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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3 조회수1,079 추천수1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4월 13일 부활 제2주간 월요일
 
Amen, amen, I say to you,
unless one is born of water and Spirit
he cannot enter the Kingdom of God.
(Jn.3,5)
 
 
제1독서 사도 4,23-31
복음 요한 3,1-8


지난 달 말에 우리는 독일 비행기의 추락으로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는 슬픈 사건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직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장이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에 부기장이 문을 잠그고 하강 버튼을 누르는 등의 행동을 볼 때 의도적으로 비행기를 추락시켰을 수도 있을 것이라는 충격적인 기사가 나온 것입니다. 특히 부기장이 과거에 자살 성향 심리치료를 받았다는 사실까지 나오면서 고의로 추락시켰다는 기사에 신빙성을 더해 주었지요.

이 기사를 믿기는 싫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150명 가까운 이의 죽음과 함께 슬퍼할 그들의 가족까지 생각한다면 그 행동의 무게는 실로 엄청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의 방향은 생명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지 죽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이렇게 살리는데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죽이는데 집중할 때가 많았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생물학적 죽음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픔과 상처를 통해 얻게 되는 영적인 죽음, 그리고 이런 죽음이 어쩌면 더 큰 죽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생물학적 죽음은 일회적인 것이지만, 영적인 죽음은 생물학적 죽음에 도달되기까지 계속되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다른 이에 대한 관심은 전혀 없고 자기 기분 내키는 데로만 살려고 하면서 아픔과 상처를 주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이 바로 죽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잘못된 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주님께서도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지요. 그런데 진정으로 살기 위한다면, 다시 말해 구원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받기 원한다면,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느님의 기준을 따라야만 가능합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비행기 운전에 서툰 당신이 비행기 조정석에 앉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비행기 기장을 그 자리에 앉혀서 비행기를 잘 운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왜 운전에 서툰 당신이 삶의 기장석에 앉아있고, 하느님께서는 부기장석에 계실까요? 하느님께 우선순위를 두지 않는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지금 당장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인들의 최고 의회 의원이었던 니코데모는 분명 자타가 공인하는 종교인으로 최고의 명성과 명예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밤에 찾아가지요.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았지만, 실상 참 행복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세상에서는 인정받는 위치에 있었지만, 하느님에 대한 깨달음이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에 찾아갔다는 표현을 쓰지요. 마음이 어두운 밤과 같은 상태였던 것입니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참된 아들의 모습을 닮은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역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볼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으로 보고 그 기준에 맞게 살아가는 삶을 향한 새로운 탄생을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앞에는 여전히 하느님이 아니라 세상을 또 나를 그 첫째 자리에 계속해서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금까지 우리의 부조정사가 하느님이라면, 얼른 자리를 바꾸십시오. 그래야 안전하게 목적지인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되려면, 먼저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제 인천교구의 강근신(미카엘) 신부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많은 기도 부탁합니다.

 

신이 아이들을 보내는 이유(메리 보탐 호위트)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시합에서 일들을 만들라고 보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마음을 더 열게 하고
우리를 덜 이기적이게 하고
더 많은 친절과 사랑으로
우리 존재를 채우기 위해서다.
우리 영혼에게 더 높은 목적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신이 우리에게 아이들을 보낸 까닭은
신이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하느님의 뜻을 우리는 잊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무조건 이겨야 하고, 1등을 해야 하고, 남을 누르고 올라서야 한다는 것. 그것은 희망과는 거리가 먼 행동이 분명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기억하면서 아이들에게 희망을 건네줄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돌틈 사이에 핀 꽃. 그 생명력에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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