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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특집 B-4)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5. 세상은 나에 대하여 이미 못 박혔다.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7 조회수732 추천수0 반대(0) 신고

†† (특집 B-4)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5. 세상은 나에 대하여 이미 못 박혔다.

 

 

* (특집 B)는 가톨릭교회 내에서 해방신학에 물든 자칭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단적 교리에 대한 변증의 글이다! 당신의 신념이 세상 안에서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하느님의 말씀에 너무 무지한 소치이다. 부디 하느님의 은총이 있기를

* 전체글은 cafe.daum.net/yoondaniel  '어느 가톨릭 평신도의 하느님 말씀 묵상'을 참고하시길! 

 

요한 묵시록에서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를 얻었을 때, 요한은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극단의 세상을 보았다.

묵시17,3-5절에서 먼저 요한은 영 안에서 광야로 이끌려 바벨론, 곧 세상의 음녀와 모든 가증한 것의 어미를 보았다. 그리고 묵시21,10절에서 그는 동일한 성령에 이끌려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새 예루살렘, 곧 어린양의 아내인 신부를 보았다.

 

이 대비는 더 이상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분명하다.

음녀 바벨론은 항상 큰 성”(묵시16,19)으로 불리는데, 이것은 그것의 위대한 성취를 강조한다. 상대적으로 신부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묵시21,2, 10)으로 하느님께 분별됨에 중점을 두고 있다.

우리 안의 거룩함은 하느님께 속한 것이며, 온전히 그리스도께 분별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분별되어 나와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기본이다!

우리가 만일 이 거룩한 기본을 포기한다면 즉시 바벨론 안에 있게 된다.

 

요한이 묵시록에서 거룩한 성을 묘사할 때 첫 번째 언급한 특징은 성곽, 곧 벽이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만일 그분의 성이 그날에 그러한 분량과 영광에 이르기를 원하신다면, 오늘날 우리는 반드시 사람의 마음 안에 그 성곽을 쌓아야 한다는 것이다!

곧 이는 우리가 반드시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을 귀하게 여겨야 하며, 바벨론에 속한 모든 것을 거절하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느헤미야는 당시에 예루살렘의 성곽을 성공적으로 준공했지만 극심한 반대에 부딪혔다. 왜냐하면 사탄은 이러한 분별을 미워하며, 사람이 분별되어 하느님께 돌아가는 것을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와 그의 동역자들은 자신을 무장하여 한 면에서는 성곽, 곧 담을 쌓고 다른 한 면에서는 전쟁 준비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거룩히 분별되고 잘 예비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인 것이다!

 

에덴 동산에는 원수를 밖에 가둘 벽이 없었으므로 사탄이 들어올 수 있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가 그 동산을 지키기를 원하셨고(창세2,15), 그들이 사탄에 대하여 실제적인 보호벽을 만들기를 원하셨다!

하느님은 오늘날 그리스도의 승리하신 사실로 말미암아 그분이 구속한 사람의 마음 안에 사탄이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에덴동산을 계획하셨다!

묵시21,27절에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고 말한다.

 

세상은 특별히 요한이 자주 사용한 단어로, 곧 하느님께서는 세상의 성질에 대하여 특별한 깨달음을 요한에게 주신 것 같다.

1요한2,16절에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아주 분명하게 하와가 받은 유혹을 반영하며(창세3,6), 요한은 이것을 사용하여 세상의 일을 설명하였다.

 

정욕이나 욕망 아래 포함된 모든 것과, 탐욕스런 야심을 일으키는 모든 것과, 우리를 교만케 하고 유혹하는 모든 것이 사탄의 체계의 일부분이다.

특히 우리 안에서 교만케 하는 모든 것은 세상적인 일이다!

출세, , 성공과 같은 것은 세상에서 환영받는 것이다. 사람이 성공을 영광으로 삼는 것은 정당한 것이나, 요한 사도는 이러한 성공의 느낌을 가져오는 모든 것이 다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신념, 정의구현, 선한 행함까지도 그것은 세상에 속한 엄밀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공을 체험할 때마다 우리 안에 마땅히 이러한 반응이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이 성공에 내포된 죄악을 겸손하게 시인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공할 때마다 세상의 체계를 어느 정도 만지기 때문이다!

오늘날 이러한 것을 알고 그러한 것이 필요한 사람임을 시인하는 사람은 보호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어려움은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것을 알고 있는가라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이것은 단지 식당에서 일하는 여인조차도 매일 밥 짓고 손님을 접대하면서 세상과 교만을 만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영광이 돌아가지 않는 모든 것은 다 헛된 영광이다!

기이한 것은 보잘것없는 성공조차도 헛된 영광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교만을 만지고 세상을 만진다면, 우리와 하느님과의 교통은 즉시 단절이 생긴다. 악한 일 뿐만 아니라 우리로 점점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일도 다 그분을 대적하는 세상체계의 일부분인 것이다.

심지어는 어떤 정당한 일의 동기와 성공으로 인해 생긴 만족까지도 우리와 하느님 사이의 장애물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안에서 불러일으킨 것은 이생의 교만이요 하느님께 대한 찬미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분명히 우리가 세상을 만졌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만일 하느님과의 교통을 유지하고 더럽혀지지 않으려면, 우리는 계속 깨어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백성을 파멸시키려고 마귀가 파 놓은 이 함정을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은 세상을 도망갈 수도, 세상을 벗어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상에 속한 방법으로 세상의 체계를 벗어날 수 있는가?

