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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2 조회수970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4월 12일 부활 제2주일
 
"Put your finger here and see my hands,
and bring your hand and put it into my side,
and do not be unbelieving, but believe."
Thomas answered and said to him,
"My Lord and my God!"
(Jn.20,27-28)
 
 
제1독서 사도 4,32-35
제2독서 1요한 5,1-6
복음 요한 20,19-31
 

제가 신학생 때에 가장 힘들었던 것을 하나 꼽으라고 하면 앞에 나가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울렁증이 심했던지 남들 앞에 서면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지요. 이런 제가 한심하게 느끼면서도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저의 병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인 공포증 같은 것을 느낄 정도로 힘들어하는 제게 어느 날 아주 뜻밖의 사건이 하나 생겼지요. 학부 3학년 말이었는데, 학생회장 후보로 나가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제가 되고 싶어서 나간 것이 아니라, 동창들이 강제로 밀어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벌벌 떨기만 하는 제가 글쎄 학생회장까지 되었지요.

그 뒤로 앞에 나가서 이야기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특히 학교가 통합되면서 더욱 더 앞에 나갈 일이 많았지요. 그렇다면 저의 울렁증은 없어졌을까요? 더욱 더 두려웠고, 말하는 것 자체가 여전히 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 사람들이 바보 같은 제 모습을 보고 얼마나 비웃었을까를 생각하면서 부끄러워했었습니다.

그때로부터 벌써 20년이 지났습니다. 동창들과 신학생 때의 이야기를 종종 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울렁증이 심해서 힘들어했던 저의 모습을 기억하는 친구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아니 그 누구도 제가 말을 잘 못했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금 이곳저곳 강의를 다니는 제 모습을 보면서 그 당시에도 말을 잘 했다는 식으로 말하더군요.

앞에 서서 말을 할 때 전혀 떨지 않는 지금의 저를 보면서 당시와 무엇이 달라졌는가를 생각해봅니다. 마음의 평화가 없었습니다. 불안한 마음,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를 할까 라는 두려움 등으로 마음의 평화가 없으니 더욱 더 말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던 것이지요. 그런데 지금은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서 말을 합니다. 그냥 제 이야기를 담대하게 이야기하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두려움이라는 평화가 없는 상태가 아닐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제자들이 유다인들을 두려워하며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두려움이 컸는지를 알 수가 있지요. 그 두려움은 마음의 문까지도 닫아걸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인사로 제자들에게 평온과 성령 안에서의 나눔을 불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것도 단 한 번의 인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한 번 평화의 인사를 하시고 성령을 받으라는 말씀을 해주시지요. 이 힘을 통해 두려움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세상에 나가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던 제자들이었지요. 그러다보니 스승님의 부활하심을 직접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두려움 등의 부정적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마음으로 어떻게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그 자리에 없었던 토마스가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라는 의심을 충분히 이해하게 됩니다.

제자들의 이런 나약함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그래서 첫 마디로 평화를 빌어 주었고, 두 번째 말씀 역시 평화였지요. 그리고 세 번째 말씀은 성령을 받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시 나타나셨을 때(그 자리에는 토마스 사도도 있었지요) 역시 첫 마디는 “평화가 너희와 함께”였습니다.

이는 많은 두려움 속에 살면서 마음을 닫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똑같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평화가 잃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성령을 받아야 한다는 것. 이 세상 안에서 잘 살아가는 비결인 것이지요.

힘이 되어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받아들이면서 우리 안에 간직하고 있는 두려움이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의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강의 때의 제 모습입니다.

 

한 마디의 가치

23번이나 가출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 부모는 너무 힘들어서 아이에게 화를 내며 말합니다.

“야 이놈아, 집 나간 것이 벌써 몇 번째냐? 넌 아들이 아니라 원수다 원수!!”

어느 날, 동네 사람을 통해 한 지혜로운 현자를 소개받았습니다. 아이 문제를 곧바로 물었지요.

“어떻게 하면 아이가 가출하지 않을까요? 우리 아이게 어떤 좋은 말이 필요할까요?”

이 현자는 아이를 만났습니다. 아이의 표정은 ‘당신이 날 어쩌겠다는 거야?’라는 식이었고, 전혀 반성의 기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모습을 본 현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얘야, 너는 어떻게 23번이나 집으로 돌아올 마음이 들었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이 말을 들은 아이는 그 뒤로 가출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23번이나 가출한 것과, 23번 집으로 돌아온 것. 어떻게 보면 똑같은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잘 생각해보면 전혀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 말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약간의 변화를 통해서 아이가 변화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문제는 나의 관점에서만 말을 하고, 전혀 듣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한 마디 가치를 잃어버리고 사용하지 않았던 적은 얼마나 많았을까요?

말의 소중함. 이를 기억하면서 내 이웃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을 해주었으면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교회의 밝은 미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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