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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특집 B-1)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1. 세상이란 무엇인가?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8 조회수560 추천수0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특집 B-1)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1. 세상이란 무엇인가?

 

 

이글은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 만연되어 있는 해방신학이라는 이단과 관련된 변증의 글이다.

이글들을 (특집 B)로 표시하고,  cafe.daum.net/yoondaniel  어느 가톨릭 평신도의 하느님 말씀 묵상매일말씀묵상편에 시리즈로 올리고 있다.

 전문을 읽기를 원하시면 위의 cafe (특집 B)를  참고 하기길!

 

이글은 해방신학이 이단이며, 거짓 예언자의 배후조정임을 하느님 말씀 안에서 찾고 밝히려는 시도 중의 하나이다.

가톨릭교회를 통하여 사회 곳곳에 바이러스처럼 침투시키고 있는 거짓 예언자의 공공연한 공격을 가톨릭교회는 무방비 상태로 방치하며 안주하고 있다!

교회 안의 어느 누구도 이 영적전쟁에 대항하여 적극적으로 변증하려는 사람들이 없다.

왜냐하면 아마도 그들은 하느님 말씀으로 무장되지 않았고, 외식하는 자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 특집의 제목을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으로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첫회인 B-1의 표제로는 세상이란 무엇인가?’ 를 택하였다!

 

그분만을 의지하면서 기도 중에 이글을 쓰고자 한다!

오 주님이시여!

말씀의 지식과 말씀의 지혜를 주옵소서!

의도한 바, 이 글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끈기와 능력을 허락하소서!

그러나 당신의 사랑 안에서만 이 글을 쓰게 하소서!

그리고 이 글들에 깊이 개입하소서!

아멘!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12,31-32)

 

우리는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께 환호하며 함께하던 사람들에게 어떤 뜻을 전달하는 것인가를 질문해 보아야 한다.

만일 그분의 말씀이 그들 다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그들의 소망과 완전히 반대되는 것이었을 것이다.

곧 이 말씀은 그들의 소망과는 달리, 그분 자신이 범죄자와 같이 죽임당할 것을 예언한 것임을 알 것이다(요한12,33).

 

비록 그분의 말씀이 그들에게 어떤 환상을 깨뜨려 버렸지만, 그러나 대신에 그것은 견고하고도 확실한 기묘한 소망으로 대치되었다. 왜냐하면 그분의 말씀은 유대 애국자가 추구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철저하게 통치권의 전환을 선포한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이 말씀은 앞의 구절과 현저하게 대비되는데, 가 가리키는 그분은 그분의 원수인 세상 임금과 대비된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으심, 곧 하느님의 생명의 밀알이신 그분이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만연한 독재와 공포와 죄악으로 둘러싸인 이 세상 통치는 교만한 통치자의 패망과 함께 끝날 것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또한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새로운 공의의 왕권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왕권의 특징은 물질적인 것이 아닌 마음으로 그분께 순복하는 영적인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사랑의 끈으로 이끌림 받아 심판 아래 있는 세상을 벗어나 인자 예수께 돌아가게 된다. 그분은 비록 땅에서 들려죽으셨지만 도리어 이 때문에 높이 들림 받고 하느님의 주권을 잡으셨다.

 

신약에서 코스모스(kosmos)라는 헬라어 단어는 거의 일률적으로 세상’(the world)으로 번역되었는데, 그 성경적 의미는 세 가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1)물질적인 우주, 지구, 이 땅,

2)지상의 사람, 곧 하느님을 멀리 떠나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전 인류,

3)지상의 사물, 곧 세상적인 물질, 재산, 재물, 이익, 향락 등을 가리키는데, 이 각각의 의미는 우리에게 전체 그림의 한 단면들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성경 말씀을 묵상해보면, 이 모든 것의 배후에는 또 다른 어떤 것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코스모스라의 고대 헬라어 어원을 살펴보면 조화를 이룬 체계’, ‘안배’, ‘장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의미는 우리에게 세상 배후에 또 다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가 만질 수 있는 모든 사물의 배후에는 만질 수 없는 것과 계획적인 어떤 체계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 체계 안에는 조화로운 작용과 놀라운 그들 나름의 완전한 질서가 있음을 볼 수가 있다.

 

이 세상 체계에 대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묵상해보자!

그 하나는 아담이 하느님의 창조 안으로 사악한 것이 들어오도록 문을 연 그날부터 세상의 체계는 하느님과 원수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세상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하며”(1코린1,21), 그리스도를 미워하며”(요한15,18), 또한 진리의 성령을 받아들일 수 없고”(요한14,17), “그들이 행하는 일은 악하며”(요한7,7), “세상과 벗되고자 하는 자는 하느님과 원수가 되는”(야고4,4)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요한18,36)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이미 세상을 이기셨고”(요한16,33), 우리로 세상을 이기게 하는 것은 그분 안에 있는 우리의 믿음이다(1요한5,4)고 하신다.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한12,31-32)의 서두의 말씀은 세상이 심판 아래 있음을 분명히 말해 준다.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태도는 전혀 타협적이지 않다!

