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의 넘겨주심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끌레멘스신부님 성주간 화요일(2015년 03월 3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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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이진영 | 작성일2015-03-31 | 조회수1,018 | 추천수8 | 반대(0) 신고 |
(십자성호를 그으며)
제1독서 <나의 구원이 땅끝까지 다다르도록 나는 너를 민족들의 빛으로 세운다(‘주님의 종’의 둘째 노래).>
복음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 너는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성주간 화요일(2015년 03월 31일) 사랑의 넘겨주심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예수님은 배반을 예고하십니다. 제자들은 당황하며 묻습니다.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팔아넘기다’를 그리스어로 παραδ?δωμι (paradid?mi)입니다. 직역하면 ‘...넘기다’입니다. “넘기다”의 주어는 분명 배반자 유다 이스가리옷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눈으로 본 것뿐입니다. 이런 눈으로 보면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의 손에 주님을 팔아넘기는 사건일 뿐입니다. 단순히 인간적 배반일 뿐입니다. 인간 역사에서 배반은 무수히 많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넘겨지심은 무수한 배반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떠야합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예수님을 “넘기는” 주체는 바로 하느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넘겨주셨습니다. 최초의 넘겨주심은 육화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말씀을 우리 인간에게 넘겨주신 사건이 바로 강생의 신비입니다. 이 넘겨주심을 통하여 하느님이 우리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제 궁극적인 넘겨주심이 남았습니다. 바로 죽음의 어둠에 당신 아드님을 온전히 넘겨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기다’는 겉으로는 인간적 배반의 결과이지만 내면으로는 구원의 완성인 것입니다.
여기서 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느님의 사랑을 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드님을 우리를 위해 죽음에 넘겨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죽음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에 따라 당신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셨습니다. 모든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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