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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3-31 조회수1,425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3월 31일 성주간 화요일
 
 "Master, who is it?"
(Jn.13,25)
 
제1독서 이사 49,1-6
복음 요한 13,21ㄴ-33.36-38
 

인터넷에서 198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우승한 일본의 토시히토 세코씨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우승한 후에 어떻게 훈련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아침에 10킬로미터, 저녁에 12킬로미터를 달렸습니다. 너무 단순하죠? 하지만 1년 365일 달렸습니다.”

하루에 22킬로미터씩 1년을 달리면 자그마치 8,000킬로미터가 넘습니다. 마라톤이 42.195킬로미터니까 190번 완주한 셈입니다. 대단한 거리인 것이지요. 반복이란 별 것 아닌 것이 아닙니다. 이 반복을 통해 무의식적인 행동이 나오게 되면서 동시에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제게도 종종 사람들이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출판할 정도의 실력을 키울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렇게 질문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한 가지밖에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하루에 두 장씩만 글을 쓰라고 말이지요. 제가 그렇게 했거든요. 15년째 매일 두 장씩의 글을 쓰다 보니, 지금 거의 9,000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쓰다 보니 출판사에서 제의가 들어왔고 책을 출판하는 영광까지 얻게 된 것이지요.

물론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훨씬 쉽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재능을 뛰어넘는 것은 반복되는 노력입니다. 그 반복이 하찮아 보이고, 또 의미 없어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찮고 의미 없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일 뿐입니다. 즉, 자신의 생각을 뛰어 넘을 때 놀라운 일은 내게서 나올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실천하기 어렵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당연하고 또한 마땅히 실천해야 할 사랑이지만, 정말로 하기는 어렵다고 하시지요. 그러나 자그마한 사랑이라도 반복하겠다는 마음으로 노력해 보신 적은 있나요? 혹시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다면서 나중에 여유와 기회가 되면 그때 가서 행하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사랑도 반복이 필요합니다.

사탄은 유다 이스카리옷의 약한 곳을 공격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사탄의 유혹을 선택했습니다. 베드로 역시 확고한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유혹에 넘어지고 맙니다. 심지어 그 유혹에 넘어갈 것이라고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미리 말씀해 주셨지만, 유혹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그만큼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임을 드러내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떨 것 같습니까?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말하지만 항상 옳은 일만을 선택하지 않고, 자신의 편함과 이익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유혹에서 자유롭지 않음을 깨닫습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주님께서는 사랑을 이야기하시지요. 사랑만이 유혹에 넘어가도 다시 일어날 수 있으며, 그 힘으로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사랑하여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사랑으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있고, 이 세상에 사랑이 가득 찰 수 있게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날 실천할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지금 당장 작은 사랑이라도 반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사랑이신 주님과 언제나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내일 만날 사람들 중 4분의 3은 동정심을 갈망할 것이다. 그것을 그들에게 안겨 주라. 그러면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데일 카네기)

 

믿음이냐 사랑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예수님께서 가장 힘주었던 것은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열심히 믿었던 유다인들에게 사랑에 기초하지 않으면 헛된 것임을 강조하셨지요. 즉, ‘얼마나 열심히 믿었는가?’가 아닌 ‘얼마나 사랑했느냐?’였습니다. 무엇을 했느냐, 무엇을 믿었느냐, 무엇을 성취했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살아가면서 사랑을 베풀었느냐를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을 잊을 때가 너무나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최선을 다했다면서 스스로의 정당함을 드러내려고 하지요.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모든 기준이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믿음이 부족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를 우리는 가슴 깊이 새겨야 할 것입니다. 바로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잘못된 믿음, 사랑이 없는 믿음만을 가지고 자신의 주장만을 내세웠던 무지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결과였던 것입니다.

내 안의 사랑은 어떠한가요? 믿음만을 강조하면서 열심히 성당에 다닌다고 하면서도 사랑을 보지 않고 또 실천도 하지 않으면 말짱 ‘꽝’입니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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