또 다른 하나는 위의 성경 구절에서 분명한 것처럼, 이 세상 체계 배후에는 이 세상 임금이 있음을 요한 사도는 여러 번 언급했다. 여기에서 우리는 질서 정연한 체계인 세상은 한 어둠의 주관자인 사탄이 배후에서 관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보이는 사물 배후에 존재하는 질서 정연한 세상체계를 느낄 수 있는데, 이 체계는 하느님의 원수, 곧 마귀가 통제하는 이 세상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위의 세상을 깊이 인식하도록 한다!

만일 우리가 세상 사람과 물질과 사물과 사물의 배후에 있는 그 보이지 않는 권세를 알지 못한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아주 쉽게 속을 것이다.

성경에서 세상의 의미는 구약에서부터 일정한 발전을 거쳐 신약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영적인 의미를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 타락하기 이전의 세상은 단지 땅과 사람과 사물 등의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다. 아직 체계적인 코스모스가 구성되지 않았을 그 때에는 세상이 없었다. 그러나 타락으로 인해 사탄이 자기 자신이 설계한 체계를 이 땅에 조직한 후로부터, 우리가 말하는 세상의 체계가 시작된 것이다.

사탄은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에게 연 문을 이용하여 자신이 세운 조직을 이 땅에 가져온 것이다. 그때부터 이 땅은 세상 안에 있게 되었고, 사람도 세상 안에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타락 이전에는 땅이 있었고, 타락 이후에는 세상이 있게 되었으며, 주님이 오실 때에는 하느님의 나라, 곧 왕국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세상이 사탄에게 속하듯이, 하느님의 나라, 곧 왕국은 우리 주 예수님께 속한 것이다.

더욱이 오늘날의 이 세상을 대신하고 장래에도 세상을 대신하는 것은 바로 이 왕국(하느님의 나라)이다.

그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한 돌이 사람의 상을 깨뜨리면, 그때 이 세상 나라는 우리 주와 그리스도의 나라”(다니2,44-45; 묵시11,15)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을 구성하는 실질적인 요소들은 무엇일까?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과학, 종교, 예술, 법률, 음악 등은 세상을 구성하는 사물이며, 또한 우리가 매일 매일 접하게 되는 세상의 사물이다.

이러한 것들을 뽑아 버린다면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체계인 세상은 존재할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인류의 역사를 보더라도 세상의 이러한 부문에 현저한 진보가 있어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이 진보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또 이 모든 발전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이냐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1요한2,18,22절과 4,3, 그리고 2요한7, 묵시13장에서 우리에게 마지막 때에 적그리스도가 일어나 이 세상에 자기의 나라를 세우려 할 것임을 말해 준다.

그것이 바로 이 세상의 진행 방향이다!

사탄은 물질적인 세상, 세상사람, 세상에 있는 사물을 이용해 결국 모든 것을 적그리스도의 나라가 되게 한다!

그때는 세상의 체계는 절정에 이르게 될 것이며, 그 때 세상의 모든 부문이 적그리스도의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동산에는 기술이나 기계 공구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타락 이후에 가인의 자손 중에 동철로 기계를 만드는 사람이 나타났다. 비록 오래 전부터 칼과 쟁기는 계속 서로 경쟁하며 기술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수세기 전만 해도 동철로 만든 기계로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해 내는 것이, 별 의미가 없는 환상으로 여겨졌을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동철과 금속은 사람의 손에서 이미 사악한 것들의 재료가 되고, 사람을 대량 학살할 수 있는 도구로 변했으며, 또한 종말이 가까이 올수록 기술과 공학의 보편적인 남용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종교는 어떠한가? 지금도 곳곳에서 종교가 총과 미사일을 들고 그들의 신을 위하여 수없이 많은 사람을 테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개신교만 보더라도 그 종파가 가히 100개를 훨씬 넘을 정도로 분열되고 있으며, 더욱이 정부의 허가도 받지 않은 신학대학이 거의 100개 이상으로 난립하여 신학의 질을 떨어뜨리고 있으나 통제가 불가능한 속수무책의 상태이다.

또한 외형의 크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우리나라 대형교회들은 초기 설립자가 죽은 이후에는 처참한 분열과 암투가 성행하고 있다. 그 분열과 인본주의와 타락은 가히 마귀적이다!

이미 상당한 교회가 적그리스도의 수중에 빠진 사례와 증거는 너무나 많다.

 

가톨릭교회도 예외는 아니다. 강단에 하느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있고, 인본주의적 외식과 의식만이 무성해가고 있다. 특히 해방신학이라는 이단이 사제들의 거의 50% 이상을 흡수했다고 하며, 마침내 그들이 교회의 주체라고 세를 과시하고 있으되, 정작 교회는 그 대책이나 변증할 힘마저 잃고 무기력하기만 하다!

