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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4 토/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부활, 열림의 신비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3 조회수1,060 추천수5 반대(0) 신고
     

부활성야 토, 마르 16,1-7(15.4.4)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르 16,6)



The Resurrection of Jesus

 

 

                        

 부활, 열림의 신비  

 

겨울을 난 온갖 생명들이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다.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참으로 많지만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신비스런 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이 거룩한 밤에 교회는 어둠과 죄에서 우리 인류를 빛과 생명으로 구원하신 주님의 업적을 노래한다. 안식일 이른 아침 예수님이 묻혔던 무덤을 막아놓았던 돌이 굴려져 있었다. 무덤 문이 열려 죽음이 생명 안에 하나가 되었다. 부활은 열림의 신비라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닫혀있으면 답답하고 소통이 부자연스럽게 되고 불안해지기도 하면서 관계 안에 소외가 발생하게 된다. 오늘의 말씀들을 보면 주님께서 ‘먼저’ 막히고 닫혀있는 우리의 돌무덤을 열어주심을 알 수 있는데, 이는 우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 삶의 태도를 말해준다.

제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한 처음에 말씀으로 세상을 새롭게 여시고 창조로 모든 피조물에 생명을 불어넣으셨으며, 있게 하신 모든 존재를 ‘보고 좋아하시고 기뻐하신다. 제2독서에서는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씀하시며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시고, 제4독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께서 자신들을 또다시 내치실까 몹시 두려워하지만 주님께서는 ‘자비와 자애’로 그들의 두려운 마음을 열어주신다. 제5독서에서도 주님 친히 생명과 희망의 길을 열어주신다. 제7독서 에제키엘 예언서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용서해주시며, 죽음의 과거에서 해방된 새로운 미래를 열어주실 것임을 선포한다. 로마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묻힘으로써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가르친다.

이제 마르코 복음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보자.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다. 이 빈무덤 사건에 대한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의 체험은 사막, 어두움, 두려움, 공포였다. 이런 상황에서 여인들은 천사의 발현을 체험한다. 천사는 여인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며, 그들이 나자렛 사람 예수를 찾지만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고 알려준다. 엄청난 사실에 직면하여 여인들은 “덜덜 떨면서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마르 16,8).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죽음의 상징인 무덤문을 열고 나가시어 갈릴래아에서 제자들을 기다리신다. 일상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하여 그분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분 친히 우리가 만들어놓은 문들 곧 두려움, 아집, 이기심, 편견, 선입견, 판단으로부터 나오게 하시고, 우리를 은총의 샘으로 인도하신다.

그렇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학연, 지연, 재물, 지나간 과거, 나의 바람 속에서 예수님을 찾아서는 안 된다. 물론 믿음과 사랑은 나자렛의 예수에 기초하고 있지만 이제는 고향의 예수를 넘어 보편적 예수, 만민의 주님, 우주적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사실 회칠한 무덤이 아닌 빈무덤에서만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부활은 일체의 차별을 타파하는 평등의 원리와 삶에서 체험되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존재의 열림이다. 이런 존재의 열림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의 만남을 가로막고 있는 우리 자신의 돌무덤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부활의 신비인 ‘열림’은 수직의 열림과 수평의 열림을 아우르며, 이 두 차원의 열림이 만나는 곳에 구원의 꽃이 핀다. 이 꽃은 예수님의 수난의 다섯 상처이며 아씨시 성 프란치스코가 받았던 거룩한 오상의 신비를 드러내주는 상징이다. ‘수직의 열림’은 하늘이 열리는 것으로서 영(靈)의 열림, 영의 깨달음을 말한다. 영이 열리면 자신의 모습을 대면하여 바라보고 하느님이 주님이심을 알아차리게 된다. 주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게 되고 자신이 종임을 명확히 깨닫게 되는 것이다. 영이 열린 사람은 겸손가운데 감사하면서, 그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일상의 모든 것을 그분의 뜻에 따라 행하게 된다. 그럴 때에 진정한 기쁨을 알고, 주님만으로 만족하게 되는 삶이 열리게 된다.

부활 신비의 또 다른 차원은 ‘수평의 열림’이다. 수직의 열림인 영이 열리면 필연적으로 수평의 열림으로 연결되고 표현된다. 주님을 주인으로 알아보는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려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이면 자신에게만 쏠려있던 눈길이 문을 열고 밖으로 향하게 된다. 또한 한쪽으로만 쏠려 있던 생각(편견)이 모든 이를 향한 사람의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과거의 생각에 묶여있던 생각(선입견)에서 해방되어 ‘지금’, ‘여기서’ 새롭게 모든 이를 바라보며 경탄하게 된다. 모든 이 안에서 하느님을 보기에 그 어떠한 울타리도, 차별도 없이 모든 이를 너무나 소중한 선물로 받아들이게 된다. 이것이 우리의 삶을 새로운 지평으로 인도하고 열어주는 부활의 신비이다. 그래서 결국 부활은 죽음에서 생명에로 건너가는 “생명의 다리”, “희망의 다리"라고 할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 스스로 하느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편견과 선입견, 차별, 불신, 미움과 같은 우리 마음의 돌문을 열고,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부활하신 그분을 기쁜 마음으로 만나기로 합시다. 알렐루야!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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