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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특집 B-2)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2. 세속화란 무엇인가?
작성자윤태열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20 조회수618 추천수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특집 B-2) ‘그리스도의 몸의 회복을 위한 변증/ 2. 세속화란 무엇인가?

 

 

* (특집 B-1)에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지난 (특집 B-1) 1. 세상이란 무엇인가? 의 전문을 먼저 읽은 후에 본문을 읽으시기를! 아멘.

 

 

우리는 죄악의 일이 사탄에게 속한 것임을 쉽게 믿지만, 세상의 일도 사탄에 속한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가?

1요한5,19절은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라고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탄은 분명히 드러나는 죄악의 일로 참된 그리스도인을 유혹하려는 것이 헛수고임을 잘 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대개 그 위험을 알고서 현명하게 믿음 안에서 피해 버린다. 그러므로 사탄은 사람을 유혹할 때, 그 유혹의 망()을 매우 교묘하게 처서 많은 무지한 사람들을 그 안으로 끌어들인다.

 

무슨 말인고 하니,

우리는 죄악과 정욕을 피하는 것은 매우 합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치, 경제, 사회, 과학, 예술, 교육과 같은 해()가 되지 않을 듯한 일에 대해서는 쉽게 중심을 잃고 사탄의 유혹의 미끼에 넘어간다는 말이다.

이와 같은 우리는 세상의 일에 사탄이 매우 교묘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을 등한히 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러한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오늘 묵상(특집 B-2-1)의 내용이다.

 

세상에 대한 우리 주님의 판결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일이 하느님의 뜻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요한12,31절에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라고 주님은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의 진정한 뜻은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정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이 근본적으로 잘못이 없다면 주님이 결코 이러한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이어서 그분은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이것은 사탄과 세상 체계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강조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의 심판받음과 사탄의 심판받음이 서로 연관된 사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당신은 오늘날 사탄이 정치, 경제, 사회, 교육, 과학, 문화, 예술 등 모든 세상 체계의 왕이며 또한 그러한 것들이 사탄과 함께 심판 받았다고 인정하는가?

우리는 사탄이 모든 세상 체계의 일을 관장하는 실제의 주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가?

예를 들면, 술집이나 노름에 대하여 이야기 한다면, 그리스도인들의 직감적인 반응은 이를 반대할 것이다. 그것은 우리에게 분명히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측면에서 곧 의학이나 학교나 사회복지나 사회정의를 이야기 할 때, 그리스도인은 아마 조금도 이러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대하여는 동의하고 열렬히 지지할 것이다.

이 두 극단 사이에 아주 많은 다른 일이 있는데,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으며, 그 영향도 서로 다르고, 각 사람의 견해도 달라서 그 가운데 명확한 한계를 긋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속한 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물에 심판을 선포하셨다는 것이다!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이 말씀은 세상의 일부분이 아닌 온 세상을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순간이라도 사탄이 사람의 죄와 정욕을 통해서만 하느님을 대적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사탄은 세상에 속한 모든 일을 통하여 하느님을 대적한다!

세상에 속한 것들이 생명이 없는 물질적인 것들이므로 본질상 그것들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도 하느님의 뜻을 저해하는데, 왜냐하면 신성한 생명이 없는 모든 일은 다 하느님의 뜻을 배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족번식을 통하여 인류의 세대들을 이어간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인을 낳을 수 없다는 것이다. 곧 부모가 모두 그리스도인이라고 해도 그 낳은 자녀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각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에는 하느님의 새로운 역사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인류의 본성에 속한 모든 것은 다 자연적으로 지속되지만, 하느님께 속한 모든 것은 오직 하느님의 역사가 계속될 때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세상은 하느님의 역사가 없이도 계속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곧 하느님의 특별한 역사로 그 새로움을 계속 유지할 필요가 없는 것들과 그 자체만으로도 유지될 수 있는 것들이 다 거기에 포함되어 있다.

세상과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자연히 이와 같으며, 이것이 바로 세상의 성질이다!

이러한 것은 하느님의 뜻과 그리고 원래 의도했던 것과는 다르게 반대방향으로 움직인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 성경과 우리 삶의 체험으로부터 좀 더 구체적인 사례를 끌어내 보자.

먼저 정치적인 면을 보자.

