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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30 월/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죽음으로 치닫는 생명의 길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29 조회수989 추천수7 반대(0) 신고
    

성주간 월 요한 12,1-11(15.3.30)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요한 12,8)





The anointment of Jesus at Bethany



                        

 죽음으로 치닫는 생명의 길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죽음의 길, 영광의 길에서 잠시 멈추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조그만 마을 베타니아로 가신다. 예수님과 친하게 지냈던 마리아와 마르타, 그리고 라자로는 이 마을에 살았다(요한 11,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여행 중에 있을 때 그들을 방문하시어 정담을 나누곤 하셨고(루카 10,38-42), 죽었던 라자로를 살리시기도 하셨다(요한 11,1-44; 12,17). 예수님을 정찬에 초대한 나환우 시몬의 집 역시 이곳에 있었으며, 그곳에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정찬을 나누는데 어떤 여인이 와서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발라주기도 하였다(마르 14,3-9).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기 전에 이곳에 오시어 입성 준비를 하셨고, 예루살렘 성전을 두루 살펴보신 다음에 저녁이 되자 베타니아에 오시어 묵으셨으며, 그 이튿날 다시 성전으로 가셨다(마르 11,1. 11-12. 15).

라자로의 집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벌어진다. 그들은 예수님의 구원을 향한 십자가의 여정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그분이 자신들에게 보여준 관심과 사랑에 대한 인간적인 예의에서 만찬을 준비했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마리아의 향유 바름이 주목된다. 이 향유는 왕들이 사용하던 인도산 고급 향유로서, 한 리트라는 약 330 그램 정도요 그 값은 약 300 데나리온이었다. 마리아는 이런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바르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는다. 여기서 향유를 바르는 행위는 무엇을 뜻하는가? 세 가지를 묵상해 볼 수 있다.

먼저, 향유를 발에 바름은 장례 준비로서 시체에 기름을 바르는 행위이다. 곧 마리아는 사실상 예수님의 죽음 준비 곧 생명의 신비에 참여한 것이다. 향유는 장사를 지낼 때에 정식으로(요한19,39-40), 혹은 예수께서 아직 살아 계시는 동안 미리 선취적으로(마르 14,8) 그분의 몸에 발라진 것이었다. 우리도 나의 죽음 준비와 함께 다른 이의 죽음 준비에 자신의 것을 기꺼이 쏟아 부어야 할 것이다. 다른 이의 죽음 즉 허물과 실수, 잘못, 연약함, 부족함 등이 나를 통하여 걸러지고 받아들여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내가 다른 이의 이런 죽음의 상태를 받아들일 때 그 사람의 죽음에 나 또한 참여하는 것이고, 바로 그때 그 사람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생명의 길, 십자가의 길이다.

다음으로 왕들이 사용하는 향유를 바르는 행위는 예수님의 승리의 예루살렘 입성을 준비하기 위하여(12,12-16), 왕다운 품위를 표현하는 것이다. 곧, 예수님께서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돌아가듯이 또한 그분은 기름부음 받은 왕으로서 죽는다(18,33-40; 19,1-6. 12-16. 19). 이러한 구세주 왕의 입성 준비는 예루살렘에서 떨어진 한적한 베타니아에서 조용히 이루어진다. 위세 당당한 왕의 대관식과는 전혀 다르게 조용히, 소박하게, 그러나 온 집안에 향기가 가득하듯 충만하게 예수님의 입성은 준비되었다. 그분의 생명을 향한 죽음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십자가의 길도 이처럼 ‘드러내거나’ ‘요란스럽지 않게’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사랑의 길이 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향유를 바름은 예수님의 자비와 용서로 사랑을 체험한 마리아가 물질적인 양이나 가치를 넘어서서 자신에 대한 사랑에 감사와 지극한 사랑의 표시를 한 것이다. 마리아는 300 데나리온이나 되는 향유를 발에 발랐다. 여기서 우리는 유다와 마리아의 영적인 시각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사랑은 대가없이 주는 것이요, 한없이 모두를 주는 것이며 끝까지 되돌려 드리는 것이다. 이렇게 사랑은 고통과 슬픔까지도 함께 하겠다는 각오요, 전폭적인 수용이다.

우리도 말없이 다른 이들의 죄와 연약함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받아들이는 영혼의 향유바름을 실행하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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