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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0 조회수1,034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4월 10일 부활 팔일 축제 내 금요일
 
Cast the net over the right side of the boat
and you will find something.
(Jn.21,6)
 
 
제1독서 사도 4,1-12
복음 요한 21,1-14
 

제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은 신도시입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도 또 차도 그리 많지가 않으며, 유흥가도 없어서 아주 조용해서 좋습니다. 하지만 안 좋은 것이 하나 보이더군요. 차들의 통행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무단횡단이나 신호등 무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다고 저 역시 그 모습을 따를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이지요.

어느 날, 바쁘게 전철역을 가야만 했었습니다. 횡단보도에 서서 신호 바뀌기를 기다리는데, 도로에 지나가는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눈치를 보며 주변을 두리번거립니다. 혹시 갑자기 나타나는 차가 없는지, 근처에 경찰이 있는 것은 아닌지, 또 어린이가 있어서 이 모습을 보는 것은 아닌지를 두리번거린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눈치보고 있는 제 자신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2분만 참으면 편안한 마음으로 건널 수가 있는데, 1~2분 빨리 가자고 이렇게 눈치를 봐야 하나 싶더군요.

제가 아는 청년이 이 동네에 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다고 자기 역시 지키지 않으며 운전을 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범칙금 통지서가 날아온 것입니다. 통지서를 받고 나서야 비로소 교통법규 지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답니다. 1~2분 빨리 가려고 했다가 몇 만원의 벌금을 내게 되었다면서 말이지요.

눈치를 보며 후회할 쓸데없는 선택보다는 안전하고 확실한 길을 선택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만을 바라봅니다. 남들도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아주 조금이라도 이익을 얻어야 한다는 욕심으로, 나는 되고 남은 안 된다는 이기심으로 안전하고 확실한 길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길이 후회할 확률이 그만큼 크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이후, 제자들은 다시 옛날의 본업으로 돌아가려는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먼저 베드로가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라면서 배를 타지요. 그러자 몇몇 제자들 역시 그를 따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랫동안 어부 일을 하지 않아서 감이 떨어진 것일까요? 그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자 그들은 그물을 끌어올리기 힘들 정도의 많은 고기를 낚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아봅니다.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고 하신 주님이심을 말이지요. 그런데 눈앞의 이익만을 따지면서 다시 어부로 돌아가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함께 하는 길이 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낚을 수 없음을 직접 보여주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사람을 낚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길이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눈앞의 이익만을 따지면서 주님의 자리를 비어 놓아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주님과 함께 하는 곳, 그곳만이 나를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게 지켜줍니다.

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제임스 오펜하임).


티베리아스 호수에서 그물을 던지는 사람

 

사람 사이의 중앙선을 넘지 마세요.

운전을 할 때 중앙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고가 날 확률이 크기 때문에 이 선은 절대로 넘지 말자고 약속한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안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즉, 사람과 사람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될 중앙선이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 가족, 친구, 아니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 사이에 넘지 말아야 할 중앙선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러한 말로 그 중앙선을 가끔 넘곤 합니다.

‘이쯤이면 이해하겠지?’, ‘내가 생각한 것이 분명히 맞아.’, ‘대(大)를 위해서 때로는 소(小)를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지.’, ‘내가 이제껏 어떻게 해줬는데 내게 이럴 수가 있어?’ 등등....

나의 기준에서 말하고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또 내가 준 상처는 기억하지 못하면서 내가 받은 상처만을 떠올릴 때도 참으로 많습니다. 사랑 없이 이익과 욕심만을 채우려고 할 때는 얼마나 많습니까? 바로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중앙선을 넘어서는 말과 행동인 것입니다.

교통질서를 잘 지켜야 안전한 운전이 되는 것처럼,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지킬 것은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내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준이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티베리아스 호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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