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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두려움에서 평화로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끌레멘스신부님 부활 제3주일
작성자이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9 조회수893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1독서

<여러분은 생명의 영도자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그분을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3-15.17-19

 

제2독서

<그리스도는 우리 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2,1-5ㄱ

 

복음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35-48

 

 

부활 제3주일
(2015. 04. 19)
두려움에서 평화로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제자들과 함께 동행하신 예수님은 오늘 열 한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십니다. 열 한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전한 부활 소식을 믿지 않습니다. 아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이 그들을 잠식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부정적인 두려움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이는 긍정적인 두려움입니다. 다른 말로 하느님께 대한 경외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겸손한 사람만이 하느님을 참으로 두려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두려움은 어두운 것으로서 사람을 위축하게 만듭니다. 기를 못피게 만듭니다. 그 자체로 감옥입니다. 예수님이 자신들 앞에 나타나자 무서워 떨며 유령을 보는 줄로 여겼습니다. 무서움 속에 갇히면 자연히 의심을 품습니다. 신뢰하지 못합니다. 어렸을 때 우리 집 화장실(푸세식?)은 집 뒤 밖에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정말 무서워서 아무리 배가 아파도 화장실에 가지 못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만큼 두려움과 무서움은 사람을 마비시킵니다. 살아있어도 살아있는 게 아닙니다. 두려울 때 무서울 때 우리의 첫 반응은 눈을 감아버리는 것입니다.

두려움 속에 갇혀 내면의 눈을 감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이 건네신 첫 말마디는 “평화”입니다. “여러분에게 평화!” 얼마나 놀라운 첫 말씀입니까? 제자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은 아셨습니다. 바로 평화가 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에서 해방된 사람은 평화의 사람이 됩니다. 평화는 열림이며 살림이며 소통의 다른 말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진실을 똑바로 보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부활의 진실을 보게하려고 예수님은 당신 죽음과 부활에 관해 제자들을 가르쳐주십니다.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 등 성경 전반에 걸쳐 당신에 관해 이야기한 것을 조목조목 설명해 주십니다. 제자들은 깨닫습니다. 진리에 눈을 뜹니다. 진리에 눈을 뜨니 부활하신 주님의 참 모습을 똑바로 보게 됩니다. 두려움에 감겼던 눈이 열린 것입니다. 부활하신 분과 함께 있음이 바로 평화였습니다.

우리 일상 삶이 살아 있는 성경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은 살아 있는 성경인 우리 삶 안에서 주님에 관해 읽고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리를 깨닫고 두려움에서 평화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시는 주님의 손과 발을 만져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종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강조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이들의 일상생활에 뛰어들어 그들과 거리를 좁히고, 필요하다면 기꺼이 자신을 낮추어야 합니다. 인간의 삶을 끌어안고 다른 이들 안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그리스도의 몸을 어루만집시다!”(복음의 기쁨 24).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 안에서 고통 받고 계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을 우리 손으로 어루만져야 합니다. 그렇다면 부활하신 주님을 대체 어디서 만나서, 우리 손으로 직접 만지고 우리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습니까? 우리와 함께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 안에서 보고 만질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 울고 있는 이들 안에서, 지금 고통받고 있는 이들 안에서, 지금 길거리에 앉아있는 이들 안에서 주님을 만지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더 나아가 지금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보고 만질 수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보여주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 만남에서 평화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 수도원에서는 식사를 할 때 말을 하지 않습니다. 독서를 들으며 식사합니다. 요즘 듣는 책이 ‘금요일엔 돌아오렴’이란 책입니다. 240일간 세월호 가족이 남긴 육성 기록입니다. 세월호 가족 중 승희 엄마 이야기를 들을 때 제 마음은 먹먹했습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돌아보면 참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싶은데, 솔직히 여기까지 우리 힘만으론 못 왔어요. 도와준 사람들 덕분에 온 거지. 사실 나는 내 살기 바빠 봉사하러 다닌 적도 없어요. 근데 진도에서부터 도와준 시민들이 많았어요. 내가 승희 찾으려고 거기 있을 때 자원봉사자들이 먹을 걸 챙겨줬는데 아무것도 못 먹었죠. 새끼가 물 속에 있는데 그걸 먹으면 네가 엄나냐 그런 자책도 들고, 물도 잘 못 삼키겠고. 근데 오일짼가 육일짼가, 진도 할머니들이 집에서 만든 식혜를 가져와 돌아다니면서 주는데, 처음에는 안 먹는다고 했어요. 그런데 할머니들이 막 우시는 거예요. 애 찾으려면 먹으라고, 그래야 산다고, 잘못되면 안되니 한모금이라도 먹으라고. 할머니들이 우리 걱정하면서 막 우시니까 한모금 넘겼는데 그게 사고 나고 처음 먹은 음식이에요. 한 모금 넘기면서 나도 울고, 할머니들도 울고...”

오늘 부활하신 주님은 여기 있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당황합니까? 어찌하여 의심을 품습니까? 내 손과 발을 보시오. 바로 나요. 나를 만지고 살펴보시오. 그대들에게 평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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