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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7 조회수1,231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4월 7일 부활 팔일 축제 내 화요일
 
Stop holding on to me,
But go to my brothers and tell them,
(Jn.20,17)
 
 
제1독서 사도 2,36-41
복음 요한 20,11-18
 

언젠가 우연히 거리에서 친구를 만났습니다. 만난 시간이 늦은 저녁시간이었지만 워낙 오랜만에 만난 것이기에 가볍게 맥주 한 잔이라도 마시자면서 근처 호프집으로 들어갔습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났을까요? 500CC 한 잔을 다 마실 즈음 종업원이 다가와서 묻더군요.

“한 잔 더 하실 거죠?”

사실 이 말에 한 잔 더 할 생각이 없어졌습니다. 원래 한 잔 더 마시려고 했는데, 당연히 더 마실 것처럼 물어보는 종업원의 말투에 우리는 “됐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다른 집에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위 종업원의 말도 제안조의 말이지만, 제안보다는 명령 같은 느낌을 많이 받게 되지요. 아마 “손님, 잔이 거의 다 빈 것 같은데 어떻게 하시겠어요?”라고 물었다면, 아마 이 집에서 한 잔 더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당연히 더 마셔야 할 것이라는 명령조의 말투에 친구는 불쾌감까지 들었다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명령조의 말은 이렇게 대화 자체를 길게 끌지 못하게 합니다. 그 누구도 ‘~해야 한다’식의 명령조의 말을 듣고서 기분 좋아하지 않거든요. 이는 어린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아이의 아빠가 자신의 체험을 쓴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아이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검사를 위해 하루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하더랍니다. 그런데 아이는 싫다면서 떼를 썼고 아무리 달래도 고집을 굽히지 않자 결국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 들어! 내일이면 집에 가니까 그냥 참아. 알았어?”

이렇게 명령조의 말을 내지르자 어떻게 되었을까요? 아이는 병원이 떠나갈 정도로 한층 더 격렬하게 울더랍니다. 그래서 방법을 바꿨습니다. 즉, 아이의 말을 반복해서 말하면서 공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입원하기 싫어.”라고 말하면 “싫지?”라고, “집에 가고 싶어.”라고 말하면 “응, 가고 싶지?”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런데 2분 정도를 이런 식으로 대화하다보니 아이가 스스로 “그냥 입원할래.”라고 말하더랍니다.

명령조의 말이 아닌 공감의 말을 통해서 아이가 스스로 변화될 수 있도록 해준 것이지요.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떠올려 봅니다. 예수님 시신이 없어졌다고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예수님께서는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속 시원하게 자신이 부활한 예수라는 사실을 밝혀도 될 것 같은데 그러시지 않으십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사랑하는 주님이건만, 그 주님을 보고서도 그저 정원지기로 생각해서 울고만 있더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보는 순간은 언제입니까? 바로 “마리아야!”라는 자신의 이름을 들었을 때라고 복음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이름을 불러주었으면 금세 알아보았을까요? 아닐 것 같습니다. 명령조의 말이 아닌, 마리아의 슬픔을 다 이해한다는 마음이 담긴 사랑의 말들을 들은 뒤에야 마리아는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하나하나 되새기면서 지금 내 자신이 쓰고 있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으면 합니다. 혹시 내 말을 이해시키고 따르게끔 하는 명령조의 말을 즐겨 쓰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당신을 알아볼 수 있도록 사랑의 말만 하셨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지혜는 기다림과 희망, 이 두 가지 말로 요약된다.(알렉상드르 뒤마)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계속 살고 계시죠?

 

신과의 인터뷰(작자 미상)

어느 날 나는 신과 인터뷰하는 꿈을 꾸었다. 신이 말했다.
“그래,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구?”
내가 말했다.
“네, 시간이 있으시다면.”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의 시간은 영원, 내게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무슨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가?”
내가 물었다.
“인간에게서 가장 놀라운 점이 무엇인가요?”
신이 대답했다.
“어린 시절이 지루하다고 서둘러 어른이 되는 것, 그리고는 다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갈망한 것. 돈을 벌기 위해 건강을 잃어버리는 것, 그리고는 건강을 되찾기 위해 돈을 다 잃는 것. 미래를 염려하느라 현재를 놓쳐 버리는 것, 그리하여 결국 현재에도 미래에도 살지 못하는 것. 결코 죽지 않을 것처럼 사는 것, 그리고는 결코 살아 본 적이 없는 듯 무의미하게 죽는 것.”
신이 나의 손을 잡았다. 우리는 잠시 침묵에 잠겼다. 그런 다음 내가 겸허하게 말했다.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자식들에게 그 밖에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신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내가 이곳에 있음을 기억하기를. 언제나, 모든 방식으로.”

하느님을 깜짝 깜짝 놀라게 하는 우리들의 행동들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통해서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됩니다. 그러나 정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가 이곳에 있음을 기억하기를. 언제나, 모든 방식으로.”라는 말이 아닐까 싶네요. 하느님의 방식으로 이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겸손된 삶, 주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삶이 필요합니다.


겨울이 어느 순간 사라졌습니다. 완전히 봄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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