애석하게도 오늘날의 교회는 물질적인 교회로 전락했을 뿐, 이미 그리스도의 몸은 아니다!

 

음악과 예술도 마찬가지다. 피아노를 치고 퉁소를 부는 것의 기원도 가인의 집에 있었는데, 오늘날 무분별하게 너도 나도 작사 작곡하여 유행가처럼 교회에 도입되어 불러지고 있는 새 찬송가들의 내용을 분석해보라! 자기도취와 자기만족을 위한 것이 대부분이며, 가사가 모호하고 세상적인 것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세상의 많은 곳에서 우상 숭배와 관련된 회화, 조각, 음악 등의 예술을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분별한 새 찬송가의 작곡과 도입, CCM, 노래와 춤, 시각 예술과 연극 예술을 통하여 적그리스도의 본성이 이전보다 더욱 공개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경제는 어떠한가? 경제와 세상의 연결은 아마 더 은밀한 것이다. 사탄 자신이 바로 첫 번째 상인처럼,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하와와 교역을 했다. 에제키엘28,5절에 표징된 이야기 안에는 그의 원초적인 특성이 나타나 있으며, 우리는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라는 구절을 찾아 볼 수 있다.

이것은 논쟁할 필요조차 없다!

왜냐하면 우리 대다수는 아주 쉽게 경제 또는 상업의 기원과 성질이 사탄에게 속한 것임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떠한가? 교육도 경제나 기술 못지않게 세상에 속한 것이다.

교육의 근원은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이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지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반드시 그들을 교육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떻게 하면 본질상 세상에 속한 일을 접하게 하는 동시에, 이 거대한 세상체계와 그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그들을 지켜야 하는가?’ 라는 이 이중적인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과학은 어떠한가? 그것도 세상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다. 우리가 조금 더 깊게 과학의 범위에 들어가서 물질세계의 성질과 사람의 성질을 사색하기 시작하면 즉시 의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과학을 연구하고 새로운 발견을 추구하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가 정당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오늘날 휴대폰의 발전과 보편화는 인간의 본성을 바꾸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어린 아이들부터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그 순기능보다 이미 역기능이 훨씬 커져버린 휴대폰의 심각성에 당신은 동의하는가?

 

이것 또한 섬뜩하리만큼 마귀적이다!

한시라도 휴대폰이 손에서 떨어지면 그 불안감이 이제는 심각한 정신적 병리현상으로까지 만연한 우리 사회를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지식과 기술의 영역 안에서 유익과 해가 되는 것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문제는 과학과 기술은 필연적으로 경제와 한 몸이 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미 놓였다는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지식을 추구하면서 사탄의 올무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가?

이러한 것들은 우리가 반드시 보아야 할 것들이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이 특집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문제의 제기이자 요점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1요한2,15절에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기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일을 만질 때 우리는 반드시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이 나와 아버지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를 자문해야만 한다!

과거에는 우리가 세상에 들어가야 비로소 세상을 접촉했으나, 오늘날에는 세상이 우리를 찾아와 우리를 피할 수 없도록 만든다.

오늘날에는 도처에서 사람을 붙잡는 세력들이 존재한다!

 

당신은 일찍이 오늘날과 같은 이러한 세상의 권세를 느낀 적이 있는가?

당신은 일찍이 돈과 굴절된 사상과 옷에 맞지 않는 인기위주의 정치와 부패한 사회와 방치된 교육에 깊숙이 교묘하게 악한 세력이 개입하고 있다고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그리스도인들의 화제의 중심도 온통 다 세상적인 것들 뿐이다!

 

세상은 이미 교회의 제대와 강론대를 접수 하였고, 심지어 사제들의 상당수가 인본주의에 물들어 거룩함을 잃었고, 하느님의 성도들이 이 세상에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었으며, 성도들을 그의 손아귀로 이끌 방도를 구체적으로 모색하여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야하는 존재이므로 세상을 등지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야만 하는 이 세상 무대의 배후에는 악한 영적인 세력이 있어 세상적인 일을 통하여 사람을 세상의 체계에 빠져들게 하려는 온갖 방법들을 시도하고 있음을 깨닫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가 세상을 만질 때, 중대한 영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매우 적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성도들은 죄에 대비하는 것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주관자에 대해 영적전쟁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하느님은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셔서 그 최종적인 완성, 즉 그리스도가 우주의 왕이 되는 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동시에 그분의 원수는 이 세상 체계를 세워서 적그리스도의 통치를 갖기를 원한다. 우리가 취사선택에 부딪칠 때 문제는 그것이 선한가 악한가도 아니고, 유익한가 해로운가도 아니다.

 

우리가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은 이것이 세상에 속한 것인가, 아니면 하느님께 속한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우주 가운데 유일한 충돌이 있는 이 두 가지 상반된 일이 우리 앞에 놓여질 때 우리가 택해야 하는 것은 하느님이 아니면 사탄이다!

 

다음 내용(특집 B-1-2)세상을 사랑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복된 하루가 되시길!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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