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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14 화/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세상 한복판에서 ‘하늘 일’을 행하는 영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3 조회수1,160 추천수4 반대(0) 신고


    부활 2주 화 요한 3,7ㄱ. 8-15(15.4.14)
 
“사람의 아들 말고는 하늘로 올라간 이가 없다.”(요한 3,13)


Jesus and Nicodemus
 
 


  세상 한복판에서 ‘하늘 일’을 행하는 영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참으로 답답하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거짓과 부패, 갈등과 소외가 심화되고 대단한 꿈도 아닌 그저 인간이고 싶고, 소박한 기쁨을 맛보며 사는 것이 왜 그다지도 힘겨울까? 육의 영, 더러운 영이 판을 치는 이 현실 앞에 화사한 봄 햇살마저 가슴 시리게 다가온다.

요한복음의 육(肉, 사륵스)의 관념은 자연적인 인간 조건을 말한다. 곧, 스스로 고립되어 살아감, 고정 관념, 선입견 속에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지칭한다. 반면에 영(靈, 프네우마)은 숨, 기운, 바람 등으로 번역될 수 있는데, 하느님의 시각, 하느님의 정신을 갖고 사는 태도를 말한다. 여기서 구원에 이르려면 육에서 영으로 넘어가야 하며, 사고방식과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곧, “위로부터 태어나야 한다.”(3,7) 이는 온갖 애착과 자기중심적이고 세속적인 사고방식을 버리고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분의 심장으로 느끼며 그분 안에서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는 ‘변화되어야 하는’ 회개의 삶을 말하며, 무디고 더렵혀진 마음의 창을 말씀과 성령에 의해 닦아내는 ‘죽음의 길’이다.

변화의 동기와 이유는 그리스도 때문이며 하느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 때문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므로 그리스도처럼 내면이 변화되고 변형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 성령의 역사하심에 자신의 삶을 맡겨야 한다. 내 뜻, 나의 사고방식, 나의 고정 관념, 나의 판단, 의지가 아닌 그분의 힘에 맡길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능력이요 겸손이다. 더러운 영(靈), 육의 영을 버리고 하느님의 영 안에 머물고자 하는 이는 굳어진 자기 모습이 부서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는 세상이 주는 새로움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성령 이끄심을 식별하여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찾고 그에 따라 움직인다. 또한 영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과거의 관습적인 것들을 버리고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불확실과 불안정에 과감히 자신을 던지는 것을 말한다. 배척이 아닌 수용을 통하여 모든 사람과 일, 모든 관계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찾는 것이다.

니코데모는 두 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을 던지고 사라져버린다(3,9). 밤에 예수님(=빛)을 찾아와 빛을 대하자 빛 앞에 자신을 폭로시켜버렸다. 이처럼 우리도 새로이 태어나기 위하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야 하고, 부서지고 재(?)로 변하여 다시 태어나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3,12) 하고 말씀하신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려는 ‘세상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하느님을 계시해주시기 위해 보여주신 표징들을 일컫는다. 그렇다! 우리는 나날의 삶에서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사랑의 표지를 알아보지 못한다. 반면에, 예수님의 계시에는 세상적인 것과 무관한 절대의 신비와 진리도 있는데 그것이 바로 ‘하늘 일’이다. 그러나 죄중에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를 알아보고 받아들이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따라서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3,14-15) 십자가에 들어올려지시어 죽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음, 부활, 승천의 과정이 모두 영의 질서이며 우리가 살아내야 할 길이리라! 매일의 삶에서 겪는 수고로움과 불편함과 고통과 시련은 주님과 일치하기 위한 과정이며, 육의 영에서 떠나라는 표지가 아닐까? 그런 것들을 회피하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자! 이제 우리도 ‘거짓 나’를 태워버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따라 ‘하늘 일’을 깨닫고 실천하는 일에 몰두해보자!

경제논리를 앞세우며, 304명의 고귀한 생명들의 죽음의 진실규명에 한발짝도 나서지 않는 철면피한 이들에 대한 사랑의 저항에 나서는 것이 ‘하늘 일’을 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권력과 재력을 가진 이들의 경제정의 침해, 기본 생존권에 대한 위협, 일상화된 거짓과 부패 앞에서 하느님의 정의와 사랑을 말하고 행동할 때이다. 어디든 하느님 부재(不在)의 상황을 더는 참지 말아야 한다. 영의 질서는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을 외면하고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세상을 떠나 저 허공에 있지 않으니...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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