귀에 얹힌 제물은 결국 이 세상에서 죄를 없애기 위해 하느님께서 일부러 내어놓으신 희생양인 것입니다. 그 희생양의 피가 우리 땅에 뿌려지게 되면 우리 땅에서 죄가 사라지게 됩니다. 나귀는 이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을 싣고 우리 땅으로 들어와 그 피를 뿌려 우리에게서 죄를 없애게 만드는 도구인 것입니다.

사울이 이미 폐위될 운명에 처해졌을 때 기름부음 받은 다윗이 사울에게 보내졌습니다. 사울은 이제 사라져야 할 또 다른 왕인 것입니다. 그때 그리스도(기름부음 받은 자) 다윗의 아버지는 나귀에 빵과 포도주를 실어 다윗 편에 사울에게 보냅니다.(1사무 16,20) 사울이 다윗을 맞아들이고는 악령이 물러갔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결국 악령을 완전히 물리치지 못한 사울은 멸망하고 그 땅에 빵과 포도주의 제물인 다윗이 왕으로 등극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귀가 나르는 것은 악을 없애는 하느님의 희생제물,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오늘 나귀를 타고 성전으로 입성하시는 것은, 우리가 매 미사 때마다 빵과 포도주의 형태로 오는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나귀는 그렇다면 바로 그런 신비가 이루어지는 도구, 곧 교회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교회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희생이 이루어지게 하겠고 그 희생의 제물로 우리 땅에 죄를 없애시고 당신의 왕국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나귀로서 그리스도를 등에 메고 우리 각자의 성전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시는 그리스도를 모셔옵니다. 그런데 그분이 성전 안으로 들어오시기 위해서는 우리의 겉옷이 필요합니다. 그리스도를 맞이하는 이들이 겉옷을 나귀 위에 얹고 그 겉옷을 깔았다는 것을 되새겨야합니다.

성경에서 겉옷은 자신의 전부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사실 그 전부는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자신의 모든 능력을 부여해 줄 때 그에게 자신의 겉옷을 입혀줍니다.(1열왕 19,19)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치자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1열왕 2) 마치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듯이, 계약의 궤로 요르단강 물을 갈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듯이, ‘겉옷은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의 능력을 상징하는데 그 능력으로 주님이 들어오실 문을 열어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느님께서 물과 물을 가르셨고 그 안에 동물들과 아담이 살게 하셨습니다. 물과 물을 나눈다는 것은 아담이 살 공간을 마련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담은 신랑이고 그리스도이십니다. 예루살렘은 신부이고 하와입니다. 마치 성모님께서 당신 안에 가득하신 은총으로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시며 당신 마음의 성문을 열어 신랑인 그리스도를 당신 안으로 맞아들이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자신을 내어드려 그분을 새로운 왕으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예부터 왕을 맞이할 때는 자신들의 겉옷을 까는 풍습이 있었는데(2열왕 9,13) 팔마가지를 흔드는 것도 같은 의미입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 왕이 오실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겉옷을 벗어 그분의 길 앞에 까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버리는 완전한 순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신랑이신 그리스도께서 나귀 위에 탔다는 것 자체가 당신 전부를 희생한다는 의미이고, 그분을 맞는 신부도 자신의 전부인 겉옷을 깔아야만 그것을 밟고 들어오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혼인 의복은 하느님께서 직접 주시는 것입니다. 그 의복으로 신랑을 맞이해야 합니다. 그 의복으로 신랑을 맞이하는 장면이 바로 성전입성입니다. 그분이 우리 성전 안으로 들어오시려면 우리 또한 우리 자신을 전부 내어놓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루어지는 혼인이 요한 묵시록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하느님의 어린양과 천상 예루살렘이 혼인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종결지어지게 태초부터 계획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나귀에 탄 희생제물로서 우리를 위해 죽음으로 나아갑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모신 성령의 힘으로 내 자신을 내려쳐서 그분의 뜻이면 무엇이든 행할 수 있는 순결한 신부의 모습을 갖추는 것만 남은 것입니다. 겉옷을 깔지 않으면 신랑은 돌아가 버립니다.(아가 5 참조) 그리고 그 겉옷은 파수병들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내 겉옷을 깔 용기를 내야합니다. 그러면 신랑을 다시 만나게 될 것입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