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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황님 미사 강론:"부활 성야에 교황, 신비에 들어 가다"(4월 3일 토)
작성자정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07 조회수1,092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부활 성야 교황 : 신비에 들어 가다

http://www.news.va/en/news/pope-at-easter-vigil-entering-the-mys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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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 : 2015년 4월 4일 주일 (부활 성야)

강론 당일 매일 미사 말씀 : 제1독서:창세기 1,1-2,2/제2독서:창세기 22,1-18

/제3독서:탈출기 14,15-15,1/제4독서:이사야서 54,5-14/제5독서 : 이사야서 55,1-11

/제6독서:3,9-15. 32-4,4/제7독서:에제키엘 예언서 36,16-17.18-28/서간:로마서 6,3-11

/복음:마르코 복음 16,1─7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6482&gomonth=2015-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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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4-05 바티칸 라디오 (Vatican Radio)

 

 (바티칸 라디오) 부활 성야는 “하느님께서 사랑으로 밤을 지새우시어 완성하신 신비에 참여하는” 시간입니다. 이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부활 성야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인 전한 메세지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일요일 아침 일찍 주님의 몸에 향료를 발라 드리려고 갔다가 처음으로 비어 있는 무덤을 본 여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묵상했습니다.

 

 “이 신비에 참여하지 않고는 부활절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신비에 들어가기

 

프란치스코 교황은 설명하기를,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은 “놀라워하는 능력, 관상하는 능력을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침묵을 듣는 능력과 위대한 침묵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작은 속삭임을 듣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자신 안에 우리를 가두지 말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도망가지 말고, 신비한 일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거나 부정하지 말고, 우리의 의문들을 떨쳐 버리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만의 안락한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를 물러서게 하는 게으름과 무관심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과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겸손함이 꼭 필요하다 

 

교황은 이 신비로 동참하려면 반드시 겸손함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오만의 받침대에서 내려와 ‘강함과 약함을 갖고 있는 피조물, 용서가 필요한 죄인’인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겸손함입니다.”

 

이것이 여인들이 무덤에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라고 교황은 말합니다. 여인들은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고 그 신비에 들어 갔습니다. “죽음에서 삶으로 이끄는 신비 안으로 우리도 들어 가기 위해서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님과 밤을 지새었던 여인들을 본받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강론을 마쳤습니다.

 

 

다음은 프란치스쿄 교황 강론의 공식 영어 번역이니 보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부활 성야 강론

2015년 4월 4일

 

오늘 밤은 부활 전야입니다. 주님은 주무시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지키시는 분은 그분의 백성을 살펴 보고 계십니다(시편 121,4 참조). 그들을 종살이에서 구해내고 그들 앞에 자유를 향한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밤을 지새워 지키고 계십니다. 그분 사랑의 힘으로 홍해를 건너 주님 백성을 데리고 나오고 계십니다. 주님은 또한 죽음과 저승의 심연에서 예수님을 데리고 나오고 계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지새운 부활 전야, 슬픔과 공포의 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윗층에문을 잠그고 머물러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들은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발라 드리기 위해 일요일 새벽에 무덤에 갔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어찌해야 할지 몰랐고 그들은 스스로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들어 가지? 누가 무덤의 돌을 굴려 내 줄까?......” 그러나 위대한 사건의 첫 번째 표징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큰 돌은 벌써 굴러져 있었고 무덤은 열려 있었습니다!

 

“그들이 무덤에 들어가 보니, 웬 젊은이가 하얗고 긴 겉옷을 입고 오른쪽에 앉아 있었다……”(마르코 복음 16,5). 여인들은 이 위대한 표징, 비어 있는 무덤을 처음 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장 먼저 들어갔습니다……

 

“무덤에 들어 가는 것”. 오늘 부활 성야에 그 여인들의 체험을 묵상하는 것은 우리에게 복된 일이며 그것은 또한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하느님께서 밤을 지새우시는 사랑으로 완성하신 부활의 신비로 들어 가는 것이 우리가 여기에 있는 이유입니다.

 

이 신비에 참여하지 않고서는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지적인 어떤 일이아닙니다. 우리가 단지 알거나 읽은 적이 있는 어떤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 이상의 일, 훨씬 더 큰 그 이상의 일입니다!.

 

이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은 “놀라워하는 능력, 관상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침묵을 듣는 능력과 위대한 침묵 속에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작은 속삭임을 듣는 것입니다(열왕기 상권 19,12 참조).

 

이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가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 자신 안에 우리를 가두지 말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서 도망가지 말고, 신비한 일들을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거나 부정하지 말고, 우리의 의문들을 떨쳐 버리지 말 것을 요구합니다......

 

이 신비에 참여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만의 안락한 영역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고 우리를 물러서게 하는 게으름과 무관심을 넘어서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고 진리와 아름다움과 사랑을 찾아 나서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신비에 들어 가는 것은 우리의 믿음, 성실함, 우리의 존재 자체에 도전하는 질문들에 대한 더 깊은 의미, 해답, 쉽지 않은 어떤 것을 찾는 것입니다.

 

이 신비에 참여하기 위해 우리는 겸손함이 필요하며 우리 자신을 낮추는 낮은 자세가 필요하고 너무나 거만한 “나”라는 받침대, 오만의 받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필요합니다. 즉, ‘강함과 약함을 갖고 있는 피조물, 용서가 필요한 죄인’인 우리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며 우리 자신을 너무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이 신비에 동참하기 위해 우리는 무력함으로 낮아져야 하며 우리의 우상들을 버려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경배해야 합니다. 경배하지 않고 우리는 이 신비에 동참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이 모든 것을 가르쳐 주는 예수님의 제자였던 여인들. 그들은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그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리고 어머니 동정 마리아께서 여인들을 도우시어 믿음과 희망을 잃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결국 그들은 공포와 슬픔에 갇혀 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새벽의 첫 여명 안에서 그들은 향료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사랑의 기름이 부어져 있었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고 무덤이 열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안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들은 밤을 지새웠고,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고 부활의 신비에 동참하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님과 함께 밤을 지킨 그 여인들을 본받도록 하시어 죽음에서 삶으로 이끄시는 부활의 신비에 우리도 참여하게 해 주소서.

 

 

  <유튜브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sfz_yQGSs0Y&feature=player_embedd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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