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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3월 31일 성주간 화요일 세상을 위한 죽음이 하나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도 하나입니다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30 조회수935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년  3월 31일 성주간 화요일 영적독서

 

 

성 대 바실리오 주교의 ‘성령론’에서
 
(Cap. 15,35: PG 32,127-130)
 

세상을 위한 죽음이 하나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도 하나입니다

 

우리 구세주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계획은 인간을 타락으로부터 다시 불러 불순종으로 인해 생긴 소외 상태에서 하느님과의 밀접한 친교에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이러한 계획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육신으로 세상에 오시어 복음서가 묘사하는 삶의 길을 보여 주시고, 수난을 당하시고, 십자가 위에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그 목적은 그리스도를 본받음으로써 구원된 사람들이 본래 누리던 하느님 자녀의 지위를 다시 되찾을 수 있게 하는 데 있습니다.
 
완전한 생활을 하려면 그리스도께서 당신 생애에서 보여주신 온유와 겸손과 인내의 모범을 본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모방자인 바오로가 “나는 그리스도와 같이 죽어, 마침내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죽음 자체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그분처럼 죽을 수 있겠습니까?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혀야 합니다. 그러나 이 묻힘은 어떻게 일어납니까? 이 본받음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우선 우리는 과거의 생활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그 말 자체가 분명하게 밝혀 주듯이, 다시 태어나는 것은 새로운 삶의 시작입니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는 이전의 생활을 끝맺어야 합니다. 경기장에서 한 번 달리고 나서 두번째로 달리기 전에 잠깐 휴식 시간을 갖는 것처럼, 삶의 변화에 있어서도 죽음은 두 가지 삶 사이에 개입하여 과거의 상태를 끝내고 앞으로의 새 삶을 시작하게 해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죽음의 명부에 내려가는 것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묻히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세례 받는 이의 몸은 어떤 면에서 물 속에 묻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는 육정이 빚어내는 일을 끊어 버린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여러분은 세속적인 육체를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어 형식이 아닌 진정한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할례 곧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습니다.” “나를 씻어 주소서. 눈에서 더 희어지리라.”라는 시편의 말씀처럼, 세례는 어떻게 보면 육신의 정욕으로 인해 쌓여 온 오염을 영혼으로부터 씻어버리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알고 있는 세례는 구원을 가져다 주는 세례입니다. 세상을 위한 죽음이 하나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의 부활도 하나입니다. 세례는 이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2015년 3월 31일 성주간 화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2권 P 398-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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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대 바실리오 주교 학자 (축일 1월 2일)

 

성 대 바실리우스(Basilius, 또는 바실리오)는 부유하고 이름 있는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으로, 교회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문 중의 하나이다. 그의 할머니는 마크리나(Macrina, 1월 14일), 그의 부친은 바실리우스(5월 30일), 그의 모친은 엠멜리아(Emmelia, 5월 30일), 그의 큰 누이는 마크리나(7월 19일), 그리고 두 동생은 니사(Nyssa)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3월 9일)와 세바스테(Sebaste)의 베드로(Petrus, 1월 9일)인데, 모두가 성인품에 오른 분들이다.

그는 카이사레아(Caesarea),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그리고 아테네(Athenae)의 학교에서 교육받았으며, 이곳에서 나지안주스(Nazianzus)의 그레고리우스와 깊은 우정을 맺었다. 357년경에 그는 동방의 주요 수도원들을 방문하였으며, 35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다음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의 이리스(Iris) 강변의 안네시에서 은수자로 정착하였다. 바실리우스는 불과 5년 동안을 그의 공동체와 생활했을 뿐인데도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는 달리 법 제정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영향은 정교회 수도생활에 깊은 흔적을 남겼고, 주요한 원리로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사제로 서품된 후 성 바실리우스는 365년부터 카이사레아 교구를 위하여 일했고, 370년에는 그곳의 주교로 선임되었다. 그는 또 아리우스파(Arianism) 황제인 발렌스(Valens)가 정통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할 때 용감히 맞서 싸웠다. 이 때문에 그는 지방 총독 앞에 끌려가서 자신을 변명하여야 했다. 바실리우스의 태도가 너무나 당당하였기 때문에 총독은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당신 같은 주교는 일찍이 본적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이런 대화를 보더라도 그의 성품을 짐작할 수 있으며, 그의 강직성 때문에 교황 성 다마수스(Damasus)와 서방 교회간의 관계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병자와 가난한 사람을 구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고, 요양원을 짓거나 혹은 대대적으로 진료사업을 펼쳤으며 설교가로도 명성을 얻었다.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와의 투쟁을 계속하면서 동방 정교회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발렌스 황제가 전투에서 사망한 지 불과 한 달 만인 1월 1일 카이사레아에서 사망하였다.

바실리우스는 초대 교회의 큰 거인이었다. 비잔틴 제국에서 아리우스파를 몰아낸 것이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아리우스파를 단죄한 배경에는 바실리우스의 영향력이 대단히 컸음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가 네오카이사레아에서 제정한 규칙과 조직이 동방 수도생활의 기초가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져 온다. 또한 바실리우스는 성직매매를 완강히 거절하였으며, 가뭄과 한발의 희생자를 대대적으로 원조하였으며, 보다 훌륭한 성직자 양성을 도모하였고, 엄격한 성직자 법규를 주장하고, 과감하게 악습을 끊어버리면서, 카파도키아(Cappadocia)에서 만연된 매춘행위 관계자들을 파문하였다.

그는 유식하고 정치력도 있는 사람이면서 성덕이 뛰어났으며, 그리스도교회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 중의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의 해박한 저서들과 4백여 통의 편지들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성령에 관한 저서와 에우노미우스를 반박하는 세 권의 저서 그리고 그레고리우스 나지안주스와 함께 편집한 “필로칼리아”가 그 중에서도 유명하다. 그는 교회학자이며 동방 수도자의 아버지로 큰 공경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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