이스라엘 백성이 주변 열국과 전쟁에서 이기고, 보다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왕을 세울 것을 하느님께 요구했고, 결국에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때에 그분이 택한 다윗 왕을 그들에게 주시고, 그로 하여금 그분 자신의 인도 아래 나라를 세우게 하신다는 내용이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설령 이 일이 매우 분명한 하느님의 행하심이었을지라도 그 나라의 자연스런 정치적 추세는 분명히 열국과 같이 그분을 떠나는 것 이었다!

 

왜냐하면 나라, 곧 국가는 세상에 속하므로 모든 세상에 속한 일과 마찬가지로 그 경향이 하느님의 뜻과 상충된다. 세상의 어느 곳이든 한 나라의 정부를 그대로 둘 경우에, 점점 갈수록 하느님을 멀리 떠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이방 국가의 정치가 이와 같았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택하신 이스라엘도 이와 같았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특별하게 역사하시기를 멈추실 때마다 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우상을 섬기는 정치와 연합했던 것이다!

그 사이 사이에 회복도 있었지만, 그 매번의 회복에는 하느님의 분명한 개입이 있었는데, 만일 이러한 개입하심이 없었더라면 정세는 훨씬 빠른 내리막길이었을 것이다.

 

다음은 경제적인 면을 생각해보자.

경제계만큼 불성실하고 부패하고 유혹이 심한 영역은 없을 것이다. 극심한 생존경쟁과 이익창출의 과정에서 생존을 위한 부정과 부패, 권력과 탐욕, 이기주의와 배타성이 깊이 개입된다. 어쩌면 사회적 부패의 온상지가 경제적인 면에 집중되거나 연관되어 있다.

작금의 한국 사회를 송두리째 뒤흔들고 있는 경남기업 사건을 보라!

검은 돈의 부정과 부패가 사회 각 부분에 흘러가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두 부류의 예를 제시하고 있다.

하나는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의 생명을 잃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그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진주를 사는 상인이다. 예수님은 마태16,26;13,45-46절에서 천국을 후자에 비유하셨다.

하느님의 영은 종종 경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그들의 사업을 통하여 복음을 널리 전파하고 또한 신성한 목적을 위해 이익금을 사용하게도 하신다.

그러나 이 기업의 첫 세대, 곧 그 기업의 창시자의 의도와는 달리 다음 세대에 이르면, 그러한 생명의 흐름은 사라지고 그 기업은 언제인지도 모르게 세상의 체계에 떨어지고 만다. 그 기업 자체는 여전히 번창할지도 모르지만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은 철저히 상실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어떠한가?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을 보면, 요셉, 모세, 다니엘 같은 사람들의 지혜가 하느님께 공개적으로
쓰임 받았고, 그들은 필요한 깨달음을 모두 하느님 자신으로부터 직접 받았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세상의 교육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았다.

사도 바오로는 분명하게 모든 학문을 해()가 되는 만물 중의 하나로 여겼는데, 이는 그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필리3,8).

바오로는 세상의 지혜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그었다(1코린1,21, 30).

 

나의 오랜 체험으로도 학문은 본질상 세상에 속한 것임을 간증할 수 있다!

서구의 역사상 전통 있고 유명한 대학들은 대부분 선교사 등 그리스도인이 설립한 것인데, 그들은 학생들이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영향 아래서 좋은 교육을 받기를 희망하였다.

설립자가 살아 있을 때는 진정한 영적인 내용을 학교에 가져왔으므로 그 대학의 교풍과 대학의 분위기는 분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단 설립자가 세상을 떠난 후 시간이 경과할수록 영적인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고, 교육은 유물론적인 경향을 피하기 어렵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을 멀리하는 세상적 조류를 따르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현상은 회복되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이러한 대학들은 오늘날 그 원래의 의도에서 이미 완전히 벗어났다!

중고등학교를 포함한 기독교계의 대학들, 각종 기독교계의 사회적 기관들(YMCA, 신문사, 방송국, 복지기관 등등) 의 경우도 내용상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그 원래의 의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할 수 있겠다!

물질적인 일이 영적인 것의 통제 하에 있을 때는 틀림없이 종속적인 역할을 수행하지만, 그러나 일단 그 통제에서 벗어나면 즉시 그것들의 배후에 있는 악한 권세를 드러내는 것이다!

 

다음은 선교의 영역을 살펴보자.

