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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1 조회수1,205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4월 1일 성주간 수요일
 
"Surely it is not I, Lord?"
(Mt.26,25)
 
 
제1독서 이사 50,4-9ㄴ
복음 마태 26,14-25
 

어제는 너무나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점심식사를 한 뒤에 책상 앞에 앉았는데 그냥 잠들어 버렸네요. 그것도 잠깐의 시간이 아니라, 1시간 넘게 의자에 앉아서 말이지요. 그런데 일어나서는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우선 잘못 잤는지 어깨와 목이 너무 아팠습니다. 또한 소화도 잘 되지 않더군요. 식사 한 뒤에 곧바로 잠자지 말라고 했는데, 곧바로 잠드는 바람에 속이 불편한 것 같았습니다.

언젠가 책을 읽다가 사자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습니다. 사자는 일단 먹이를 먹기 시작하면 배가 불러서 도저히 못 먹을 정도까지 먹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잠을 잔답니다. 그것도 잠깐 자는 것이 아니라, 소화가 완전히 될 때까지 일주일이든 이주일이든 상관없이 숨만 헐떡이며 나무그늘에서 쉰다고 합니다. 그러면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이 사자에 비한다면 겨우 1시간 정도 잤을 뿐인데 사자는 괜찮고 저는 왜 속이 불편할까요?

사자를 괴롭히는 적이라 할 수 있는 똥파리 때문이랍니다. 아프리카 정글의 똥파리는 우리나라의 파리보다 4배 이상 크다고 합니다. 그 큰 파리가 사자의 눈과 귀를 비롯한 온 몸에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 것입니다. 꼼짝하기 싫은 사자지만 어떻게 하겠습니까? 조금이라도 떨어트리기 위해서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그 덕분에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답니다. 즉, 몸을 움직여서 운동이 되고, 그래서 소화불량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자에게 있어서 똥파리가 얼마나 귀찮은 존재이겠습니까? 그러나 사실 사자에게 똥파리는 은인인 것입니다. 물론 고맙다는 생각은 하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잘 생각해보니 제 곁에도 귀찮은 사람, 귀찮게 하는 환경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꼭 제게 고통과 시련을 주는 것인가를 생각해보니, 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저를 더욱 더 성장하게 해주는 그래서 지금을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은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감사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하나가 당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예고하시자, 제자들은 근심하며 말합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이 질문을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 역시 똑같이 말합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똑같은 질문처럼 보이지만 분명히 다릅니다. 즉, 주님과 스승님의 차이가 보입니다. 왜 유다는 스승님이라는 호칭을 썼을까요? 주님이라고 믿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일 뿐인 스승을 배반한 것이라고 스스로 변명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는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을 본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측면만을 생각했던 것이지요.

주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여야 배반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주님을 통해서 인간적인 안녕만을 얻고자 한다면, 주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도와주는 한 인간으로만 생각할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했을 때, 언제든지 주님을 배반할 수밖에 없음을 유다를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내게 있어서 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고통과 시련 앞에 단순히 내가 원하는 것만을 해주시는 인간적인 측면만을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 역시 유다의 길을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감사해야 할 대상, 바로 우리들의 참 하느님이십니다.

한 개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탈무드).


막히는 도로. 바뀌지 않는 신호등. 귀찮은 사람, 귀찮은 환경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꼭 그런가요?

 

특별하지 않은 날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인터넷을 보다가 아주 재미있는 연구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보면서 참 별 것을 다 연구한다 싶더군요. 글쎄 ‘연인과 이별의 아픔을 극복하는 시간은 얼마인가?’가 연구 내용이었습니다. 우선 결론을 이야기하면 11주 정도면 이별의 아픔을 극복할 수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이들을 인터뷰해 보니, 세 달 정도 지나면 이별이 주는 오히려 좋은 점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연구 결과를 보면서,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고통, 시련, 아픔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순간에는 정말로 견디기 힘든 것 같고, 내가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에 극단적인 생각까지 떠올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머무르지 말고 딱 세 달만 참아보면 어떨까요? 분명히 이를 통해서 얻게 되는 좋은 점들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칼럼 리스트인 제니 앨런은 항암 치료로 인해 머리카락이 모두 빠져 버렸고 이로 인해 의기소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발을 쓰고 다니면서 자신의 빠진 머리카락을 숨겼지요. 그런데 어느 날 강한 바람에 이 가발이 훌러덩 벗겨진 것입니다. 분명히 망신의 순간인데 제니 앨런은 오히려 시원함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왜 자신을 숨기고 살았는지를 반성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받아들여함을 깨달을 수 있었지요.

망신의 순간도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특별하지 않은 날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특별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나의 닫힌 마음이 문제일 뿐이지요.


좁은 곳에 갇혀 있는 금붕어. 그러나 나름 의미를 갖고 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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