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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3.31 화/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목숨을 건네 생명을 낳는 사랑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30 조회수1,091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주간 화 요한 13,21-33.36-38 (15.3.31)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요한 13,21)



Announcement of Judas' Betrayal


                        
목숨을 건네 생명을 낳는 사랑  
 

요한복음은 제 2부가 시작되는 제 13장부터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의 때에 관한 긴박감이 더해가는 생명의 신비의 핵심 사건을 전해준다. 오늘의 복음 대목은 이른바 예수님의 고별 담화(13,31-14,31)의 머리말에 해당된다. 오늘의 말씀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함께 묵상해 볼 수 있다.

먼저 배신자 유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실제로 예수님을 팔아 넘겨 예수님께서 체포되신 사건은 밤에 일어났다. 여기서 어둠은 보다 깊은 상징적인 뜻이 있다. 어둠은 예수님께는 유다의 배반에 뒤따르는 영광의 도래를 뜻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이 어두운 밤은 현세적인 것들에 눈이 멀어 살아가는 우리의 삶의 태도요, 이기심과 탐욕과 냉정함이요 시기 질투로 가득한 마음이요,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교만 덩어리이다. 유다가 급류에 빨려가듯 사라져간 어둠의 자리에는 죽음의 공허만이 남았다. 오늘의 유다는 누구일까? 나는 지금 무엇을 쫓고 있는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13,33)라고 유다인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이제는 베드로에게 하신다. 장면이 예루살렘 성안으로 바뀌면서 십자가의 죽음은 더욱 가까워지고 있는데, 이제 제자들조차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다. “지금은”(13,33)이란 말은 베드로로 하여금 때가 이르지 않았기에 기다리라는 말이다. 곧, 예수님의 뒤를 따르려는 이는 누구나 자신의 의지를 끊고, 예수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하며, 자신을 온전히 내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베드로는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13,35) 하고 물으며, “주님을 위해서라면 저는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13,37) 하고 장담한다. 그러나 그는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였다. 사실 베드로만이 아니었다. 예수께서 체포되시자 제자들은 모두 그분을 버리고 도망갔고, 한 제자는 사람들이 그를 붙잡자 삼베를 버리고 알몸으로 도망갔다(마르14,50-51).

우리는 이러한 제자들의 태도를 보면서 그분을 따르는 ‘추종의 자세’를 돌아보아야 하겠다. 신앙에 대하여 안다는 것은 각자의 삶이 말해준다. 안다는 것은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결코 아니다. 예수님의 제자됨의 의미는 그분과의 존재론적인 일치, 사랑의 긴밀한 친교에 있다. 제자됨은 그래서 요란한 외침이 아니요 일시적인 정열이나 과시나 감정이 아니라, 그분을 그윽한 사랑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가슴이 타 버리도록... 그리고 우리는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의 전 삶의 여정을 함께 했던 모든 제자들의 도망가는 모습을 비통한 마음으로 떠올리면서 참으로 겸손하고 항구한 마음으로 그분의 길을 걸어가자. 오늘 나의 몸짓은 어떠한가? 현실적인 어려움과 고통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으려 하기 보다는 고통 없는 안락의자를 향해 도망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 그리고 당신을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 나아가 당신을 배반하고 팔아넘긴 유다에 대해서도 한마디 책망조차 하지 않으신다. 당신의 피와 땀을 쏟아 그 모든 것을 녹이시고 감싸시며, 배척도 판단도 단죄도 하지 않으신다. 예수께서는 유다의 배반을 아시고 ‘마음이 산란하시어’(13,21) 몹시 고통스러웠음에도 손님을 대하는 우정의 표시로 ‘빵을 적셔주셨다.’(13,26) 그분은 배반한 유다에게 끝까지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태도는 거미와도 같았다. 거미는 암수가 교미를 한 뒤 암컷이 수컷의 몸을 먹고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그런데 또 새끼 거미들은 어미 거미를 먹고 영양분을 취해 성장한다. 이렇게 거미들은 자신의 전 생명을 서로에게 건네준다. 예수님께서는 거미와 같은 삶을 사셨다. 나는 오늘 어디에 나의 생명을 쏟을 것인가? 나의 모습은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는 밑거름이 되고 있으며, 과연 모두에게 구원을 희망을 가져다주는 수난 받는 야훼 종의 모습을 닮아가고 있는가?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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