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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은총의 시간, 오후 세 시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7 조회수1,502 추천수1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부활 팔일 축제 내 수요일


<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


복음: 루카 24,13-35







십자가에 못박히는 예수


안젤리코 작, (1450), 프레스코, 169x134 cm, 피렌체 성마르코 박물관


     < 은총의 시간, 오후 세 시 >

일본의 문학 박사 아베지로의 저서에 고오찌 요시다로오의 자서전이 소개되었습니다. 고오찌는 17세 때, 주인의 돈을 훔쳐서 쓰기 시작한 것을 시초로, 불량소년이 되었고, 18세 때, 니혼바시구의 한 상점에서 일하였는데, 그 집 안 주인과 불의의 관계를 하고, 게다가 그 부인을 살해한 후, 그 범죄를 덮기 위해 불을 질렀으나 체포되어 무기징역에다 9년이 더해진 중범인으로서 혹까이도의 소라찌 감옥에 수감되었습니다.

그가 25세 되는 188912일의 밤중이었다고 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분명치는 않아도 천사와 같은 아름다운 어린이가 그의 앞에 나타나 나는 네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늘에서 파송되어 왔다라고 말한 후 한 권의 성경을 그에게 보이고 청년이여 이 책을 먹으라.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하느님의 참 말씀이다. 이 책을 네게 주니 반드시 읽고, 결코 내 말을 잊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에게 성경책을 주었습니다. 그런 일이 세 번이나 있었습니다.

오랜 노력 끝에 모처럼 그의 손에 성경이 입수 되었지만 글을 배운 적이 없어 한 자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간수의 도움으로 글자를 배워 읽을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같은 죄수들에게도 성경읽기를 권하였습니다. 물론 조소와 박해도 받고 죽음의 위협도 당했지만 결연이 이겨내었습니다. 감옥의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게 되었고 그리스도인으로 탄생하였습니다. 이에 그는 1904년 특사로 가출옥 되었다고 합니다.

[출처: 한국 컴퓨터 선교회, 감화케 하는 성경]

   

하느님께서 구원과는 멀어 보이는 요시다로오를 구원하시는 방법은 그에게 당신 말씀을 먹이시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나무에 불이 붙여지듯 말씀은 그 안에 들어가 그 사람을 태워 본성을 변화시킵니다. 이 새로 태어남의 과정이 없이는 구원이 불가능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기도하러 간 시간이 오후 세 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맥상으로 그 정확한 시간을 굳이 써야 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사도행전은 루카가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루카에게 오후 세 시가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 그의 다른 글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낮 열두 시쯤 되자 어둠이 온 땅에 덮여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루카 23,44)

루카는 오후 세 시를 단지 여기에서만 사용하였습니다. 오후 세 시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신 시간입니다. 그리고 성전에서 파스카 제물이 바쳐지기 시작하는 시간도 오후 세 시였습니다. 결국 루카는 베드로와 요한이 일으킨 첫 번째 기적을 그리스도의 죽음과 결부시키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당신 자신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성령이십니다. 모든 기적의 힘은 성령에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요르단 강에서 성령을 받으시기 전까지는 기적의 힘을 발휘하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첫 번째 기적을 카나의 혼인잔치에서 이루셨습니다. 바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이었습니다. 그 포도주는 이제 십자가에서 피로 바뀌었습니다. 또 그 피는 오순절에 성령강림으로 바뀌었습니다. 물론 지금은 매 미사 때마다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형상으로 성경께서 우리에게 오십니다. 우리는 요시다로오가 먹었던 말씀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를 통해 매 미사 때마다 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가져야하고 나누어주어야 할 첫 번째 선물은 돈이 아닙니다. 물론 돈도 있으면 당연히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것은 우리가 받은 성령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성령강림을 체험한 교회를 상징합니다. 교회는 돈이 없어도 성령의 힘만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자신이 돈을 많이 벌어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말한다면 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 자선은 불교에 다니더라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의 피이고 세례이고 견진이고 성체이고 성령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지 못한다면 교회의 본질을 잃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을 치유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모태에서부터 장님으로 태어난 이에게 진흙으로 눈을 만들어주시는 것과 같은 것이고, 지금으로 말하자면 성령의 힘으로 세례를 주어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게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벌써 세례를 받는 신자들이 많이 줄어들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는 교회가 본질적인 성령의 힘에 의지하기보다는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고 있음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초대 교회처럼 다시 성령에 집중할 필요가 있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가장 본질적인 목표로 새로운 운동이 일어날 필요가 있는 때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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