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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죽음을 품은 삶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8 조회수1,216 추천수1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부활 제3주일


<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복음: 루카 24,35-48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다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작, (1520-22)


     < 죽음을 품은 삶 >

 

 

전에 어떤 자매가 남자친구와 자주 헤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사실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워 남자친구가 자신에게 관심이 줄어드는 것을 느끼면 재빨리 다른 남자와 소개팅을 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차례의 헤어짐이 있었는데 대부분이 헤어지기 전에 다른 사람과의 교제가 시작되었습니다. 남자는 그 여자에게 관심이 줄어든 것이 아닐 수도 있는데 지례짐작으로 헤어짐을 두려워하여 다른 남자를 먼저 만났던 것입니다. 남자를 만날 때도 여자는 헤어짐이 두려워 자신과 같이 훌륭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고맙게 여기라면 남자를 깔보기도 하고, 때로는 헤어지지 않게 준비도 안 된 남자에게 빨리 결혼해버리자는 식으로 괴롭혀 왔었습니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모습에 지쳐 있다가 여자가 다른 사람에게까지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게 되면 확실히 돌아서버리게 됩니다.

대부분 이런 자매는 어렸을 때 집에 혼자 남겨져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었거나 혹은 부모로부터 버림받았던 기억들을 무의식중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버려지는 것이 두렵고 그 버려지는 것이 두려워 만나는 사람을 괴롭히고 그래서 진짜 버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려면 먼저 이별하는 법부터 배워야합니다. 이별하여도 아무렇지도 않을 때 상대를 괴롭히지 않고 온전한 성인의 모습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남녀 간의 만남에서처럼, 삶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온전한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황창연 신부님의 강연 중 신학생 아들을 둔 글라라라는 자매의 사례가 나옵니다. 글라라 자매는 암이 뼈까지 전이되어 6개월 선고를 받았지만 군대 간 아들이 서품을 받는 것을 꼭 보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4년을 살기는 했지만 끝내 아들의 서품을 보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가게 되었습니다.

황 신부님이 돌아가시기 직전 병원에 찾아갔을 때 글라라 자매는 심경이 복잡해 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다르게 빨리 죽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글라라 자매가 죽었다가 아들의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죽었을 때는 굉장히 아름다운 꽃길을 따라가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예수님과 성모님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나니 생의 고통을 고스란히 다시 느끼게 된 것입니다. 보통 죽어서 하늘나라의 맛을 조금이라도 맛본 사람은 다시 이 세상의 삶으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오직 남겨진 사람들만 슬퍼하는 것이지 정작 몸을 빠져나온 영혼은 자유와 평화와 기쁨을 누리기 때문에 슬프지 않다는 증언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죽었다가 돌아와서의 삶은 죽기를 원치 않으면서 이 세상에 매여 살던 삶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아들의 서품을 하늘나라에서도 볼 수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세상 삶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모습의 삶이 진정 두려움 없는 삶인 것입니다.

 

제가 작년에 갔다 온 성지순례 계획을 세울 때 시나이산을 제외하게 된 이유는 한국 순례자 한 분이 시나이산 올라가다가 낙타와 함께 절벽으로 떨어져 사망한 사건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여행사에서는 낙타로 시나이산 올라가는 프로그램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낙타타고 올라갔던 기억이 나무 좋아서 시나이산 가려고 했던 것인데 모두가 걸어서 올라가야 한다고 하니 아예 가지 않는 편이 낫겠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낙타들은 항상 절벽 끝으로 걷습니다. 그래서 낙타를 처음 탄 사람은 낙타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질까 봐 두려움을 갖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낙타에게 자신을 맡기고 하늘의 별들을 보며 순례를 즐깁니다. 낙타에서 굴러 떨어진 그 분은 두려운 나머지 낙타의 목을 꽉 껴안았고 낙타가 중심을 잃어 함께 덜어지고 만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살아있을 때도 영향을 미쳐서 온전히 살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야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스키를 배울 때 타는 법부터 가르치지 않습니다. 넘어지는 법부터 가르칩니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우면 그 두려움 때문에 엉덩이가 뒤로 쏠려 진짜로 크게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아야 몸을 앞으로 내어던져 체중이 뒤로 쏠리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넘어질 줄 모르는 아이는 걸을 줄도 모릅니다. 아이는 넘어지는 것이 두렵지 않아야 다시 일어나 걷는 것을 연습합니다. 노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넘어지는 것이 두려우면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어 모든 걷는 근육들이 퇴화하게 됩니다. 삶도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죽음이 두려우면 삶에서도 이 걱정 저 걱정 하다가 사는 건지 죽은 건지 모르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죽음의 두려움을 껴안을 수 없으면 삶도 껴안을 수 없는 것입니다. 평생 불로초만 찾아다녔던 사람들은 그 시간을 즐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어머니를 몰라보았던 것은 저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처음 가발을 쓰신 날이었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진짜 아줌마로 불렀습니다. 예상하지 못하면 알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실 것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도 유령이라 소리 지르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도 두려움에 떨었던 것입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이전에, 그분의 죽음을 껴안지 못했던 것입니다. 마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사흘간 머물렀던 것처럼, 지하의 땅 속에서 사흘 간 머무시다가 부활하셔야 하는 죽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모두가 도망을 쳤고 또 죽기를 장담하던 베드로는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부활하신 분을 만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활을 이해하려면 죽음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은 성경을 통해 부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음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라는 기록을 이해시켜주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의 통과의례라는 것을 깨닫게 된 후 부활하신 예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부활을 믿으려면 먼저 죽음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모든 관계는 죽음과 부활의 연속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입니다. 팽창과 수축의 연속입니다. 하나 됨과 쪼개짐의 연속입니다. 성경이 이것을 증언합니다. 하느님 삼위일체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를 떠나 세상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셨습니다. 막달레나 마리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지려고 할 떼 예수님께서 아버지께로 가려고 하니 잡지 말라고 하신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따라서 상대를 만나려면 상대를 떠나보낼 준비까지 해야 합니다. 이별이 두려워 내 사람이 되라고 잡고만 있으려고 하다보면 지금 있는 사람은 금방 지쳐버릴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한다면 삶 또한 죽음과 떼려야 뗄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부활하시기 위해 죽으시는 것이고, 죽으시기 위해 부활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히 살아가려면 죽음을 품어야 하고, 온전히 시작하려면 마지막을 품어야 하고, 온전한 만남을 위해서는 이별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죽음처럼 보이는 것도 언젠가는 다시 부활하여 내 앞에 나타날 수 있습니다. 마치 쇠가 풀무 불에 달구어져야만 망치와 맞닿을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불에만 있어도 안 되고 망치만 맞아도 안 됩니다. 이 관계의 역동성, 삶과 죽음의 역동성을 이해하면 죽음을 끌어안으셨던 그리스도는 영원한 삶을 누리실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죽음이 우리가 결코 두려워해야 하고 멀리해야 할 무엇이 아니고 애인처럼 꼭 껴안고 살아야 할 과정임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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