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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4월 19일 부활 제3주일 감사제의 거행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8 조회수634 추천수1 반대(0) 신고

 

 

2015년 4월 19일 부활 제3주일 영적독서

 

물고기를 드신 예수님 / 2015년 4월 19일 부활 제3주일 서울주보

성 유스띠노 순교자의 그리스도인을 변호하는「제1호교론」에서
 
(Cap. 66-67: PG 6,427-431) 
 

감사제의 거행

 

우리가 가르치는 것을 진리라고 믿고, 죄의 용서와 재생을 부여하는 세례의 물로 씻음 받으며, 또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감사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통의 빵과 음료로 받아 모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육화 되셨고 우리 구원을 위해 살과 피를 취하신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담고 있는 감사의 기도를 바칠 때의 음식, 즉 변화되어 우리 살과 피를 양육하는 그 음식도 육화 되신 예수님의 살과 피라는 것을 배워 왔습니다.

복음서라고 하는 해설집에서 사도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음과 같은 분부를 남기셨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는 빵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기념하여 이를 행하여라. 이는 내 몸이다. '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피이다. '_그리고 나서 그것을 그들에게만 나누어 주셨다. "라고. 그때부터 우리는 이것을 항상 서로서로 상기시켜 왔습니다. 그리고 재물을 가진 이들은 없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며 서로 항상 일치되어 있습니다. 봉헌물을 바칠 때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만물의 창조주께 찬미를 드립니다.

그리고 "태양일"이라고 하는 날(주일)에는 도시와 시골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집회를 열고 사도들의 해설집이나 예언자들의 글을 시간이 허용하는 데까지 읽습니다. 독서가 끝나면 그 다음에 주례자는 방금 들은 아름다운 교훈들을 우리 생활에서 본받도록 권고하고 격려합니다. 그리고 나서 함께 일어나 기도를 바칩니다.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기도를 끝낸 후에 빵과 포도주와 물을 가지고 옵니다 주례자는 온갖 정성을 다해 기도와 감사송을 바칩니다. 그러면 회중들은 "아멘"이라고 큰소리로 응답합니다. 그 다음에 감사의 기도를 바친 그 음식을 분배하여 참석자가 각기 그것을 받아 모시며 참여치 못한 이들에게는 부제들을 통하여 그것을 보냅니다.

재물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원하면 자기가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대로 바칩니다. 이 봉헌물은 모아서 주례자에게 맡겨집니다. 그는 이것으로 고아와 과부, 질병과 어떤 이유로 궁핍한 이들, 또는 갇힌 이들과 여행하는 이들을 도와줍니다. 한마디로 주례자는 어려운 모든 이들을 돌보아줍니다.

태양일(주일)에 우리가 모두 함께 모이는 이유는 한 주간의 첫 날인 이날, 하느님께서 어둠과 물질을 회전시키신 후에 세상을 만드셨고 또 이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토요일 전날 십자가에 못박히셨고 토요일 다음날 곧 태양일(주일)에 사도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여러분이 생각해 보도록 말씀 드린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2015년 4월 19일 부활 제3주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성무일도 Ⅱ pp 658-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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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유스티노 순교자 (축일 06월 01일)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에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성 유스티누스가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경이다. 그는 이후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유대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 있는 로마(Roma)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이다. 그는 크레센스라는 견유학파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하여 로마(Rome)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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