금욕주의나 은둔생활이나 세상에 속한 초등학문이나 정의구현을 위한 세상에 인기 있는 투사로 세상 체계를 벗어날 수는 없다!

우리가 세상을 벗어나 구원을 받는 것은 이것저것을 버리고 피하는 것과 또는 그 반대로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기 위한 집단적 투쟁으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의 안목을 가지고 세상은 죽음의 판결 아래 있음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묵시18,2절에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라고 말한다.

오늘날 세상은 살아 있는 세력이므로 잔혹하고 집요하게 그의 대상을 혈안이 되어 찾고 있다. 그러나 세상은 비록 그 집행은 장래이지만, 이미 사형이 언도되었고, 사망은 분명하다!

사형 언도를 받은 사람은 감옥에 갇혀서 죽음을 기다리는 것 외에 다른 소망이 없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은 심판 아래 있으며 소망이 없다.

 

우리는 세상 체계가 아직 멸망하지 않았고(히브1,11), 하느님에 의해 끝나지는 않았지만, 끝나는 것이 이미 정해진 사실임을 분명히 안다.

우리가 이 사실을 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마태11,18-19절에서 요한은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저희가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가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침례자 요한처럼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금욕적인 방법으로 세상에서 구원을 받으려고 한다.

 

그것은 오늘날의 불교이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아니다!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어 먹고 마셨음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도 먹고 마시며,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다.

그러나 다만 우리는 먹고 마시는 것이 세상에 속한 것이며, 세상과 함께 죽음의 판결 아래 있는 것임을 알기 때문에 먹고 마시는 것이 우리를 온전히 통제할 방법이 없다. 곧 먹고 마시는 그것으로는 소망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제하고 지나치지 않는다.

 

묵시17,14절에 그들이 어린 양과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오 만왕의 왕이시므로 그들을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받고 택하심을 받은 진실한 자들도 이기리로다라고 말한다.

곧 바벨론의 군대와 어린 양이 전쟁할 때, 만 주의 주요 만왕의 왕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그들을 이김으로 바벨론은 무너졌다.

바벨론은 소망이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계시가 우리로 하여금 이 사실을 알게 한다!

곧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이 죽음의 판결 아래 이미 놓여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보자!

그리스도는 옛 창조의 모든 것을 포함한 사람을 입으신 후(성육신), 이 사람을 십자가로 데려가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사람이 못 박혔다.

이것은 모든 것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그리스도는 사람을 십자가로 이끌어 그곳에서 모든 것을 끝내셨다!

곧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사람과 세상과 사탄의 왕국과 죄와 죄들과 옛사람 등 모든 것이 함께 못 박혔다.

옛 창조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끝난 것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이 죽음을 주관적으로 체험해야 한다!

 

요한12,31절은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곧 세상과 이 세상 임금인 사탄이 심판을 받고 쫓겨날 것이라고 말한다.

언제 이 일이 일어났는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일어난 것이다!

골로새서1,20절은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사람만이 하느님과 잘못된 것이 아니라 만물도 하느님과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계시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목하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곧 모든 창조물이 십자가에서 처리되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들의 종결이다!

우리의 모든 것, 곧 우리의 지식과 지혜와 능력, 심지어 우리의 선함까지도 십자가 위에 두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못 평가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을 죽음에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전히 세상에 살고 세상의 것들을 사용하지만, 그것들을 우리의 소망으로 삼을 수는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십자가가 그것들에 대한 우리의 모든 소망을 분쇄해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단 세상은 멸망받기로 정해졌음을 깨닫는다면 틀림없이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흥미를 잃을 것이며, 세상도 우리를 붙잡을 방법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보기만 한다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사탄의 모든 체계와 분리될 것이다!

 

갈라6,14절에서 바오로 사도는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고 말한다.

이 말씀은 하느님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역사에 대한 계시를 가지고 우리에게 오실 때, 그분은 우리 자신이 십자가 위에 있음을 보여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세상도 십자가 위에 있음을 보여 주신다는 것이다!

 

우리가 만일 십자가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면 세상 또한 십자가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참으로 이 사실을 보았는가의 문제인 것이다!

만일 이 사실을 보았다면, 우리는 사랑하는 세상을 거절하려고 시도하지 않아도 십자가가 이미 그것들을 거절했음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내 주위에 붙어 있는 세상을 벗어 버리려고 시도하지 않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미 벗어났음을 볼 것이다! 아멘!

 

세상에 영적으로 묶이는 것은 영적인 눈멂의 결과이며, 구원을 받는 것은 우리의 눈이 열려진 결과이다.

우리가 외면적으로 세상과의 접촉이 아무리 친밀하다 할지라도 우리가 참으로 세상의 성질을 본다면 세상의 권세에서 해방을 받을 것이다.

세상의 기본적인 특성은 사탄에 속한 것이며, 그것은 하느님과 원수가 된다!

우리가 이 사실을 본다면 구원을 얻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직업들은 이미 죽음의 판결 아래에 있다.

사제나 목사도 교사도 의료업도 복지도 정의 구현도 모두 죽음의 판결 아래에 놓여 있다!

당신이 만일 참으로 이것을 깨닫는다면, 당신의 생활은 변할 것이다!

곧 이미 심판받은 하느님의 원수인 세상 가운데서 당신이 어떻게 생활해야하며, 또한 어떻게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고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이 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알렐루야! 아멘!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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