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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 부활 체험 -기쁨과 평화-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베네딕토회 요셉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6 조회수898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4.6. 부활 팔일 축제 내 월요일, 사도2,14.22-33 마태28,8-15


                                                                                                    

주님 부활 체험

-기쁨과 평화-



오늘 말씀을 묵상하던중 문득 떠오른 제목은 '복음의 기쁨' 

즉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책 제목이었다가, '믿음의 용사'였습니다. 

다시 새벽에 '부활 체험'이란 제목이 생각나 바꿨습니다. 

생각하면 세 제목은 깊이 관련되어 있음을 봅니다. 


어제 강론 제목은 '부활의 삶'이었다가 오늘은 '부활 체험'입니다. 

파스카의 삶, 파스카의 체험으로 바꿔도 무방하겠습니다.


요즘 깊이 깨닫는바 체험입니다. 

체험을 통해 체득할 때 비로소 안다 할 수 있습니다. 


사막의 지혜는 바로 체험적 지혜를 말합니다. 

머리로 아는 것과 마음과 몸 전체로 아는 것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수도생활을 하지 않고도 머리로 공부하여 수도생활에 대해 강의를 할 수 있습니다.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오지 않고도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 온 듯이 말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예전 블라시오 아빠스의 산티아고 순례체험 이야기를 듣고 

네 핵심적 요소-하느님 목표, 이정표, 도반, 기도-를 추출해 

다녀온 듯이 인생순례에 빗대어 피정자들에게 많은 강론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산티아고 순례를 체험하고 나니 머리로 안 것은 안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진정 체험을 통한 앎이자 겸손과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정말 중요한 것이 체험입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의 목표도 체험을 통한 깨달음에 있음을 봅니다. 

수도생활의 궁극 목표인 '마음의 순수' 역시 체험을 통한 끊임없는 깨달음에서 성취됩니다. 

하여 우리의 삶은 '깨달음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 역시 똑같습니다. 

부활체험은 순전히 은총입니다. 


부활체험 없이도 얼마든 부활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 체험없는 이런 지식은 공허할뿐, 

주님 부활의 체험적 깨달음을 통해서 비로소 변화요 샘솟는 기쁨에 평화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다시피 

주님 부활을 체험한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 갑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체험을 통한 부활의 기쁨, 복음의 기쁨이요 

아무도 빼앗아갈 수 없는 체험적 참 기쁨입니다. 


이어 재차 주님 부활을 체험하는 여자들입니다.


"평안하냐?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런 부활을 체험한 여자들에게 새삼 무슨 설명이 필요하겠는지요. 

이런 주님 부활 체험이 없을 때 말 그대로 판단의 혼란입니다. 


바로 복음 후반부가 이런 사실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빈무덤은 두가지 결론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또 하나는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경비병들이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갔다." 이 둘뿐입니다. 


상식적으로 어느 쪽을 믿겠습니까? 

전자의 부활보다는 후자의 제자들이 훔쳐갔다로 판단은 기울 것입니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킨대로 하였고, 이 말은 오늘날 까지도 유다인들 사이에 퍼졌다 합니다. 

그러니 부활체험이 없는 이들은 경비병들의 말이 진실이고, 

예수 부활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로 치부할 만 합니다. 


하여 부활 체험이 그리도 중요합니다. 

주님 부활 체험에서 선사되는 기쁨과 평화가 

온갖 두려움의 몰아내 겁쟁이들을 믿음의 용사들로 맏듭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 기쁨과 평화에 넘쳐 달려가는 여인들을 상상해 보십시오. 

오늘 1독서의 사자후를 토하는 베드로의 설교를 보십시오. 


예전 수난복음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가 아닙니다. 

부활체험이 이렇게 믿음의 겁보를 믿음의 용사로 만든 것입니다. 


부활체험 없이 이런 설교를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바로 이런 증언이 예수부활이 유언비어가 아님에 대한 생생한 증거입니다.


1독서 베드로의 설교 역시 풍부한 묵상자료입니다. 


설교문의 주어는 온통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주어입니다. 

하느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바로 이것이 렉시오 디비나의 묵상방법입니다. 

부활체험이 베드로의 보는 눈을 바꿨습니다. 

부활사건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는 베드로입니다. 


우리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삶의 문장에 하느님이 주어가 될 때 놀라운 깨달음이요 

여기서 비로소 겸손과 순종도 가능해집니다. 

진정 부활 체험은 우리 삶의 문장의 주어를 하느님이 되게 합니다. 


베드로의 렉시오 디비나 묵상이 참 풍부합니다. 

시편까지 인용합니다.


"나 언제나 주님을 내 앞에 모시어, 

그분께서 내 오른쪽에 계시니 나는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뻐하고 내 혀는 즐거워하였다. 

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리라. 

당신은 저에게 생명을 주신 분, 

당신 면전에서 저를 기쁨으로 가득 채우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활의 기쁨입니다. 

다윗의 기쁨이자, 예수님의 기쁨이요, 베드로의 기쁨이자 우리 모두의 기쁨입니다. 


마지막 베드로의 설교는 얼마나 힘이 있고 감동적인지요. 

예수부활이 유언비어가 아닌 기적적 현실임을 웅변합니다.


"이 예수님을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우리는 모두 그 증인입니다. 

하느님의 오른쪽으로 들어 올려지신 그분께서는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다음, 

여러분이 지금 보고 듣는 것처럼 그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똑같이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우리 모두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는 복된 미사시간입니다.


"주님, 파스카 신비의 은총을 저희 마음에 가득 채워 주시어, 영원한 구원의 삶을 살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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