지금부터 1세기 전에 교회는 분명한 영적인 이름과 복음 전파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에도 학교와 병원과 복지시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초기에는 건물을 그다지 중시하지 않고 상당히 복음적인 성격을 강조하였다. 지금은 최신의 크고 훌륭한 건물들과 온갖 장식품으로 대체되었지만, 그러나 초기에 비하면 오히려 구원받은 사람이 매우 적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소위 기독교계의 많은 일류 대학들이 본래의 의도와는 먼 순수한 교육기관으로 전락했으며 진정한 복음의 동기도 잃어버렸다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기독교계가 설립한 많은 병원들이 단지 육체의 질병을 치료해 주는 곳일 뿐 사람의 영적 질병을 치료하는 곳은 이미 아니다!

초기 이러한 기구를 설립한 선교사들은 긴밀히 하느님과 동행했기 때문에 이러한 기구를 견고하게 하느님의 뜻에 부합시키려고 혼신의 노력을 다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죽은 후 시간이 흐를수록 이러한 기구들의 본래의 목적은 사라지고 즉시 세상에 속한 표준으로 떨어져 세상에 속한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이미 거의 모든 기구가 세상에 속한 일로 빠르게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정치, 사회, 교육, 과학, 예술, 선교 등 모든 분야에서 초기 원래의 의도와는 달리 이러한 세속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위의 몇 가지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의 부대사업이나 자선 사업들이 믿음과 선교의 목적으로 세워지고 개척되었지만, 시간이 지나 일단 규모가 커지고 전문화된 표준이 정해지면 아주 쉽게 세속적인 것을 모방하며, 처음의 믿음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음을 많은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나 많다!

 

예를 들어, 어떤 교회에 그 교회의 성도들의 믿음으로 설립된 학교, 병원, 복지 기관 혹은 종교기관이 있다고 하자!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여전히 그것들은 운영이 될 것이며, 어떤 곳은 표면적으로는 칭찬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학교나 병원이나 복지시설 등은 하느님의 생명의 신성한 공급이 없이도 일반적인 관리 기술만 가지고도 그 기관의 수준을 효과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설립 당시의 이상이 사라졌어도 세워진 기관은 무한히 발전할 수 있다.

그것들은 세속적인 것이 되어서 하느님의 생명이 없이도 유지될 수 있는 기업의 영리 사업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게 된 것이다!

주님은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분의 판결은 이 모든 일을 포함한다. 곧 교회가 설립한 학교, 병원, 복지 사업 등등도 사탄이 통제하는 세상의 한 부분이며, 우리가 깨어 있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쉽게 사탄의 간계에 빠져 그의 노략물이 될 것이다.

 

이제 이 부분의 결론을 맺어보자.

이 세상은 사탄이 왕노릇하는 곳이다!

우리가 근신하여 행하지 않는 한 즉시 사탄의 함정에 빠지게 되며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모든 자유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마귀의 속박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헌신, 곧 새롭게 자신을 드리고 전심으로 하느님의 일에만 자신을 드리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상을 벗어나는 것은 구원의 문제이다!

우리의 천성에 따르면 모두가 사탄의 체계에 빠져 있으므로 주님의 긍휼이 없다면 벗어날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헌신이 우리를 구원할 힘을 주지 못한다!

오직 그분의 긍휼과 그분의 구속의 역사를 의지하는 것만이 우리를 이 체계에서 벗어나 구원받게 할 수 있다.

 

이 부분, 곧 그분이 이 세상에서 구원하시는 방법은 다음 (B-3-1) ‘구원의 확신과 구원의 참된 의미부분에서 다룰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의 자연적인 추세는 사탄을 향한 것이며, 하느님을 멀리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일들이 아마도 영적인 사람들이 시작했으며 그 목적도 하느님을 위한 것일 수 있지만, 세상의 요소들이 불가피하게 뒤섞이면서 하느님의 생명의 통제가 일단 사라지기 시작하면, 이러한 일들은 자동적으로 바른 길을 벗어나 반대 방향을 향하여 내닫게 된다!

 

사탄은 시종일관 세상의 마지막을 바라보며, 세상의 모든 일들이 자기에게 완전히 돌아올 때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가 사탄의 왕국에 참여하게 되고, 사탄의 체계의 어떤 부분을 접촉하게 되지 않도록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만 한다. 아멘.

http://cafe.daum.net/yoondan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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